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우릴 따스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애가 셋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셋을 키울 만큼 돈이 많지는 않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우리 중 제일 가난한 애가 제일 많이 낳았다며 놀림을 받기도 했다.
부정할 수 없었다.
실제로 익명의 누군가에겐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들은 돈이 부족한 채로 애를 낳는 것 자체를 혐오하고
우아한 장소에 애가 있을 땐 불편해하며 바라봤다.
조롱을 하지 않는 이들은 가여워했다.
극단적이었다.
뜬금없이 주는 사탕, 용돈 천 원에 우리는 감사해하며
가던 길을 멈추고 훈화말씀을 들어드렸다.
감사하면서도 마음이 이상했다.
누군가는 혜택이 많다며 시기를 했다.
대학을 무료로 간다거나
집을 준다거나 하는 것들이
마치 사실처럼 떠돌았다.
신문 기사 역시 교묘했다.
소수의 혜택을 전부의 혜택마냥 써 내려가서 조횟수를 얻었다.
그렇게 사회는 우리를 양가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불과 1~2년 전에 말이다.
요즘 사회 분위기는 뒤바뀌었다.
급격하게 말랑말랑 보들보들해졌다.
역시 한국인은 뭐든 빠른 민족인가?
누군가는 가장 멋있는 건 ‘카니발을 탄 애 셋 부부’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가 바로 그 (자동으로 문이 열리는) 카니발 탄 애 셋 부부이다.
카니발 탄 아저씨를 조롱하던 이들이 이젠 위너라 말하니
기분이 묘했다.
30대에는 해야 할 것이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적어도 작은 집은 하나 마련해야지
적어도 차는 이 정도는 돼야지
연봉은 이 정도는 받아야지
일 년에 해외여행을 한 번은 가야지
미라클 모닝도 지켜야지
20대까지 모범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30대에는 모범적으로 살아보려 애썼다.
진짜 어른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들이라 여겼고,
그렇게 완벽한 삼십 대를 보내고 나면
노후는 달라질 것만 같았다.
해야 할 것을 하나씩 해내고 나면 끝이 아니었다.
다음 미션이 촘촘하게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한 계단 올라온 자들이 모여
또 다음 계단을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단은 끝이 없었다.
한 길만 파던 사람이 도달한 그곳을
평범하게 여러 길을 파던 사람이 도전하려니
어떤 계단에서도 높은 곳은 꿈 꾸지도 못하는 하위 그룹에 속했다.
어중간한 삼십 대.
그렇게 십 년을 보내고 나니 남은 건,
자존감이 떨어진 나였다.
- 나는 남들처럼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해.
- 나는 정리도 제대로 못해.
- 나는 요리도 완벽하게 하지는 않잖아.
- 나는 애들에게 책을 제대로 읽어주지도 못해.
- 나는 설탕과 밀가루를 끊지도 못해.
- 나는 운동을 하다 말아.
- 나는 피부도 안 좋아.
- 나는 살도 못 빼.
하루하루를 채워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고만 있어
나는!
엉망이 되어!
겨우 늙어만 가고 있어!!!
그렇게 생각한 게 딱 서른아홉이었다.
조급했다.
순간순간 발이 꼬였다.
넘어지면 또 일어나 조급해했다.
남들은 계단을 오르고 있다고만 느낄 때에 나만 오르는 척 제자리였다.
이제 어쩌지? 종종거리다가 하던 걸 멈췄다.
이건 내가 아니었으니까.
다시 찬찬히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서른아홉의 형편없는 난,
할 수 있는 거라곤 별로 없었지만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매일 해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을 안았다.
사랑한다 오늘도 기분이 좋다 속삭여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그러고 나면 시간이 꽤 지났다.
아이가 유난히 떼가 심한 날에는 더 꽉 안아주었다.
- 엄마가 힘들지만 그래도 사랑해
등원하러 나가기 전에는 립밤을 발라보았다.
피부병이 심해졌다가 나아진 후로,
면역력이 떨어져 화장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선크림은커녕 로션도 바르기 힘들어
그대로 놔버렸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성분이 좋은 립밤을 바르는 것.
입술만 조금 붉어져도 얼굴이 해사해졌다.
요리는 루틴을 만들어 30분 내에 끝낼 수 있는 수월한 것만 했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 남는 시간은 책을 읽다가 낮잠을 잤다.
오후엔 아이들과 산을 돌다 도서관에서 쉬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간단히 차린 도시락을 먹고 집에 와 씻고 다 같이 누웠다.
누워서는 오늘도 고맙다고 연신 말해주었다.
서른아홉이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전부였다.
여기서 조금만 조급해져도 다른 것이 무너졌다.
상황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만족하려,
살고 싶지 않았지만 살아내 보려 애썼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든
사회의 기준은 언제든 변할 수 있지만
내 기준은 바뀌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그렇게 마흔이 되었다.
행복은 원하는 것을 갖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것을 줄이는 데서 온다.
Wealth consists not in having great possessions, but in having few wants.
출처: 에픽테토스, 《담화록》(Discourses) II.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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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