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물가의 아이러니

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여행자 물가의 함정

by 초록풀잎


"당신은 여행지에서 현지 물가를 기준으로 여행하나요 우리나라 물가 대비 기준으로 여행하나요?"라고 누군가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현지 물가를 기준으로 여행한다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항상 현지 물가를 기준으로 여행하면서도 이게 과연 맞는 건가 고민이 들 때가 많았다.


인도 여행을 가기 전 본 가이드북에는 흔히 배낭여행자들이 이용하게 되는 오토릭샤, 사이클 릭샤에 대한 적정요금이 제시되어있었다.
인도처럼 여행자들을 상대로 한 거짓말과 바가지가 흔한 곳에서는 무조건 깎고 보라는, 그러려면 적정 가격은 알아야 하므로 제시되어 있는 요금이었다.
예상대로 인도의 릭샤꾼들은 바가지요금을 불렀고, 어김없이 열심히 흥정을 해야 했다.
흥정을 열심히 하고 타도 결국엔 좀 많이 준 듯한 느낌이 항상 들었지만 그건 여행자로서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할 수준이었다.
그런데 오토바이를 개조한 오토릭샤를 탈 때와 달리 자전거 뒷 자석에 두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사이클 릭샤를 탔을 때 요금 흥정에 대한 회의가 들었었다.

인도 델리에 도착한 다음 날이었다.
이 곳에서 그곳까지 요금이 대략 얼마인지 가이드북에서 확인 후 사이클 릭샤 모는 사람들과 흥정을 시도했다.
거리가 멀지 않아서 절대 많이 주고 싶지 않았다.

가이드북에는 10루피 정도가 적당하다고 했고, 릭샤꾼들은 30 정도를 부른 듯.
결국 흥정을 하다가 20을 부르는 그들에게 15를 불러 극적으로 한 청년의 릭샤에 오르게 됐다.
그때 처음으로 사이클 릭샤에 올랐는데 성인 여성 둘을 뒷좌석에 태우고 나보다 마른! 키만 비쭉 큰 청년이 자전거를 몰았다.


출발하자마자 생각했다. 사이클 릭샤는 탈 것이 못 되는구나.
마른 몸의 청년이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뒷모습을 보고 앉아 있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토릭샤를 운전할 만큼 경제적인 여건이 안되므로 자전거를 운전하고 있는 것일 텐데, 그 모습이 안쓰럽다고 이용을 안 하면 그들에겐 더욱 손해일 텐데. 그래도, 그렇더라도 내 마음 불편해서 못 타겠단 생각이 들었다.
길이 오르막길로 접어들었을 때 그 생각은 다짐으로 바뀌었다. 다시는 타지 말자.
길지 않은 그 시간이 어찌나 바늘방석이던지.
빨리 그 릭샤에서 내리고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그에게 약속한 15루피를 건넸다.
그런데 인도인들의 특징이 실컷 흥정해놓고 나중에 도착해서 딴 소리를 한다는 것인데,
역시나 그도 20루피 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오면서 내내 미안하다 생각했지만 약속은 약속이니 나는 번복할 수 없다 생각했고, 15루피만 주었다.
내가 어떻게 흥정을 했는데 그 걸 더 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흥정을 잘 해서 적당한 가격에 타고 왔다는 첫 흥정에 나름 성취감이 들기도 했다.

인도의 사이클릭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치졸함이 우습기만 하다.
사이클 릭샤를 타는 내내 불편해하고 미안해해 놓고 고작 5루피를 더 주지 않는 그 치졸함.
5루피는 당시 환율로 150원이었다.

사실 그 나라에 갔으면 그 나라의 물가 수준에 맞게 생활하는 게 맞다.
환전했을 때 우리 돈으로 적은 돈이라고 그곳에서 마구 쓰고 다닐 수는 없는 거니까.
그렇지만 고작 150원에 불과한 돈을 가지고 왜 그렇게 냉정했는지 후회가 된다.

첫 일본 여행 갔을 때 100엔 동전이 우리 돈으로 1000원이라는 생각을 하니까 물가가 너무 비싸게 느껴지고 돈을 막 쓸 수가 없었다.
돌아와서 아빠에게 그 이야길 하니 여러 번 일본 출장을 다녀보신 아빠의 말씀이
100엔을 우리 돈 100원 자리처럼 생각하고, 1000엔을 우리 돈 천 원짜리처럼 생각하고 써야지 일일이 우리 돈으로 얼만지 고민하며 쓰면 안 된다~

그 말이 백번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현저히 싼 나라로 여행 갔을 때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물가가 현지에 비해 턱없이 비싼 것도 사실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손해보지 않으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쿠바 아바나에 갔을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쿠바 가기 전에 쿠바 여행기를 검색했는데 다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쿠바에는 여행자 화폐와 현지화폐가 따로 있다는 것!
그만큼 여행자를 상대로 하는 물가와 현지인의 물가가 천지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행자 상대 물가가 그렇게 미치도록 높은 것은 아니고
일반 남미 여행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내 체감으로는 아르헨티나와 비슷한 수준?
근데 그게 여행자 물가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그 물가에 맞춰서 무언가를 사고 먹고 하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현지인용 화폐로 환전해서 현지인들의 식당에서 밥도 먹어보고 할 순 있었지만
대부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외국인 화폐로 되어 있어서 왠지 억울함이..
그렇다 보니 기념품을 살 때도 그다지 비싸지 않은 것도 원래 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사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런 나의 심리는 호텔 선정에 있어서 아주 최고조에 다다랐다.

