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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경 Mar 22. 2024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은 언제나 있다

[제목 레시피] 제목 스터디

8페북에서 내가 쓴 게시물을 하나 보여줬다. 사진 두 장과 짧은 문장이 몇 줄 적혀 있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이런 시절도... 그립다. 모여서 제목 공부도 하고. 홍과 함께 제목 스터디 했을 때였지 아마...'


좋은 제목을 고민하던 시절


그랬다. 때는 2015년 편집부 몇몇 선후배들이 머리를 맞댔다. 더 좋은 제목을 짓고 말겠어, 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스터디였다. 돌이켜보니 제목 항의가 참 많았던 때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선정적이다', '기사 내용에 없는 표현이다', '글의 취지와 다르다', '자극적이다', '글의 내용을 왜곡하는 문장이다' 등등. 그래서 더 고민이 깊었던 시절.

각자 준비한 사례를 들고 이야기 하는 시간, 제목 스터디


혼자 고민하기보다 같이 고민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겠다는 취지로 후배가 제목 스터디를 제안했다. 준비물은 사례. 편집하다가 제목이 잘 안 뽑혀 고민이 되었던 사례, 이 제목 좋다, 혹은 이 제목은 별로다 하는 사례를 기록해 놨다가 같이 이야기 해보자는 것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해보니 마치 독서모임 같았다. 똑같은 글을 읽고도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제목 스터디에도 있었다.


제목 스터디에서 뭘 했는지 약간 설명을 하면, 제목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제목을 뽑을 때 나쁜 버릇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던 기억이 난다. 대표적으로 문장부호 같은. 큰따옴표, 작은따옴표, 쉼표, 물음표, 말줄임표, 느낌표 등의 문장부호를 꼭 필요해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쓰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상투적인 제목도 재미없지만, 상투적인 형식도 재미를 떨어뜨리니까. 그래서 제목에 문장부호를 쓰려고 할 때 난 이 단어를 떠올린다. 굳이? 굳이, 꼭 써야할 쉼표나 말줄임표가 아니라면 빼고 문장을 짓는다.


고민스러운 점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제목을 뽑다 보면 핵심 내용이 아닌 문장을 취할 때도 생기는데 그렇게 해도 되는지, 여러 가지 내용이 나열식으로 등장하는 글에서 제목은 어떻게 뽑는 게 좋을지, 뉴스가 터질 때마다 언론에서 만들어내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뉴스를 압축적으로 정리해 주는 말이라 할지라도 제목에서 계속 쓰는 것이 맞는지, 짧은 제목으로 주목을 끌 수는 없는 건지, 주관적 제목 말고 팩트가 담긴 제목이 더 잘 읽히는 게 아닌지, 눈길을 끄는 제목을 짓긴 했는데 글을 읽은 독자가 허탈해하지는 않을지 고민된다 등 말하지 않으면 모르지만 일단 말을 꺼내면 편집 일을 하는 누구라도 공감하고 고민되는 그런 내용들이었다.


잘못이나 부족함을 질책하지 않고 "나도 그런데"라는 공감을 기본으로 깔고 시작되는 제목 스터디라 그랬는지 '나는 못 하겠다'가 아니라 '나도 잘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조금은 생겼던 것 같다. 마음이 구겨질 때보다 활짝 펼쳐질 때가 많았으니까. 그래서 그리웠나.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 하면... 제목의 신이나 제목의 왕이 되겠다는 마음일랑은 가뿐히 내려놓고 그때나 지금이나 매일 제목의 기본을 염두에 두고 일한다. 가장 먼저 글의 핵심을 파악하고, 내용에 맞게 읽힐 만한 포인트를 잡아 적절한 표현을 문장으로 만드는 것. 여기서 좀 더 섬세한 제목을 짓고 싶다면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을 조금 생각한다. '이 글을 왜 썼을까' 하는 호기심을 갖고.


이렇듯 제목을 지을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머리에 넣고 굴리다 보면 없던 문장이 툭 튀어나오곤 하는 것이다. 마치 공이 굴러오는 것처럼 한 문장이 제목이라는 이름으로. 물론 순순히 오지 않을 때도 있다. 배지영 작가가 새로 낸 책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를 직접 소개하는 글의 제목을 지을 때도 그랬다.


혹 하는 제목에 그렇지 않은 조회수


그가 보낸 제목은 ‘20여 년간의 기록 속에 숨어있는 눈물 버튼이었다’. 얼마 후 작가는 다시 ‘20여 년 기록 속에 숨어있는 눈물 버튼’으로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가 제목을 고심하고 있는 사이, 나도 생각해 둔 제목이 있었다.

