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Dec 30. 2019

계속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

'마음에 병이 들면 찌그러진 말이 나온다'


누군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를 찝찝함에 휩싸일 때가 있다. 이런 요상한 기분은 보통 다음날 술이 깨면 사라지지만, 한동안 마음에 머물 하루의 기분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기억은 점점 더 선명해진다.


오랜만에 마주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후배는 약간의 취기가 도니 시니컬해졌다. 대화 중 아이들 얘기가 나왔다. 딸내미는 춤과 노래, 피아노 연주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꿈이 아이돌이라고 했다.


후배못마땅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솔직히 아이돌 할 만큼 예쁘다고 생각해? 요즘 예쁜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연습생들도 넘쳐나고. 근데 그걸 하라고 한다고?"



'요즘 애들 다 그래'라는 일반적인 반응과 달랐다. 흠칫했다. 차라리 공부 시키라는 주동이를 한 대 쳐주고 싶었다. 참았다. 초등학생 상당수가 연예인이나 유투버라는 꿈을 가다는 걸 는 몰랐다. 부모와 자식 물정을 잘 모르는 미혼다. 짜증을 숨기고 침착을 가장한 채 말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이 꿈이 있다는 거 자체가 기특한 일이야. 미리 나서서 안 될 거라고 말하는 부모 없을걸. 어차피 애들 꿈은 수시로 바뀌는데 뭐."


한 템포 쉬었다가 덧붙였다.


"부모 눈에 자기 자식은 다 예뻐 보여."


영화에 나오는 '가족은 건드리지 말아라'라는 말이 떠올랐다. 기분이 상했지만 그냥저냥 전반전을 자연스 넘겼다. 후반전이 남아 있었다. 취미인 글쓰기, 책 쓰기 얘로 대화가 흘렀다.


"남들 잘 보지도 않는 자기계발서 그만 쓰고 소설 같은 걸 써서 대박을 좀 내봐."


응원을 가장한 비아냥거림. 문득 예전에 만났을 때 "책을 좀 재미있게 써봐"라면서 몇 권의 베스트셀러 제목을 들먹이던 일도 떠올랐다. 정작 내 책을 읽지도 않고 하는 소리였다. 선물로 보내 줬음에도 불구하고. 의문의 평가절하였다.


'오늘 왜 만나자고 한 걸까. 사람 염장 지르려고 만나자고 한 게 분명해'


마음에 병이 들면 찌그러지고 삐딱한 말이 나다. 마음이 병들어 봤기에 잘 다. 후배의 마음에도 감기처럼 스는 병이  것 같았다.


유쾌하지 않은 자리였다.  내지 않았다. 그저 술기운에 흘러넘친 말이라 여기기로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떠올리며.


인간관계에 대해 늘 생각이 많다. 만나면 기분 좋은 사람도 많은데, 굳이 사사건건 기분 상하게 하는 사람과 마주할 필요 있을까.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문구를 참 좋아한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연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 옷깃이라는 운명으로 인연을 맺었어도 살다 보면 굳이 인연을 이어가지 않아도 될  있다.




이전 09화 굳이 뭘 하지 않아도 내 안에 들어오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