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말씀하셨다. 그렇게 생각해야 살아진다고.
아이들과 식혜를 만들었다.
일반 식혜, 단호박 식혜 골고루 한 통씩.
꼬박 반나절을 만들고
또 차가워지길 밤새 기다린 식혜를
남편에게 정성스럽게 한 컵 건넨다.
남편은 한 모금을 마시고 음미하더니 말한다.
“솔직히 평가해도 돼?”
남편은 언제부턴가 이른 퇴근에도 저녁을 먹고 들어온다.
나는 굳이 따로 차려주지 않는다.
다만 그날 저녁 메뉴를 말해줄 뿐이다.
“오늘 저녁은 매실간장소스 뿌린 닭다리채소구이에 현미밥이야.“
“오늘은 치즈 토마토 해산물 스파게티에 유부초밥이야.”
“오늘은 묵은지김치지짐, 오이고추된장무침에 목살과 채소들이야.”
남편은 선택한다.
묵묵히 주는 걸 먹을 것인가, 사 먹을 것인가.
그 외의 선택지는 없다. 그게 우리의 규칙이 되었다.
이 규칙이 생긴 건 얼마 전이다.
십 년을 다투다가 정착한 규칙이다.
나는 요리를 즐긴다.
그런 내가 어느 순간 남편에게는 요리를 해주지 않게 되었다.
남편은 항상 차려진 밥상에 무언가를 추가했다.
내가 보기엔 ‘이 정도면 적당’했는데,
남편은 스팸을 굽거나, 라면을 끓이거나 냉동 떡볶이나 쫄면, 군만두 등을 꺼냈다.
하다 못해 조미김이라도 꺼내왔다.
그러면서 말한다.
“먹어 치워야지.”
그렇게 내가 차린 밥상에는 남편이 차린 것이 같이 올라왔고,
아이들은 당연히 아빠가 차린 음식들을 좋아했다.
“엄마 나도 라면 씻어 줘.”
“밥 안 먹고 떡볶이 먹을래.”
“김만 먹을래.”
이것뿐인가?
요리를 할 때엔 그때그때 설거지를 하는 나는,
저녁 식사 후의 식기들도 설거지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요리한 도구들이 쌓이면?
떡볶이 소스가 묻은 냄비에 다른 식기가 들어가 빨간 소스로 범벅이 되고
군만두를 조리한 프라이팬을 기름 있는 그대로 싱크대에 넣어
기름기가 여기저기 묻어있을 땐 화가 났다.
“내가 준비한 저녁 식사 그대로 앉아서 먹어줘.”
“먹어치운다는 말투가 좀 그래. 그 말 쓰지 말아 줘. “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은 저녁 식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다.
남편을 위해 평소 먹는 메뉴에 이것저것 더 올려보기도 했다.
달걀말이에 김치찌개에 미역국까지.
참 피곤한 일이었다.
매일 상 가득 무언가 차려내어 결국 버려야 한다는 게.
그렇게 서로를 내려놓았다. 십 년간 찬찬히.
마흔의 주말은 종일 함께이다.
나는 맛있게 먹어주는 이들을 위해
그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준비해
시간을 내어 음식을 한다.
갓 담근 겉절이에 닭다리백숙,
수제 피클에 짜장면과 짜장밥,
미역국에 달걀찜,
치즈 단호박 해물찜,
샤부샤부,
수육과 양배추쌈,
낙지찜,
마파두부덮밥
소고기 유부 초밥
…
이때만큼은 남편은 묵묵히 차려진 것만 먹는다.
그 어떤 것도 더 꺼내지 않는다.
주말 중 한 끼는 남편이 먹고 싶은 걸 직접 차린다.
라면, 스팸, 햇반, 조미김, 군만두, 너겟 …
잔뜩 차려 다 같이 맛있게 먹고 남편이 설거지까지 한다.
또 다른 한 끼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걸 먹는다.
보통은 회를 사 와서 먹거나 소고기를 구워 먹는다.
마늘과 쌈과 함께 내어주면 그제야 배를 두드리며 만족한다.
그렇게 적당히 편안한 주말을 보낸다.
처음엔 남편을 아들이라고 생각하려니 미간부터 반응했다.
순간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어? 싶은 순간도 되게 많았다.
그래도 십 년을 잊지 않은 그 말.
‘남편은 아들이다.’
이제야 조금 내려놓고,
상대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돌봐주어야 할 존재라 생각하니
상대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주는 듯했다.
그렇게 삼십 대의 치열한 고비를 넘겨냈다.
그렇다고 이 치열한 갈등이 끝날 리는 없겠지만.
이제 마흔의 우린 또 어떤 치열함과 마주할까?
치열한 모든 사랑에게 말한다.
어쩌겠나, 살아내 보자.
마흔,
세계와 자아가 내키지 않는 합의를 시작하는 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