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영혼이 된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
애도 (哀悼)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
두 달여 전. 나의 외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나셨다. 요양원에서 치매환자로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신지 10여 년 만의 일이었다.
처음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셨을 때만 해도, 가족들은 외딴곳에 할머니를 홀로 있게 한다는 것에 저마다 가책 아닌 가책에 시달리며 괴로워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잠깐이 될 것이라 여겼던 할머니의 요양원에서의 생활은 예상 밖으로 조금씩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5년쯤이 넘어서자 가족들의 입에서 할머니의 이야기가 나오는 횟수 또한 그에 비례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입 밖에 내보이진 않았지만, 우리는 각자 알고 있었다. 각자의 버거운 삶 속에서 할머니가 느꼈을 외로움과 절망감이 더 이상 우리의 주된 관심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외할머니와 나의 추억이라 하면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할머니와 잠깐 함께 지냈던 기억이 전부였다. 그때는 할머니가 치매 중기쯤 되는 상황이었고 그의 자식들이 할머니를 어떻게든 당신네들 손으로 모셔보겠다고 아등바등하던 시기였었다.
차마 홀로 된 늙은 어미를 요양원에 보낼 수 없었던 자식들은 서로가 힘을 합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힘을 나누어 아픈 어미를 제 손으로 모셔보려 했으나, 역시나 그건 자식들의 기특하지만 야무진 공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옛말에 만병에는 장사 없다고 그녀가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도 거기서 예외일 순 없었다.
그렇게 당신의 둘째 딸 집에 얼마간을 머무르시던 할머니는 그 시점에서 오래 지나지 않아 결국 요양원으로 가게 되었다.
내 기억 속에서 할머니에게 받았던 따뜻한 말 한마디나 눈길이 감지되지 않는 걸 보면 우리 할머니도 그렇게 표현이 많은 분은 아니셨던 것 같다.
그 시절 여느 여성들이 그랬듯, 우리 할머니도 그저 어린 시절 가난하게 사시다,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 변변치 않은 남편에 자식 다섯을 건사하며 묵묵히 당신의 삶을 살아내신 분이었다.
할머니는 당신이 채 스무 살이 되기도 전부터 낳은 다섯 자식 중에서도 막내아들인 작은 삼촌을 가장 예뻐하셨고, 그 사랑은 그 막내아들의 자식들에게까지도 그대로 이어졌다.
가난한 집에서 속 한번 썩이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준 막내가 의지할 곳 없고, 기대할 것 없던 할머니의 삶에선 유일한 한 줄기 빛이자 희망이었을 것이다.
반면 당신에게 둘째 딸이자 나에겐 엄마인 셋째에게는 늘 애달픈 마음만 품고 계셨을 할머니. 일부종사하지 못한 채 방황하며 이제나 저제나 좀 편안한 삶을 살까 당신네 속을 부단히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을 둘째 딸. 그 둘째 딸을 가장 힘들게 한 남자의 소생이 바로 나이니 나를 볼 때마다 할머니가 느꼈을 감정이란. 글쎄… 미움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애증의 마음은 아니었을까. 지금쯤이 되어서야 그렇게 나는 조심스레 가늠해본다.
‘할머니’하면 늘 내 안에 간직되어 있던 기억 하나가 있다.
당신이 그렇게도 소중해마지 않던 막내아들의 첫째 아들. 그러니깐 나에겐 사촌동생인 아이를 내가 잠깐 보살펴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물론 나도 아홉 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였다. 그 당시 나는 잠깐 자리를 비운 할머니를 대신해 나보다 여섯 살 어린 사촌동생을 돌보고 있으라는 내 아홉 살 인생 최대의 미션을 부여받아야만 했다.
아주 먼 예전의 기억이라 기억의 조각이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있긴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사실 한 가지.
그건 아홉 살의 ‘내’가 세 살도 안 된 어린 사촌동생을 질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늘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우리 집의 풍경과는 달리 삼촌네 집은 언제나 고요하고 평화로웠고 외숙모는 늘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리고 그런 삼촌, 외숙모를 닮은 어린 사촌 동생 역시 한없이 귀엽고 천사 같기만 한 아이였다. 그런 삼촌네 단란한 가족은 외갓집의 자랑이자 우리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에 반해 그때의 나는 어떠했던가. 나의 못 난 얼굴은 내가 그토록이나 중오해마지 않던 내 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아 있었고, 그렇게 거칠고 못난 외모만큼이나 내 마음은 늘 삭막하고 황량하기만 했다.
