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과 나불나불 떠들면서 불평불만과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편이다. 그런데 가끔은 입 밖으로 소리 낼 수조차 없을 만큼 깊은 고통과 아픔, 슬픔이 찾아들 때가 있다. 주변에서 내뿜는 다양한 괴로움을 오롯이 홀로 감내해야 하는 외롭고도 괴로운 직장인의 삶이라고나 할까.
최악의 인사고과를 받은 적 있다. 결과를 전하는 팀장의 부드러운 말속에 미안함과 단호함이 느껴졌다. 이로 인해 파생될 미래의 불편한 일들이 눈에 선했지만, 돌이킬 수 없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가 뭐라든, 어찌 됐건, 변명과 상관없는 일 년 간의 내 성적표니까.
하지만 내가 노력한 모든 게 부정당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가슴 한구석이 휑했다. 유난히 찬 봄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이 서러움과 더러움, 서글픔, 초라함을 나눌 사람이 없어 어깨는 바닥으로 점점 더 흘러내렸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청승 그 자체였다. 미세먼지 잔뜩 머금은 흐리멍덩한 하늘만 유일하게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결코 떨어질 것 같지 않은 끈적한 괴로움을 홀로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순간을 잘 헤쳐 왔기에 지금 이 청승도 누릴 수 있는 거겠지. 거부해도, 받아들여도 분노라는 독은 서서히 중화된다는 놀라운 사실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혼란스러운 감정은 늘 그래 왔듯 두 갈래 길을 제시했다.
'받아들이는 길'과 '거부하는 길'
선택에 따라 내일을 맞는 마음이 달라진다.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괴로움은 커지고 방황의 날이 길어진다는 걸 잘 안다. 아무리 홀로 고통스러움에 치를 떨어도 회사도 세상도 잘 돌아간다. 내 삶만 일그러진다. 그래서 경험을 스승이라고 하는가 보다. 스승님이 어찌해야 하는지를 슬쩍 알려주는 셈이니까.
집에 가는 동안만 괴로움과 더러움을 실컷 곱씹었다. 그리고 집 앞에서 허공에 모조리 게웠다.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상처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나 할까. 스스로 가슴에 새긴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잠시 머문 상처는 빗물 속 휴짓조각처럼 약간의 흔적만을 남긴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빨리 흘려보내는 게 상책이다.
"분노와 어리석은 행동은 나란히 길을 걷는다. 그리고 후회가 그 둘의 발굽을 문다."
미국의 과학자 겸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 말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분노를 품고 상처에 집착하느냐, 마음속 깊은 도랑으로 쉬이 흘려보내느냐는 개인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아픔은 인정하면 극복이 되지만, 간직하려고 애쓰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직장인에게는 검은 마음을 과감하게 배출할 줄 아는 무심함이라는 능력이 필요하다. 어차피 내일은 찾아오고 똑같은 하루를 맞아야 하니까.
어설프게 슬픈 밤을 보내고 아무런 일 없는 듯 떳떳하게 내일을 맞이했다. '군인 정신'보다 무서운 '직장인 정신'. 격동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빠져나가는 통에 시원찮게 마음에 도사리던 케케묵은 감정들이 시원하게 밀려 나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