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Feb 07. 2020

불신 가득한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하나

'쥐를 잡았다' 세 사람 인생이 망가졌다


불신(不信)은 '믿지 못함'의 의미고, 불신(不愼)은 '말이나 행동 따위를 삼가지 아니함'이라는 뜻이다. 누군가를 믿지 못하면 신중하지 못한 말과 행동이 나온다. 누군가는 불신 지옥을 경험한다.


출근길에 자주 마주치는 젊은 부부가 있다. 같은 칸에 타서 같은 역에서 내린다. 어느 날부터 여자가 운동화를 신고 노약자석에 앉았다. 임신했다는 걸 다. 여느 때와 같이 부부가 함께 전철에 올랐다.


"젊은 사람이 왜 여기 앉아!"


어르신의 심술궂은 호통이 들렸다. 불신(不信)이었다. 앞에 서있던 남편이 임산부라고 얘기했다. 상황이 일단락 줄 알았다. 불신(不愼)이 일어났다.


"임산부? 아닌 거 같은데 뭐."

"임산부 맞다고요!"


"산모 수첩 보여드려요?" vs "됐어!" 옥신각신 짜증 섞인 말들이 오갔다. 귀를 닫았다. 이른 아침 지하철은 불신 가득한 세상이었다. 보호받아 마땅한 노인과 임산부의 다툼이 일순간 주위를 삭막하게 물다.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가 떠올랐다. 주인공의 아내와 동생 쥐를 잡았다. 집안과 옷매무새가 엉망이 됐다. 남편은 불륜을 의심했다. "쥐? 훌륭한 쥐 잡겠다"며 둘을 두들겨 패 쫓아냈다. 아내는 죽고 동생은 떠났다. 불신(不信)이 불신(不愼)을 야기했다.

 

아내와 동생을 의심한다. 부모의 진심을 경계하고 자식 말을 믿지 않는다. 애인 변명은 거짓말이 되고, 팀장 조언은 가식이 되는 세상이다. 늦은 밤 뒤서 걷는 검은 그림자는 의심 속 약탈자가 된다. 공교롭게 방향이 같을 뿐. 따라가는 남자 마음도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불신 지옥이 빚 결과다.


"그놈은 물건을 싸게 사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를 완벽하게 간파한 사기 수법으로 6년 동안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얼마 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룬 방송 내용이다.  중고나라 통해 수년간 사기를 쳤다. 어느 순간 일상으로 파고든 보이스피싱, 몸캠피싱을 비롯해 평범한 탈을 쓴 사기꾼들이 판치고 있다. 구도 믿을 수 없다.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심리는 믿음 대신 의심의 자양분이 됐다.


불신 가득한 세상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하나다. 태도다. 의심하거나 조금 더 믿어 보거. 의심은 진심왜곡한다. 의심을 피하는 길은 나도, 가족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거다. 불신(不信)이 불신(不愼)을 야기한다. '쥐를 잡았다' 그리고 세 사람 인생이 망가졌다.









이전 16화 쓰레기통을 비우고 광내는 의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