아바나에서는 2박 예정이어서 호텔을 알아봤는데
쿠바라는 곳이 뭔가 은밀하게 감춰져 있는, 우리가 가서는 안 될 곳에 몰래 가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인터넷으로 예약하기가 힘들었다.
별생각 없이 평소 이용하던 호텔 예약 사이트 부킹닷컴, 호텔스닷컴, 아고다 등을 뒤졌지만 쿠바의 호텔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결과 캐나다 사이트를 통해서 겨우 호텔을 찾았다.
그래서 아바나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휴양지 바라데로의 호텔을 그 사이트를 통해 예약했다.

그다음 아바나의 호텔이 문제였는데 한국인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민박, <까사>를 추천했다.
그중에서도 호아키나 아줌마네 민박이 최고라고! 여행지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다고..
그런데 우리 가족이 가기엔 적당하지 않았다.
도미토리로만 운영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다 보니 호아키나 아줌마가 방이 다 차면 소개해준다는 이웃 까사의 정보가 있었다.
그 이웃 까사 이름은 요바나 까사.
그곳에는 더블룸이 있고 그 방 외에 거실, 그리고 부엌 화장실이 있는 구조이며, 창 밖으로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깨끗한 곳이라는 리뷰가 있었고, 10층에 있어서 전망이 좋다고. 오래돼서 불안하긴 해도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그런 리뷰가 있었다.
그래서 그곳으로 메일을 보냈는데 여행 출발 전까지 답장을 받지 못했다.
어릴 때 배낭여행할 때 이후 호텔 예약 없이 여행을 떠난 적이 없어 불안했지만 대안이 없었으므로 그냥 부딪히기로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땐 어떻게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게스트하우스들을 찾아다니며 방이 있냐 묻고 없으면 또 다른 곳을 찾고...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 체력이 정말 좋았던 듯?)

그리고 아바나 시내 중심가에 있는 그 까사를 열심히 찾아갔다.
키가 크고 예쁘장하게 생긴 아줌마가 우리를 환하게 반겨주셨다.
메일 봤다며.... 우리 방이 9층인데 오늘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고
그래서 원래 방 가격에서 반값 좀 안 되게 깎아준다고. 그러셨다.
(순간 층이 10층 아니었나? 생각했었지만 기억을 잘 못한 것으로 생각함)

9층을 무거운 가방을 들고 어떻게 올라가나 싶어서 이 방을 포기할까 싶었지만
블로그에서 워낙 방이 깨끗하고 좋다고 했고 (내가 사진으로 보기에도 좋아 보였고)
아이와 유모차와 가방을 들고 다른 까사를 찾아다닐 체력도 없었고
값도 워낙 싸게 해주신다고 하니 그냥 묵기로 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세 식구가 거실 부엌 딸린 방을 쓰는데 하룻밤에 25000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날 시내 구경을 갈 예정이므로 모두 올라갈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남편 혼자서 캐리어를 갖다 두기 위해 10층까지 캐리어를 들고 올라갔다.
좀 미안했지만 아이가 있어서 같이 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내려온 남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방이 너무 별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블로그에서 보기엔 괜찮았는데?라고 하자 남편은 아니라고 엉망이라고.

남편이 블로그를 못 봤고, 원래 까사가 그런 건데 남편의 기대치가 높아서 그런 거겠거니 하고
"원래 까사가 그런 수준일 거야."라고 말했다.
남편은 옮기고 싶다고 했지만 다시 올라가서 가방을 들고 내려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으므로 그냥 오늘은 자는 걸로 하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성당의 밤 풍경도 구경하고,
그 날이 마침 결혼기념일이어서 근처 고급 호텔 옥상 테라스 식당에서 랍스터와 (랍스터 요리 1만 원 대!!) 헤밍웨이가 즐겨마셨다는 칵테일 다이키리를 마시며 신나게 놀았다.

랍스터와 다이끼리


그리고 밤늦게 까사로 왔다.
아이와 유모차와 나와 남편이 9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대장정.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올라가고 남편은 유모차를 들고 낑낑대며 올라갔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악몽이 시작됐다.

어마어마하게 오래된 그 까사는 블로그에서 본 그 까사가 아니었다.
어디 한 군데 발 디디기도 뭐한 지저분한 방이었고
더블룸에는 슈퍼싱글 사이즈의 낡은 침대 한 개,
그리고 옆에 도미토리 룸도 하나 더 있었는데 어느 하나 이용할 만한 베드가 없었다.

더욱 큰 문제는 화장실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
설상가상 따뜻한 물도 안 나왔다.
그 밤에 아줌마를 부를 수도 없고 하루 종일 땀 흘렸는데 안 씻을 수도 없어서
우리는 결국 문을 약간 열어놓고 급히 씻어야 했다.

