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경 Sep 28. 2023

"취지에 안 맞는다"는 제목, 이렇게 바꿨더니

[제목 레시피] 과정에 참여하면 알게 되는 것

마음에 드는 가죽 가방을 몇 년째 들지도 않으면서 버리기는 아까워 장롱 속에 보관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동네 가죽공방에서 헌 가방을 수선해 준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다. 사진 속 가방이 꽤 그럴듯해 보였다. 그래, 먼지만 쌓인 채 보관만 하느니 내가 원하는 디자인으로 고쳐 쓰자. 미니백으로 수선해서 쓰면 좋잖아.


쉬는 날 가방을 들고 가게로 향했다. 가방을 내밀고 미니백으로 수선이 가능한지 물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수선하는 비용이, 거의 새 가죽 가방을 하나 사는 것과 맞먹었다.


이걸 수선해서 쓰는 게 의미가 있을까? 10초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기껏 가져왔는데 다시 들고 가기도 그렇고... 고쳐 쓰는 것은 환경도 살리는 것이니, 나름 괜찮은 선택이라고 돈 쓰는 일을 합리화한다.


해주세요. 공방 주인은 지금 주문이 밀려 있으니 잊고 있다가 연락하면 찾으러 와 달라고 했다. 당장 급하게 쓸 가방은 아니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 진짜 잊고 지냈다. 한 2주 정도가 지났을까. 문자가 왔다.


'해체 작업 중이다. 과정을 공유 드리겠다.'


드디어 가방 해체 작업을 한다고 했다. 실 색, 장식 선택, 고리 장식 위치, 끈을 넣는 아일릿 선택 등이 순차적으로 이뤄졌고, 가방도 어느 정도 제 모습을 갖춰 가는 듯했다. 이 과정에서 내 의견을 따라 주는 것도 있었고 전문가의 생각이 반영되기도 했다. 얼추 마무리가 되어간다 싶었을 때 공방 주인은 말했다.


'다음 과정은 알아서 하고 완성되면 알려드리겠다.'


알아서 하겠다는 것은 결과물에 자신 있다는 거겠지? 두근두근했다. 과연 내 마음에 들까? 과정을 공유받기는 했지만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면 어쩌지? 이거 못 쓰겠다고 해도 되나? 너무나 궁금한 게 많았다. 마음에 안 들면 원래의 가방이 생각날 것 같고, 추가로 들어간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속이 엄청 상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환불해달라고 할 수도 없으니 더욱.


결과물을 받고 다행히 그런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 후로 잘 들고 다녔다. 장롱 속에만 있던 그 가방이 맞나 싶을 만큼. 가볍고 편리하고 이쁘고. 시간이 꽤 지나 잊고 있던 일인데 불현듯 생각났다. '원래의 제목을 최대한 살려주십사' 하는 요청을 받고서.




독자님들의 응원에 힘입어 2024년 8월 <이런 제목 어때요?>를 출간했습니다. 

이하 내용은 출간된 책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aladin.kr/p/Oq6fw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