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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Feb 08. 2019

어쩌다 외로운 어른이 된 나

‘너무 당연해서 의식할 수 없는 감정'


회사에서 동우회 활동도 두 개나 하고, 개인적인 취미 생활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동료들과 어울려 술도 마시고, 토요일에는 온전히 아이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일요일은 가족 모두 교회에 가기 때문에 낮 동안 영화 보고, 글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고 있어요. 평범하면서도 분주하게 반복되는 직장인의 일상이자 제 인생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치떠는 회사원이다 보니 평범한 일상에 갑작스러운 태클이 들어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스트레스와 더러운 감정을 툭툭 털어내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왔습니다. 오랜 시간 인고의 길을 걸으며 참고 견디는 법을 습득했다고나 할까요. 이런 저만의 노력을 책에 담아 후배들에게 '참고 견디는 법을 배워라', '사표 내지 않을 용기를 가져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직장생활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현실. 한순간도 넋 놓을 수 없고,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할수록 현실은 더더욱 험난해집니다.


  제 노력이 부족해서였는지, 직장생활에 큰 고비가 찾아온 적 있습니다. 오랜 기간 쉽게 가라앉지 않는 검은 감정의 부산물을 덜어내고자 심리상담을 받았습니다. 좀 더 떳떳한 직장인이 되고 싶은 바람과 잘 극복하면 후배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죠.


  첫 상담을 받으면서 제가 겪는 이런저런 상황을 덤덤하게 털어놨어요. 사실 '처음 본 저를 설문 몇 개로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잠깐의 대화로 어떻게 내 마음의 짐을 덜어줄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내려놓지 않은 채 상담을 마쳤습니다. 오히려 시커먼 속마음만 들킨 거 같아 찝찝한 마음으로 상담실을 나왔죠.



  두 번째는 처음보다 훨씬 많은 분량의 설문지를 작성해 갔습니다. 설문 내용을 토대로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던 중 상담사가 뜬금없이 던진 한마디에 울컥했습니다.


"많이 외로우신 거 같네요."

"네?"


  제 말에서, 설문 내용 곳곳에서 외로움이 배어난다고 했습니다. 참 당황스러운 말이었어요. '너 외롭니?'라고 스스로 물으며 상담하는 내내 '외로움'이라는 말을 곱씹었어요. 내가 뱉은 어떤 말에서, 내가 작성한 어떤 내용에서 외로움의 단서를 찾아냈는지 궁금했습니다.


외로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마주친 상담사 눈빛이 거북해 물었습니다.  


"왜 자꾸 그런 눈으로 보세요?"

"제가 어떤 눈으로 보는데요?"

"불쌍한 아들 바라보는 아빠 같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시선 마주치는 게 불편했어요. 그런 저에게 상담사는 좀 더 솔직하게 속마음을 얘기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마음을 열지 않는 것 같다면서.


"그럼 질문을 아주 디테일하게 해주세요. 제가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얘기할 수 있게…"


  많은 대화가 오갔어요.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피할 수 없는 현실 한탄이자 푸념이었습니다. 이런 넋두리 속에서 외로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죠.


  평소 진지하지 못하고 농담을 일삼는 제 행동도, 친구는 많지만 진정한 친구는 별로 없다는 설문지 답변도, 내가 그랬듯 내 아이들도 곧 부모 품을 떠날 거라고 흘리듯 했던 말도, 다 제 외로움이 반영된 결과라고 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서술어를 완성하는 설문지 문항 중 '아빠는__________'라는 질문에 '외로운 사람'이라는 답을 적고도 의식하지 못한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제 아버지를 떠올렸을 뿐이었으니까요.


  내 아버지와 내가 그랬듯, 어쩌면 이 시대의 가장에게 외로움은 너무 당연해서 스스로 의식할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밤새 술을 퍼마시고 다음 날 숙취에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다시 폭음을 택하는 것도 숙취보다 외로움이 더 참기 힘들어서 아닐까요? 대한민국이라는 같은 지붕 아래서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가장과 외로운 순간을 동행하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시리면서도 위안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제 모습도 외로움이라는 불편한 감정을 잊고자 하는 백조의 발버둥이 아닌가 싶네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속마음을 6주간 꾸준히 배설하니, 검고 묵직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걸 느꼈습니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에서 가족의 무관심과 학대로 외로운 제제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누군가(나무)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던 것처럼요. 누구나 가족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이 있을 테니까요. 덕분에 제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외로움도 조금 덜어낸 것 같았습니다.


  외로울 틈 없다고 자부했던 제가 외롭다는 걸 투명하게 들켜버린 날, 집으로 돌아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더는 외롭지 않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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