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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로 May 28. 2018

시현 씨, 그 자체로 반짝반짝하다는 거,알아요?

결혼 만 4년 만에 처음으로 동네 엄마들과 술을 마셨다. 동네 도서관 부모 교육 때 만난 같은 조 엄마 두 명. 이후 일곱 명의 엄마들이 2주에 한 번씩 부모 교육 스터디를 하고 있는데 같은 조 출신이어서 그런지 유독 유대감이 깊다. 술 한 잔 하고 싶은 날, 유일한 술친구였던 신랑은 남이 될 판이고, 언제나처럼 혼자 마시기엔 적적하여 두 언니에게 슬쩍 메시지를 보냈다.


- 오늘 한잔하자고 하기엔 너무 갑자기일까요?

기다렸다는 듯 답이 온다.

- 정말 한잔하고 싶은 날이네요.

- 어쩜 저도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 아줌마들이 진짜.    

급작스러운 ‘번개’ 제안에 눈 깜짝할 새 회동은 이루어졌다. 심지어 한 명은 다음 날 병원 예약까지 취소하고 나온단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긴 두 엄마와 달리, 나는 아이를 대동하고 나서야 했다. 이런 나를 배려하여 놀이방이 있는 고깃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남편과의 ‘정상적’인 관계에 처해 있다면 오늘의 밤마실은 기약이 없었을지 모른다. “오늘 동네 언니들이 한잔하자는데, 가도 돼?” 눈치 보며 남편에게 묻는 상황이 싫어, 운동 센터 회식도, 소규모 모임도 단 한 번 참석하지 않았다. 대개 엄마들의 모임은 늦은 시각 이루어진다. 남편은 술자리에‘만’ 가면 되지만, 아내의 술자리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이 저녁밥상을 차리고, 씻기고, 잠자리를 봐주어야 비로소 현관문을 나설 수 있다. 그렇기에 대개 회식 시작은 밤 아홉 시였다. 밤 아홉 시. 내 가정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시간이다.

“뭐? 그 시간에 만나면 몇 시에 들어온다는 거야? 애는? 내일 내 출근은?” (애는 잘 것이고, 출근은 하면 된다. 내가 뭐 집에 안 들어오나?)    


얼른 오라고 손짓하는 엄마들을 발견하고 자리에 앉았다. 돼지 생갈비 3인분을 굽고, 소맥을 말았다. 한쪽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Y 언니가 말아준 소맥 비율이 환상적이다. 돼지갈비는 거의 다 먹어가고 소주병과 맥주병도 세 병을 넘어가고 있다. 추가로 시킨 돼지 껍데기만이 붉게 탄다. 열일곱 살 이후 처음 마주한 돼지 껍데기. 쌈장을 찍으려는데 맞은편 대각선에 앉은 H 언니가 내게 눈짓을 한다. “저거” 하며 가리키는 건 카레 가루. 좋아하지 않는 향의 향신료다. 기호에 맞지 않는 음식. 지점장과 처음 먹어본 콩국수에 거의 토할 뻔한 신입사원의 내가 떠오른다. 권한 사람의 배려를 생각하여 카레 가루를 아주 살짝 묻힌다. 조심스레 맛을 보니, 어머, 괜찮다. 카레 가루를 한 번 더 묻히는 그때다.


“그거 알아요?”

Y 언니가 불쑥 묻는다.

“뭐요?”

“시현 씨 되게 반짝반짝 빛난다는 거요”

반짝반짝. 잠깐 그 의미를 맘껏 느껴본다. 고기 굽는 열기와 술기운에 제법 몽롱하다.

“반짝반짝한다는 것이 무슨 뜻이에요?”

“그게, 음. 반짝반짝해요. 내 표현이 너무 거지 같은데,” 그녀는 기자 출신 작가이다. “처음 봤을 때 시현 씨 눈빛, 강사 말을 듣는 시현 씨 눈빛, 오늘 힘든 일을 말할 때 시현 씨 눈빛, 본인 이야기를 할 때 시현 씨 눈빛. 다 되게 반짝반짝해요.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화장 안 하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와도요?”

“네, 그 자체로 너무 반짝반짝해요. 나는 오늘 시현 씨가 힘들다는 얘기 했을 때도 저 눈빛을 가진 사람이라면 강하겠구나. 무슨 결론이 나더라도 흔들리지 않겠구나를 느꼈어요.”

그녀는 겨우 나랑 네 번 봤다. 그것도 일주일에 두 시간씩. 동네 도서관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만난 같은 조. 그런 그녀가,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가, 그런 그녀가 나에 대해 말한다.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라는 말에 냉큼 받아먹었다.

“대충 알겠어요.”    


다음 날 아침, 이불속에 누워 멀뚱멀뚱 전날 대화를 곱씹어보았다. 은근한 불안함과 막막함이 기저에 깔려 있던 요 며칠이 새삼스럽다. 온몸 가득 반짝 반짝이 꽉 찬 것 같았다. 두 다리 힘주어 일어섰다. 더불어 새벽 한 시 넘어서 귀가했음에도 아무런 변명도, 사과도, 애교도 필요하지 않은 오늘 아침의 평안또한 자각하였다.   



 


https://bit.ly/2IHNq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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