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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an 16. 2020

부인할 수 없는 현실 속 주인공

"삶은 자신에게 내어줄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

삶은 자신에게 내어줄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

인생의 주인공이라 여기고 싶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 물론 꿈을 깬 지 오래다. 하지만 여전히 '난 내 인생의 주인공이다'라고 외쳐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서 오는 영원한 숙제랄까. 조금 덜 상처 받고 덜 아프게 사는 방법일 테니까.


영화 <라이온 킹>에 비열하고 탐욕스러운 아싸 스카(사자)가 등장한다. 영화의 매끄러운 전개를 재촉하는 묵직한 악역이다. 아울러 주인공 무파사와 심바를 빛나게 해주는 존재다. 일등만을 외치는 세상에 대한 반감일까. 빛나는 주인공보다 안쓰러운 조연에 시선이 쏠렸다. 어릴 적(1994년 라이온 킹) 느낄 수 없었던 현실의 씁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스카에 대한 연민, 동병상련에서 오는 동질감이었다.


사자는 가장 강한 수컷이 다수의 암컷을 거느린다. 이 자연의 순리는 냉혹한 현실과 순식간에 테더링 된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우리의 삶. 이기면 많은 것을 갖고 그렇지 못하면 덜 갖거나 아무것도 쥘 수 없는 날카로운 인생.


"나 진급 못 해도 상관은 없는데, 솔직히 H 혼자만 진급하는 일은 없길 바랐어."


선배는 후배에게 밀렸다. 팀장 자리는 하나였다. 후배는 팀장이 됐다. 많은 것을 쥐었다. 순간 가족(형)한테, 조카한테 밀린 외로운 사자 스카가 떠올랐다. 스카가 노력을 했다거나 공정한 기회를 부정하게 박탈당했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경쟁자에게 밀려난 그 헛헛한 마음, 뒷방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이해할 수 있다는 거다.


야심 차게 시작한 직장생활이다. 하지만 동기에게, 후배에게 치이고, 공채에 밀리고, 핵심 인재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갈팡질팡 정신을 못 차린다. 자괴감이 넘쳐 분노가 되는 일상이 반복된다. 스카처럼 일을 낼 수 없는 현실이기에 타인이 아닌 자신을 채찍질하며 상처를 준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서 아무리 내가 주인공이라고 외쳐봐야 무슨 소용?'이라고 여기면서. 마음속으로 읊조리던 '하쿠나 마타타'(걱정 근심은 모두 떨쳐버려)는 부지불식간 사라진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주인공인 일상의 드라마가 매일매일 펼쳐지고 있다는 거다.


'우리는 언제나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살아간다.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일인칭 주인공 시점은 소설 속 '나'라는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을 자신의 입장에서 서술한다. 우리의 삶이다. 세상에 문제없는 주인공 없다. 한데 왜 주인공 역할을 맡고도 조연에게 휘둘릴까. 그들 때문에 주인공이 상처 받는 건 왠지 억울하다. 주연 역할을 포기하는 건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스카처럼 무모한 일을 벌이면 안 된다. 하지만 초라한 현실에 굴하지 않는 현실 자각은 필요하다. 스카에게 배워야 할 점이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욕망이다. 스카의 욕망은 비열과 탐욕으로 점철됐기에 비극적이었다. 현실 속 우리는 이를 열정과 욕심으로 둔갑시켜 기회로 삼아야 한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했다. 욕망을 억제하면 무기력해진다. 분출하면서 나를 발전시켜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하게 움켜쥐려면, 스카처럼 무너지지 않으려면 주인공으로 무대에 설 준비가 필요하다. 삶이란 자신에게 내어줄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욕망이든, 악이든, 깡이든, 여유든, 실력이든, 노력이든 끊임없는 과정을 거치며 삶은 완성된다.


모두가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며 살고 싶지만 현실은 얄궂다. 때문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각양각색의 문제를 인정하고 극복해야 한다. 조금씩 단단해지는 방법이다.


※ 하쿠나 마타타(스와힐리어: Hakuna matata)는 '문제없다'라는 뜻.

삶은 자신에게 내어줄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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