여행 중 만나게 되는 아름다운 순간
십여 년 전 인도에 갔을 때 자이살메르에서 낙타 사파리를 했다.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들어가 사막에서 자는 사파리.
텐트도 없이 그냥 자는 사파리.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지붕 없는 곳에서 잠자기.
나는 밤의 추위를 대비해 침낭을 단단히 챙겼다.
낙따몰이꾼들은 우리가 낙타에 탈 수 있도록 낙타에게 앉으라고 했다.
나 앉으라고 몸을 한껏 낮춰준 낙타.
그 선한 눈빛과 꿈뻑꿈뻑하던 눈매, 그 긴 속눈썹을 잊을 수 없다.
낙타의 두 개의 혹 사이가 내가 앉을자리였다.
내가 앉자 곧 낙타가 다리를 하나씩 펴며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내 눈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낙타의 키만큼 높아진 나의 시야.
마치 아기가 아빠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마도 내가 앉아 있는 바로 그 아래에 낙타의 심장이 있는 것 같았다.
콩닥콩닥. 그 아이의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낙타는 천천히 걸어 사막으로, 더욱 깊은 사막으로 걸어갔다.
가다가 나무의 잎을 먹기도 하고, 걸으면서 쉬도 하고 그러면서...
몰이꾼들은 한 번 씩 낙타를 시켜 뛰도록 했다.
낙타가 뛰면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내 엉덩이도 들썩들썩.
무서우면서도 재밌는, 그러면서도 엉덩이가 살짝 아픈... 순간.
그렇게 우리는 사막 한가운데 이르렀다.
그곳에서 우리는 몰이꾼들이 해주는 밥을 먹었다.
그들은 준비해온 재료로 즉석에서 짜파티를 구워주었고, 그곳에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파티를 먹었다. (먹을 물도 부족할 판국에 위생적인 것은 신경 쓰지 않아야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짜이의 맛 또한 일품이었다.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는 드문드문 서 있는 나무 뒤로 가야 했다.
밤이 되자 몰이꾼들은 우리를 위해 따뜻하게 모닥불을 피워줬고, 우리는 그곳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아저씨라고 생각했던, 몰이꾼 중 한 아저씨는 알고 보니 우리보다 어린 청년이었고,
처음부터 누나, 누나 따르던 12살 알리는 “키스해주세요. 앞 이빨이 쏙 빠지도록” 이런 노래를 부르며 우리를 웃게 했다. (한국인 여행자들은 이 아이에게 왜 이 노래를 가르쳤을까.)
그때 우리 일행 중에 있던 한국인 언니가 낙타 사파리를 위해 한국에서부터 준비해 온 불꽃놀이 세트를 꺼냈다.
사막에서 맞는 밤.
그 까만 하늘 위로 펼쳐지던 불꽃놀이.
그 반짝임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12살 알리는 펄쩍펄쩍 뛰면서 신이 났다.
그리고 알고 보니 우리보다 어린 청년이었던 그 청년도 펄쩍펄쩍 같이 신이 났다.
우리 모두 신이 났던 그 밤, 그 불꽃놀이.
한바탕 불꽃놀이가 끝나자 몰이꾼 아저씨들이 우리를 위해 잠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잠자리랄 것도 없다. 그냥 이불을 사막 위에 깔아주는 것이다.
텐트도 없고, 천막도 없다.
덮을 이불 따윈 당연히 없다.
다행히 우리는 침낭을 챙겨 왔으므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밤이 되자 점점 추워져서 침낭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지붕 없는 곳에서 얼굴을 내놓고 자는 것이 너무 낯설어서 더욱 침낭을 끌어당겼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
그러다 한 밤 중.
얼굴을 덮은 것이 불편해서였는지 나도 모르게 침낭을 내리고 눈을 떴다.
그때 내 눈 앞에 펼쳐진.... 하늘.
그 하늘의 별들.
와 예쁘다 생각하다가 까무룩 다시 잠이 들어버린 나.
분명 반짝이는 하늘을 본 것 같은데 너무 잠깐 보고 잠 들어서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질 않는다. 다음 날 아침 사파리 일행들에게 내가 별을 봤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도통 그 장면이 그려지지 않는다.
나는 진짜 그 별들을 본 것일까. 꿈속에서 본 것일까.
분명한 것은 그 장면이 꿈처럼 아름다웠다는 것. 뿐이다.
2014년 겨울,
브라질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 연휴였는데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어디를 여행할까 나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을 했다.
