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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May 07. 2018

집을 분리하기로 한 휴혼, 나는 자립해야만 했다

나는 대형 증권사에서 7년을 근무하였고 1인 기업으로 세일즈도 했다. 현재는 강의를 하고 있다. 즉, 대학 졸업 후 꾸준히 일을 해온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 이야기가 나온 후의 생계는 막막함 그 자체였다. 막상 닥치면 어떻게든 살아지겠지만 실체 없는 두려움이 시도 때도 없이 나를 짓눌렀다. 홀로 서기라는 과제 앞에 마주하니 나 자신이 너무나 나약하고 작아 보였다. 급기야 나는 ‘연탄 자살’을 검색했다.     

    

주변 대부분의 기혼 여성들은 아이를 등원 혹은 등교시킨 후 자신의 일상을 영위하였다. 공부, 일, 운동, 배움 등 형태는 다양했다. 아이가 집에 돌아오는 시간부터 아이와 집안일에 집중했다. 퇴근을 한 신랑이 집에 돌아왔을 때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를 듣고서 “낮에 안 하고 뭐했대?”라는 반응 또한 대부분 겪은 경험이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아이를 씻기고 내의를 갈아 입힌 후, 잠깐 갖는 휴식시간, 책을 읽는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블로그를 하는 여성들도 많았는데, 이 지점에서 남편과의 충돌이 잦았다.    


“애를 재우고 할 일을 해.”    


하지만 이런 효율적인 방법을 취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를 재우면서 함께 잠들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3040은 전통적인 어머니 상과 사회 진출을 하는 여성상 사이에 끼인 세대이다. 대부분 대학 졸업을 한 후 직장 생활을 했으며, 아이를 키우면서 경력 단절 여성이 된다. 학교에서는 ‘여성들의 지위가 높아진 시대’, ‘여성들도 제약 없이 사회활동을 하는 시대’라고 배웠고, 그런 줄 알고 자랐다. 젠더의식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세대인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모순적인 상황을 마주한다. 주도적인 여성, 적극적인 여성이 이 시대의 여성상이라 알고 있던 우리들은, ‘나’가 사라지는 결혼 생활에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이 간극은 결혼 휴식으로 이어졌다.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 단돈 100만 원도 없이 홀로 시작이다. 홀로서기 첫 단계가 일자리겠지만 우선 미루어두었다. 어차피 망한 거라면 하고 싶은 거 하자 싶었다. 이혼 직전의 휴혼인지, 재결합 직전의 휴혼인지 그 성격 자체는 내게 중요치 않다. 삶이 내게 주는 ‘덤’인 시간이라 생각했다. 취업이라면, 특히 비정규직 취업이라면 언제든 할 수 있을 테니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기로 했다.    

 

3인 가구에서 다시 1인 가구로, 아파트에서 원룸으로, SUV에서 경차로 돌아왔다. 절친한 친구는 이 대목에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34살에 24살 생활로 돌아왔네.”    


또한 생활비를 받아다 쓰는 객체에서 벌어야 하는 주체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과연 내가 홀로 서기를 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는 ‘잠깐 돌아온 그녀’인 나도 모른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맨 몸으로 집에서 쫓겨난 모양새다. 그래서인지 친구 몇몇은 내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결혼과 자립. 상충하는 단어 같지만 상생되어야 하는 필요충분조건이다.


자립은 미혼, 비혼, 이혼, 졸혼뿐 아니라, 결혼에서도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만 독립된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고 그다음 단계가 무엇이든 도모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결혼 생활은 공유, 연대뿐 아니라 철저히 개인적인 사안 또한 존재한다. 나는 자립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결혼 생활 동안 번 돈은 생활비나 외식비, 여행비로 나갔고, 따로 비상금을 저축해두지도 않았다. 덕분에 원룸 보증금은 친구에게 빌려야 했고, 당장 오늘내일의 생활비 걱정으로 있는 돈을 다 끌어 모아야 했다. 딱 10년 전,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그때보다 훨씬 못한 조건이다.

현재 내게 없는 것은 따박 따박 월급 주는 연봉 3500만 원짜리 직장과 신입 입사가 가능한 이십 대라는 나이이다. 내게 있는 것은 매달 나가야 할 대출금과 부양해야 할 아이이다. 어쨌든 독립은 이루어졌고 중대한 결정에 합의해준 남편에게 감사하다. 홀로서기, 나의 깜냥이 그만큼 되니, 또한 무언가 시작하기에 적당한 때가 되었기 때문에 삶이 준 것이리라 믿는다. 단지 삶을 믿고, 삶에게 기대어, 삶이 흐르는 대로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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