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뭘 하지 않아도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 벽이 높은 건 아니에요. 사람을 싫어해서 문을 닫고 있는 게 아니라 애쓰지 않는 것뿐이니까.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쏙 들어오기도 해요."
외롭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덤덤하게 답했다.
"외롭지만 저한텐 당연한 거예요. 사춘기 때는 친구들을 원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때 오히려 더 큰 외로움을 느꼈죠. 함께 있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은 걸 하게 되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해야 하고. 같이 있어도 같을 수 없다는 걸 알았죠. 함께 있는 게 더 외로워서 맨날 울었어요."
그의 마지막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비관적이지는 않아요. 제 안에 아픔이나 슬픔은 없어요. 기대하는 게 없어서 잘 상처 받지도 않고요."
배우 서강준의 인터뷰 답변이 내 마음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내 심경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처음 입사했을 때 1년 정도는 회사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친구들이 있는데 왜?'라는 생각에서였다. 회사 밖에서까지 굳이 부대끼고 싶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그러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필요한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야만 했다. 어쩌면 나를 버려야 한다는 걸 알아버리고 만 거다. 기회가 되면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되풀이로 새로운 삶에 올라타려는 시도를 했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잘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말 한마디에 몸짓 하나에 꾸역꾸역 나를 담았다. 내 존재를 알리고 싶었다. 가상한 노력 덕에 많은 사람을 사귀었다. 심심할 틈 없는 직장생활이 펼쳐졌다. 회사에서 장이 튀틀리는 일이 있으면 이들과 어울려 술 한 잔 하면서 거칠게 씹어 뱉으면 그만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공허함을 종종 느꼈다. 하지만 이 같은 감정이, 그때의 즐거움이, 영원하지는 않더라도 오래갈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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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흐름에 휩쓸리면서 동료들은 저마다 사연을 품은 채 흩어졌고, 허전할 때 술 한 잔 할 마음 편한 동료도 고갈됐다. 돌이켜 보면 함께 하기 위해 하고 싶지 않을 걸 하고, 하고 싶지 않은 말과 행동을 했다. 같이 있어도 같이 있지 않은 것 같을 때가 많았던 망연한 날들이었다.
그 시간을, 그때 그 감정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진짜의 나는 아니었다. 나 자신에게도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면서 '애써 누군가를 억지로 사귀기 위해 내가 아닌 모습에 집착했다. 굳이 뭘 하지 않아도 어느새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진짜의 나와 마주할 텐데. 몰랐다.
나는 오랜 시간화사한 가면을 쓰고, 억지로 관계에 집착하면서 인맥이라는 뜬구름을 잡으려고 쓰디쓴 시간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