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나는 수많은 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요즘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과민성방광염이다.
방광염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걸려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방광에 문제가 생겨버리면 눈뜨고, 숨 쉬며 살아있는 24시간이 그야말로 지옥의 시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안타깝게도 이와 관련된 증상들이 하필 인간의 가장 은밀하고도 숨기고 싶은 부위와 관련된 일들이다 보니 그 고통을 누구에게 말하기도 사정이 그리 쉽지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집 밖 외출이라곤 간단한 산책과 병원 방문이 거의 전부인 내게 집을 벗어날 때마다 찾아오는 그 불안과 공포심이란 가히 신경증적 발작을 일으킬 수준의 심각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남들이 이런 나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면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로 나는 현재 집 밖 외출에 심각한 공포를 느끼고 있다.
간단한 산책을 나가는 길이라도 현관문 앞을 나서기 전까지 최소 3번쯤은 화장실을 들르곤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앞을 나서는 그 순간부터는 이젠 내 마음대로 변기에 앉을 수 없을 것이란 불안감에 꼭 비에 홀딱 젖은 생쥐처럼 처량한 모양새로 안절부절못하게 되는 것이다.
숱한 병치레를 삶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병은 기가 막히게도 연쇄작용으로써 또다른 병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30대 초반 자궁을 드러내기 전, 나는 그때부터 이미 과민성방광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그 고통이 자궁과도 연관되어 있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물론 수술을 강행하기까지에는 방광이 가져다주는 불편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지만, 자궁과 방광상태의 연관성을 확신에 차 말하는 의사의 소견을 나는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내가 쉽지 않은 수술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5년 후, 나는 수술 이전보다 더 나빠진 상태의 방광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수술 후 하나씩 물밀 듯 찾아오는 병적 증상들 앞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이 모든 일을 초래하게 만든 원인이 바로 ‘나’라는데에 있었다.
몇 날 며칠을 잠도 못 자가며 이유 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동안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병원과 다양한 의사를 만나야만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가는 의사 제각각마다의 소견들 속에서 결국 결정은 나의 몫이었다. 그때 그게 무엇이든 나는 선택해야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말이다.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그것을 결정한 당사자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다.
의사가 섣부른 판단으로 오진을 했든,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환자를 힘들게 했든 결국 그 의사를 수술대 앞으로 끌고 온 것은 환자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수술 이후, 내 몸에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 그 무렵부터,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여태껏 인생의 중요한 시기 때마다 스스로 올곧은 생각을 믿고, 불타는 의지에 기대어 모든 결정을 홀로 감당해 왔던 나였지만, 그렇게 하나하나 험난한 산을 열심히도 넘어왔던 나였지만, 그것이 늘 옳은 선택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처절하게 깨닫게 된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나를 신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일 동안의 금식과 기도를 하며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다는 예수님. 그리고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수행, 정진하여 깊은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부처님. 그때 그분들은 앞으로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해서 얼마나 담대한 마음으로, 얼마나 강인한 마음으로 자신을 신뢰하며 혹은 그 누군가를 신뢰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그 길을 헤쳐나갈 수 있었을까.
늘 마음이 외로웠던 유년기 시절을 거쳐,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처절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기까지. 그 시간을 버텨오면서 어쩌면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닌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행복’이 아닌 ‘극복’에서 찾으려 한다면 난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인생을 살아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아니 제법 자주 나는 내가 아직도 살아있음에 깊은 탄식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서글픔을 느낀다.
내 몸에서 벌어지는 증상하나 조절하지 못해 스스로를 원망하고, 헐뜯고, 저주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한없이 초라해지는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수치스러움과 초라함 앞에서 나를 굳건히 지켜내야 한다. 그리고 지난날 잃어버린 나 자신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해야만 한다.
폭풍이 휘몰아치면 쓰러지기도 하고, 뜨겁게 작열하는 태양 앞에선 헐떡거릴 수밖에 없는, 나는 그런 한낱 나약한 인간에 불가하다.
그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이 감히, 마음을 먹어본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또 다른 예수, 부처가 되어 이 고행의 길을 나아가야만 한다. 흡사 구도자와도 같은 마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야만 나는 끝내 이 여정의 고지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