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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Feb 15. 2019

고통을 줄이는 묘한 묘약

'붙잡으면 더디 가고 놓으면 쉬이 가는 고통'


대리 진급에 누락된 적이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사소한 일이지만, 당시 자존감은 땅 깊은 줄 모르고 한없이 추락했습니다. 퇴근 후 잠든 아이들 얼굴을 보며 '아빠가 못나서 미안해'라는 말을 탄식하듯 내뱉을 정도였으니까요.


  이 작은 사건이 도화선이 되었는지 슬럼프가 찾아왔습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은 쌓이고,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혐오스럽고, 일도 사람도 쳐다보기 싫었습니다. 입사 이후 최악의 무기력함에 빠져든 순간이었던 거 같아요. 탈출구를 찾기 위해 답 없는 취업 사이트만 들락거렸습니다.


  그런데 참 가증스럽게도 몇 년 전에는 십 년 근속상도 받았고, 여전히 같은 회사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그동안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도, 남다른 해결 방법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심스레 시간에 역행하지 않고 지금까지 흘러왔을 뿐입니다.


  "나는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바리데기>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때로는 가장 평범한 일이 진리가 되기도 합니다.



  'Time heals all wounds 시간이 약이다'는 전 세계 사람에게 처방 가능한 백신입니다. 시간은 세상 누구에게나 똑같이 무료로 주어지니까요. 경험을 통해 알겠지만, 시간은 과거를 희석하는 묘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을 만큼 지치고 힘든 순간도 시간이라는 묘약으로 서서히 치유 되잖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28살의 여름. 저는 취업하고도 집에서 부족한 카드값을 구걸하는 철부지 막내였습니다. '아빠 없이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에 엄마를 부둥켜안고 미친 듯이 울었어요.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엄마, 거동 불편한 외할머니, 철딱서니 없는 저 셋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비참하게 가장이 되었다는 생각에 자주 울었습니다.


  계산해 보니 137,000시간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버지 얼굴과 따듯했던 추억은 여전히 또렷하지만, 가족을 떠나던 순간의 고통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습니다. 시간이라는 묘한 묘약이 괴로움을 희석시키고, 상처를 조금씩 치유했기 때문이겠죠.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흐릿해질 고통에 너무 집중하면 괴로운 현실의 시간이 비껴가지 못합니다. 시간이라는 명약을 믿고, 슬픔과 괴로움보다는 행복했던 순간을 자주 떠올릴 때 고통은 좀 더 쉬이 흘러갈 것입니다.


  한 발 뒤로 물러나 세상을 바라보면 고통이라는 현실은 행복한 추억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순간의 고통보다 행복했던 추억이 더욱더 또렷하게 기억나는 것처럼, 행복한 기억이 커지면 고통은 상대적으로 줄어듭니다. 고통의 크기는 시간의 흐름과 반비례하니까요. 고통은 붙잡으면 더디 가고, 놓으면 속절없는 시간과 함께 쉬이 가버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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