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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Feb 01. 2019

너답지 않게라는 무서운 말

'누군가를 재단하고 규정짓는 실수'


가끔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저를 믿고 신뢰해 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처음 이 말을 들었던 이유는 문서상에 저지른 실수 때문이었습니다. 맞춤법이나 숫자 오기 등 단순한 것이었어요. 팀장 표정이나 말투에서 건조함이 느껴진 만큼 비난하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죠. 오히려 '그래 그만큼 나를 믿는 거겠지'라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가 되니까 당황스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믿어주는 사람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실망 때문이랄까요. 상사의 의중은 확실하게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왠지 부족한 것 같은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남들이 툭툭 내뱉는 '너답게'라는 말에 쉽게 흔들리는 건, 어쩌면 남이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팀장은 직원을 부를 때 직급이나 이름 대신 '프로'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신입 때 저를 '장 프로'라고 불렀어요. 별 의미 없이 받아들였는데, 어느 날 무심코 '프로'의 의미를 떠올리니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프로는 전문가를 뜻하고, 전문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신입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죠. 그런데도 근거 없는 '프로' 수식어를 붙인 건 '빨리 프로가 돼라'는 기대를 역으로 표현한 게 아니었을까요.


  똘똘한 초등학생 딸에게 은근히 많은 걸 기대합니다. 항상 백 점만 맞다가 가끔 한 두 문제라도 틀리면 "괜찮아, 왜 틀렸는지 알고 다음부터 안 틀리면 돼."라고 쿨한듯 말하지만, 속으로는 '내 딸답지 않게 왜 그랬을까?'라는 못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거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은 개인의 욕심이자 맹목적 바람일 뿐입니다. 상사가 조직원에게, 조직원이 상사에게, 갑이 을에게, 부모가 자식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거는 기대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재단하고 규정짓는 보이지 않는 잣대는 상대의 행동을 제약하는 족쇄니다. 그래서 상사가 부담스럽고, 을이 갑에게 분노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실망하는 게 아닐까요? 다들 저마다의 기준으로 상대에게 '너다운 무엇'을 기대하고 있니까요.


  술자리에서 평소보다 말수가 적으면 친구들이 저에게 한마 건넵니다.



"무슨 일 있어?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저는 아무 일도 없고, 친구들 이야 듣는 데 더 집중하는 것뿐인데 말입니다. 평소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수다스럽고, 분위기 띄우는 사람으로 규정지어졌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끔은 저를 많이 아는 듯한 상대의 말 한마디가 굉장히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너답지 않게'라는 말에는 '난 너를 잘 알아'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나조차 내 안의 무수한 나를 잘 모르는데, 타인이 어떻게 나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찌 보면 이 말은 이기심이 담긴 무서운 말일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의 무한한 가능성과 그 만의 세계를 '너답게'라는 한마디로 규정지어 가두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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