눈만 뜨면 펼쳐지는 액션스릴러공포영화에 나올법한 장면 장면들, 무엇보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절망케 하는 건 아무도 나를 보고 웃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홉 살이 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알아차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결코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앞으로도 이 험악한 세상 위에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도 처절하게 나 자신을 단련해야만 할 것이라는 것을…
암튼, 그렇게 바라만 보아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천진난만한 미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던 천사 같던 내 어린 사촌동생을, 나는 그날 그렇게 울려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어렴풋한 내 기억으로 사건의 발단은 과자 한 조각 때문이었던 듯싶다.
할머니가 나에게 동생을 맡기고 어디론가 나가자 동생은 자신의 보호자가 사라짐에 불안했던지 얼마 안 가 울음을 터뜨려버리고 말았다.
집안이 떠나가라 울어대는 동생을 눈앞에 두고 아홉 살의 나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그때 내 손에 들려있던 크래커 하나.
아마도 그때 나는 동생에게 과자를 주며 어린 동생의 슬픔을 달래 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은 안절부절못하며 내가 건넨 과자를 받자마자 야무지게도 바닥에 내던져버렸고, 오히려 동생을 달래려 했던 나의 호의이자 선의는 동생을 패닉의 세계로 더욱 빠뜨려 버리는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동생의 거세어지는 울음소리를 따라 그렇게 나 역시 패닉 상태에 빠져 들고 있을 때 즈음, 외출을 나갔던 할머니가 돌아오셨다.
그때 집안에 들어서면서 흔들렸던 할머니의 두 눈동자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당신의 허리가 휘청 하는 줄도 모르고 갓난쟁이 때부터 손수 업어 키운 손주의 얼굴이 서러운 눈물로 범벅이 되어 돌아온 할머니를 애처롭게 바라보고만 있었으니… 그 손주의 가여운 얼굴에서 눈길을 거두지 못하던 할머니는 이내 내 쪽으로 눈길을 돌리셨고, 어정쩡한 자세로 거실 한 편에 서 있던 나는 마치 큰 범죄라도 저지르다 걸린 용의자처럼 할머니를 바라보는 것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다.
“어쩌자고 애를 울려… 거기 손에 든 과자라도 애한테 좀 주지 가만히 서서 뭐 하고 있었어?”
그렇게 가벼운 쓴소리와 함께 할머니는 이내 내게로 향했던 책망의 눈길을 거두고 아직도 울음을 그치지 못한 동생을 달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내 손에 들려있던 카레맛 향이 묻어났던 작은 크래커 봉지 하나.
그건 분명히 동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손녀에게 할머니가 할 수 있는 당연한 잔소리였다. 그런데 왜 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에서까지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때 할머니는 보지 못했던 바닥에 내동댕이 당한 과자 조각처럼, 그때의 나는 그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곳 그 어디엔가 내동댕이쳐진 존재와도 다름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얼음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어 서 있는 대신에 할머니에게 이렇게 울부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 저도 좀 달래주세요. 저는 매일매일 울고 있다고요. 저도 지금 동생만큼이나 많이 슬프다고요. 저도 지금 동생만큼이나 많이 슬프다고요. 그러니 저도 좀 제발 따뜻하게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오랜 투병 끝에 할머니가 떠나셨다. 할머니는 한 줌의 재가 되어 바다에 뿌려지셨고, 아마도 그곳에서는 자유의 몸이 되셨을 것이다.
그 흩날리는 재속에 할머니를 향한 서러움도, 아쉬움도, 애잔함도 모두 함께 털어보낸다.
꽃피는 춘삼월 이 세상에 왔다가 찌는 듯한 무더위가 조금씩 가실 무렵 홀연히, 아니 조금은 묵직하게 이 세상 여행을 끝낸 당신, 당신 떠나는 그 길에 남겨진 이들의 아픔 또한 모두 거둬 가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