남미대륙에 살면서 꼭 가보고 싶은 곳 두 곳이 있었는데 바로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과 페루 마추픽추였다.
우유니 사막과 마추픽추는 브라질에 오기 훨씬 전부터 나의 버킷리스트였는데...
정작 남미에 와서 살면서도 가기 힘든 곳이었다.
왜냐하면 두 곳 다 고도가 높아 아이를 데리고 가기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이야 고산병 걸리면 약 먹고 그러면 된다지만 이 어린아이(당시 딸아이는 세 살이었다)를 굳이 거기 데리고 가서 혹시라도 고산병 걸리면 약을 어찌 먹이나... 고민이 되었다.
여정도 쉽지 않은 그곳을 아이를 데리고 우리가 버틸 수 있을까도 고민이었고...
그래서 찾다 찾다 내 아쉬움을 달래줄만한 곳을 찾았다.
그곳은 바로 아르헨티나 북부의 <살타>라는 지역이었는데 볼리비아와 맞닿아 있어 그곳 주민들의 모습이 볼리비아 사람들과 비슷한 느낌이었고 무엇보다 살타에서 투어로 갈 수 있는 곳에 우유니만큼은 크지 않지만 비슷한 소금사막 ‘살리나스 그란데스 Salinas Grandes’가 있었다. (나중에 가서 알았지만 '살리나스 그란데스' 가는 길이 고도 4000이 넘어간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연휴에 그곳에 가기로 비행기를 끊었는데 문제는 남미 쪽 대부분이 이런 연휴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큰 관광지는 좀 사정이 다르겠지만 살타는 그렇지 않을 것 같아 밥 먹을 곳도 없는 것 아닌가 고민이 됐다. (크리스마스에 아이를 데리고 쫄쫄 굶을 것을 생각하니 우울했다)
예약한 호텔에 문의해 문 여는 식당들이 있냐고 물으니 동네에 한 두 군데밖에 없다며 한 호텔 식당을 추천해줬다. 그래서 그곳을 예약하고 출발했다.
상파울루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3시간, 또 그곳에서 살타까지 3시간 거리의 비행으로 그리 긴 비행시간은 아니었는데 비행기 시간이 문제였다. 환승시간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꽤 길어서 우린 23일 밤을 거의 새우다시피 하고 24일 낮에 살타에 도착한 것이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배가 고파서 시내로 나갔다.
시내 중심가엔 핑크빛의 아담하고 예쁜 성당이 있었다.
그 성당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그리고 시내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너무 피곤해서 호텔로 돌아갔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대충 먹고 때우기 그래서 호텔 뷔페를 예약해 놓은 것이었는데 이렇게 피곤하고 배가 안 고플 줄 알았다면 예약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으면 일찌감치 잤을 텐데..
비싼 뷔페 예약해놓은 게 아까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저녁 시간에 맞춰 호텔로 갔다.
호화롭게 꾸며놓은 호텔 뷔페는 비싼 만큼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사진엔 없지만)
우리는 너무 대충 입고 간 데다 피곤에 지쳐있었고, 입맛도 없었는데, 게다가 음식도 별로 맛이 없었다.
결국 대충 먹고 방으로 돌아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곯아떨어졌다.
한참을 자다가 문득 '펑~펑~', 무언가 터지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우리 방은 중심가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였는데 창문을 열면 멀찍이 그 핑크빛 성당이 보이는 방이었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커튼을 젖히자 눈 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크리스마스이브 기념 불꽃놀이가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예쁜 핑크빛 성당 주위로 피어오르는 불꽃들.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나는 정말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잠깐 그렇게 불꽃놀이를 지켜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 그 불꽃놀이 풍경이 꿈인지 아닌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왜 사진 한 장 찍을 생각을 못했을까.
분명한 것은 그 장면이 꿈처럼 아름다웠다는 것. 뿐이다.
언젠가 나는 다시 사막에 누워 밤새 별을 보고 싶다.
그때는 자다가 깨지 말고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별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겠다.
그래서 멀쩡한 정신으로 또렷이 그 별들을 눈에, 마음에 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나는 다시 크리스마스이브에 살타의 그 호텔에 묵고 싶다.
그리고 역시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불꽃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겠다.
그래서 그 핑크 빛 성당을 배경으로 아름답게 퍼지는 그 불꽃들을 지켜보고 싶다.
그러나,
어쩌면. 다시 가지 않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꿈인 듯 현실인 듯
내 머릿속에서 반짝이는 그 별이,
내 기억 속에서 퍼지는 그 불꽃들이,
그 자체로도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