깨끗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어두워서 안 보이는 그 화장실에서 아이를 씻기느라 얼마나 애를 썼는지.

그 좁은 침대 하나에 셋이서 누웠는데 남편이 폭발했다.
너무 불편하고 너무 덥다고.
변변찮은 선풍기를 하나 틀어놓고 아이가 있으니 선풍기를 끄자는 나와 덥다는 남편의 실랑이...

우리는 그 밤에 이 곳에서 지금 당장 탈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수백 번 고민했다.
이런 방을, 게다가 엘리베이터도 고장 난 상태에서 우리에게 내어준 이 아줌마를
응징하기 위해서 이 밤에 열쇠 꽂아놓고 탈출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래도 이 밤에 나가서 빨리 좋은 방을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하룻밤을 버텨보자는 생각...
그래도 여기서 어떻게 자냐는 고민....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시간이 흘러 더는 나갈 것을 고민하지 못하게 됐을 때 우리는 그럼 1박만 하고 아침에 탈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좁은 침대에서 셋이서 뒹굴뒹굴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침이 되자마자 가방 싸서 또 낑낑 대며 들고 내려왔다.
캐리어에 유모차까지 있어서 남편은 또 아침부터 땀 한 바가지 흘리고.

까사의 장점 중 하나였던 조식을 먹으며 (간단한 빵과 스크램블) 역시나 그 까사에 묵고 있는 한국인 부부를 만나서 어젯밤의 악몽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엄청 놀라며 자기들의 방은 엄청 깨끗하고 에어컨도 나온다는 것이다. 다만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불편해서 오늘은 다른 까사로 옮기려고 한다고...

헐. 그 들의 방이 10층이었다.
그렇다 내가 블로그에서 본 방이 그들의 방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층을 배정받은 것이다.

아줌마가 내 메일을 받고 방이 없어서 평소 안 쓰던 엄청 낡은 집을 내어주며 값을 엄청 깎아준 것으로 추측되었다.
순간 그들이 나간다고 하니 그 방으로 옮긴다고 할까 고민했다가
짐 들고 올라갈 생각 하니 아찔해서 포기.
그리고 아줌마에게 오늘 나가겠다고 너무 불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아줌마는 그럴 줄 알았는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우리의 호텔 찾기 시작.
까사에 덴 관계로 까사는 싫었고 호텔로 가기로 하고 나섰는데
하룻밤에 3만 원 안 되는 값에 자고 나니 너무 비싼 호텔에서 자는 게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이 정도 물가라면 호텔도 10만 원 안되게 묵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근방 호텔들을 다녀보니 다 13~4만 원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10만 원 대 정도면 싸다고 생각하고 들어갔을 텐데.

쿠바에서의 나는 뭔가... 뇌가 비정상이었다.

너무 비싸게 느껴져 들어갈 수 없었다.
더구나 그 날은 내내 밖에서 놀고 진짜 잠만 잘 건데 좋은 호텔이 뭐가 필요한가 싶고.

남편은 뒤에서 짐과 유모차와 아이를 챙기며 빨리 어디든 비싸도 어디든 들어가고 싶어 했는데 나는 고민하다 더 알아보자고 나왔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가이드북 한편에 나온 작고 허름한 호텔의 위치를 찾아보니
150미터 정도 가면 되는 곳에 그 호텔이 있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이동해야 하고 그곳이 묵기 마땅한 곳일지, 가격은 괜찮을지 아무것도 모른 채 그곳으로 이동하는 것에 대해 남편은 매우 못마땅해했지만 이미 나는 뇌가 비정상인 상태였으므로 그곳으로 갔다.

그곳은 5만 원이었고, 방은 허름했지만 그래도 싱글베드가 두 개 있었다.
만약 가격이 적절치 않았고 방도 더 허름했어도 우린 거길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더 이상의 이동은 못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곳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 날 나왔는데
그곳 화장실에서 바퀴벌레가 나온 것과,
다음날 체크아웃할 때 정전으로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없어 4층에서 남편이 가방을 또! 들고 내려와야 해서 남편은 결국 폭발을 할 뻔했지만.... 넓은 마음으로 참아내주었다. (고마웠어....)

그렇다 이 모든 게 여행자 물가를 차등 적용하는 그 체계 때문이다.
원래 비싸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낼 텐데 바가지 씌우는 것 같아서 아까워서 따지고 따지다가 몸만 고생하고 구경할 시간 까먹고 바보짓을 하게 된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속 터지게 미안해지는 그때 그 일...

이렇게 여행지의 물가는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그래도 이렇게 그 나라의 물가에 맞춰 고민하고 따지는 재미도 여행의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와서 쿠바를 생각하면 캐리어 끌고 고생한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오르니까 말이다.


*덧* 고생한 이야기만 써서 쿠바가, 그리고 까사가 너무 별로라는 인상을 받을까 내심 신경이 쓰임.
나는 쿠바 아바나 여행 정말 행복했었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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