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계

한계를 뛰어넘어

by 꿈꾸는 카프카

한계 (限界)

-사물이나 능력, 책임 따위가 실제 작용할 수 있는 범위. 또는 그런 범위를 나타내는 선

연일 30도를 웃도는 뜨거웠던 여름. 여름의 한가운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올림픽이 열리고 있었다. 각종 매체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 선수단의 메달 획득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주요 관심 종목이 중계될 때마다 사람들의 함성이 창문밖을 통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런 사람들의 들뜸과는 별개로 그날도 나는 여전히 아팠고, 통증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한때는 나도 보통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국팀이 참가한 국제경기에 열을 올릴 때가 있었다. 오천만 국민 모두가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대한민국’을 외쳤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때가 그러했고, 은반 위의 요정이라 불리던 김연아 선수가 전 세계를 매료시켰던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그러했다. 그 시절, 내가 대중의 열기에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때의 내가 뜨거웠기 대문이었을 것이다. 불가능을 향해 과감히 자신을 내던지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 또한 그럴 수 있으리라고, 희망의 청사진 하나를 가슴 깊은 곳에 품곤 했던 것이 그때의 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십 년이 더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더 이상 그런 휴먼드라마의 기적과 같은 스토리에 열광하지 않는다. 어쩌다 그런 이야기와 마주치게 되는 순간이 와도 나는 이제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끝이 있을 거라 여겼던 고통에 끝이 없다는 걸 서서히 알아가게 되고, 그 고통의 끝엔 결국 죽음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그 이후부터 나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 무감해지게 되었다. 간혹, 이렇게 달라진 내 모습과 마주할 때 이제는 더 이상 무언가에 동요되지 않는 내 마음에 자뭇 서글퍼질 때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내 마음이 전과는 다르게 사뭇 고요해졌다는 것에 떠는 풍랑에 흔들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 전의 나란 늘 거칠게 휘몰아치는 폭풍 가운데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조난자와도 같은 모습이었으니깐. 그런 나를 구해줄 구조선만을 마냥 기다리며 헤매던 내게 그때 바다 끝 지평선 따윈 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는 그때처럼 구조선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쩌면 앞으로 계속 그 구조선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내 보잘것없는 몸 하나를 겨우 지탱하고 있는 그 작은 조각배 위에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바라본다. 비록 나를 구해줄 구조선은 어디에도 없지만, 그래서 앞으로도 이 망망대해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나는 전처럼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 그저 남들이 한 80년 정도는 후에 알게 될 것을 난 좀 더 일찍 깨달아버렸다고 여기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다시 처음의 올림픽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그렇게 십 년 넘게 무관심 속에 흘려보냈던 올림픽 기간 중 우연히 나는 한 경기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 종목은 내가 평소에 잘 알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대중적인 인기를 가진 종목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 지켜보게 된 그 경기에서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예전 그때의 ‘나’로 돌아가 있는 진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출발선에서 천천히 숨을 고르며 자신이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을 올려다보며 비장한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선수들. 그중 누군가는 긴장을 했는지 입술을 깨물고 있기도 했고, 누군가는 스스로에게 잘할 수 있다고 주문을 걸 듯 손으로 자신의 가슴팍을 팍팍 소리 내어 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만의 속도와 템포, 리듬에 맞게 도약과 점프 기술을 선보이면서 선수들은 그렇게 각자만의 이상을 향해 선보이면서 눈부시게 장대위로 날아올랐다. 물론 경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제 그 장애물을 뛰어오른 선수들은 급격히 줄어들어갔다. 하지만 내 눈에 비친 그날의 높이뛰기 선수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승자였다. 그날새벽이 다 된 시간까지 그 긴 경기를 지켜보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우리는 저마다의 한계점을 지니고 이 험난한 세계를 살아간다. 누군가는 말도 안 될 만큼 높은 한계선을 뛰어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에 반도 미치지 못하는 한계선에서 허덕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

내 한계선은 진작부터 거기까지 인 것을 모르고 다른 이들의 우월한 한계선을 보며 거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미워하고, 원망하며, 자책하고 있지는 않았던가. 그날의 경기가 더욱이 인상 깊었던 것은 그 한계선을 넘지 못해 일찍이 탈락의 고배를 맛본 선수들이 하나같이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동료선수의 경기를 함께 지켜보며 그들에게 응원과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뉴질랜드의 선수가 2.34m를 넘으며 마무리된 그날의 경기는 올림픽이 끝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가슴속에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출발선 위에 오른다. 나 역시 그들 틈에 끼어 나만의 경기를 이어가야만 한다. 비록 그 한계선을 뛰어넘지 못해 바닥에 처참히 온몸을 부딪고 쓰러진다고 해도 나는 다시 일어서야 하고, 다시 뛰어야만 한다. 그 실패는 나만의 것도 아니고, 그 한계선은 누가 정해 놓은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다시 출발선 위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 도전, 그 자체만으로도 누구든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나의 한계선을 향해 기꺼이 달려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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