더 맛있는 디저트는 언제나 있다. 좋은 제목을 넘어서는 좋은 제목은 언제든 있다.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는 친정엄마와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반씩 다룬 에세이였다. 작가는 언제나 씩씩한 친정엄마를 일러 ‘뭐든 보여주고자 한 사람’이라 정의하고, 시대를 앞서 간 시아버지는 ‘뭐든 들려주려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작가의 이런 정의 내림이 좋았다.


나라면 내 어머니, 아버지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다소 개인적으로 보일 법한 가족 이야기도 이렇게 의미를 부여하면 충분히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책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글이었다. 20여 년에 걸쳐 쓴 친정엄마와 시아버지의 이야기라는 접근도 나에게는 신선했다.


이 글의 제목을 어떻게 뽑으면 더 많은 독자들이 볼 수 있을까. 자식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았던 엄마와 자식들에게 무슨 이야기든 들려주고 싶었던 시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라고, 곧이곧대로 정직한 제목을 뽑아서는 안 되었다. 그런 제목을 누가 클릭하고 싶을까.


그래도 볼 사람은 보겠지만 이왕이면 더 많은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더 나은 제목을 찾고 싶었다. 편집기자는 그런 사람이니까. 둘 중 더 인상적인 한쪽 어르신만의 이야기를 부각해 뽑아볼까?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모두 포괄해야 할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내가 이 글 안에서 건져 올린 건 ‘눈물’과 ‘울었다’는 서술어였다. 이 책의 최초 독자인 편집자도 초고를 보고 울었다고 했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자주 울었다고 했다.


작가가 글을 써서 보내기 전에 들어온 이 책의 서평에서도 ‘눈물은 필수적’이라거나 ‘걷잡을 수 없는 울음이 복받쳐 올랐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글 안에도 ‘오랜 세월 한 편 한 편 즐겁게 썼는데, 곳곳에 눈물 버튼이 심어진 책이 되고 말았다’라는 대목도 있다. 이 둘을 연결해 보면 어떨까? 그렇게 나온 제목이 ‘20여 년 동안 즐겁게 쓴 글인데... 왜 다들 우시나요?’ 였다.


작가가 한 편 한 편 즐겁게 쓴 글을 읽는 이들마다 눈물이 났다고 하면 무슨 내용일지 궁금하는 독자가 있을 것 같았다. 제목을 뽑아 기사를 넘기고 얼마가 지났을까. 후배 편집기자가 오랜만에 카톡을 보내왔다.


“배지영님 글 제목에 혹해서 읽고 있는데... 넘 좋네요!!!”


공부해서 기꺼이 남 준다


누군가에게 그것도 편집기자 후배에게 ‘혹하는’ 제목이었다니 뭔가 뿌듯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배는 기사가 울림이 있어 좋았다며 책도 꼭 사 볼 거라고 했다. 좋은 제목은 책도 사게 하는구나 하고 싶었는데 이게 웬일. 독자들은 아니었나 보다. 조회수는 기대 이하였다. 나는 '쬐금' 의기소침해졌다.


후일에 후배 V와 함께 제목 스터디를 하다가 이 기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V의 관점은 나와 조금 달랐다. 내가 다소 감성적인 걸 고려했다면, V는 ‘한길문고는 <나는 언제나 당신들의 지영이>를 215권 입고했다’는 문장을 포착했다. 나는 그냥 지나친,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문장이었다.


V의 말을 듣고 보니 그제야 본문에 있었던 문장 ‘동네서점에서 200여 권 넘게 입고한 책’이나 ‘동네서점에서 3단으로 쌓아 놓고 파는 책’이라는 대목이 눈에 와서 박혔다. 이 내용으로 제목을 지었으면 독자들이 더 궁금할 것 같았다.


동네서점에서 그렇게 많은 책을 한 번에 입고시키는 일은 거의 없을 테니까. “무슨 책인데?” 하면서 독자들도 한번 클릭해 보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제목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더 많은 독자들이 주목할 문장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스터디를 하면서 다시 알게 되었다. 때론 감상적인 문장보다 구체적인 팩트 담긴 제목이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들은 글쓰기 모임을 한다. 직접 글을 쓰고 합평을 한다. 나와 동료들은 좋은 제목을 짓고 싶어서 스터디를 했다. 내가 뽑은 제목과 남이 뽑은 제목을 비교하고 분석하며 다양한 관점으로 들여다보려고 애썼다. 좀 더 나은 감각을 익히려는 몸부림이었다. 어쩌면 그 몸부림 덕에 지금의 나도, 이 글도 있는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드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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