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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Oct 22. 2019

집착하지 않아도 남을 사람은 남더라

'혼자여도 된다는 비장함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 4년, 대학원 2년 반을 다녔다. 도합 18.5년. 지나고 보니 가장 중요한 건 배움도 친구도 아닌 졸업장뿐이었다. 졸업장이 있어야 다음 관문으로 입성 가능했으니까. 그런데도 정 많은 나는 유독 친구에게 집착했다. 친구들을 집에 참 많이 데려와서 재운 덕에 엄마에게 반찬 걱정을 듬뿍 안겨 주기도 했고.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하고 싶었고, 성격이 잘 안 맞는 친구랑도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맞추면 그만이라고 여겼다. 고교시절에는 전교 1등 친구부터 조금 노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공부 잘하는 친구는 공부할 기회를 주었고, 잘 나가는 친구들은 곁에서 든든함을 보장했다. 다른 학교 친구들과도 어울리는 걸 즐겼고, 친구 많은 아이라는 타이틀이 꽤 마음에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18.5년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난 후 마음의 준비 없이 당장 전화를 걸 수 있는 가장 편한 사람은 초등학교 때 친구 2명뿐이다.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도 가뭄에 콩 나듯 카톡하는 고등학교 동창 3명과 대학교 친구 3명이 다다. 그리고 번외로 학창 시절 어울리던 친구의 친구들로 엮인 7명이 더 있다. 나름 후하게 셈한 친구 총 15명. 이 중에서도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예닐곱 뿐이다.  마음먹고 여기저기 연락하면 만날 수는 있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다. 바쁘다. 마음의 여유도 없다. 나이가드니 신기하게 이 정도면 넉넉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식 없이 나를 보이고 내 진심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14년 이상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1,400명이 넘는 연락처가 모였다. 1년에 100명 꼴로 인맥 아닌 전화번호만 늘려온 셈이다. 회사를 떠났을 때 내가 과연 이 중 단 1%라도 진심어 만남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미지 출처 : 영화 '문라이트' 스틸 컷>


영화 <문라이트>는 한 흑인 아이가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랑과 정체성을 찾는 모습을 그린다. 인간의 가치와 본질적인 외로움에 대한 심오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영화는 모진 세월을 뛰어넘어 서로의 곁에 오롯이 남은 두 친구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결국 내 곁에 남은 소중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관계,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어린 시절의 독일무이한 친구. 불필요한 헤아림이나 보살핌 같은 가식이 깃들지 않은 관계면 충분하지 않을까?


인간관계는 양보다는 질이다. 단 한 명이라도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꺼낼 수 있으면 더이상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성인이 된 후 맺는 관계는 이해타산을 바탕으로 한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순수한 시절을 훌쩍 뛰어넘고 만난 탓에 진정한 친구는 아닐 것이다.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진심은 그 무엇으로도 충족시킬 수 없다. 그래서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은 모두 가식적 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만큼 마음의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에 크게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여도 충분하다는 비장한 각오는 어제와 다르게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다. 그저 시간에 맡기면 그만이다. 집착하 애쓰지 않아도 남을 사람은 결국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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