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화내는 타이밍은 참 의외의 순간들이었다. 욕실에 수건이나 휴지, 발매트, 발수건이 없을 때를 비롯해 물건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을 때 어김없이 터뜨렸다. 정리 정돈을 생활화하는 아빠만의 작은 강박이자 '욱' 포인트였다.
하지만 아빠의 희망과 바람이 잔뜩 담긴 '욱'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일은 반복됐다. 아빠와 피 한 방울 안 섞인 엄마는 그렇다 치자. 그런데 똑같이 한 집에서 자란 누나도, 심지어 나보다 3년 더 아빠와 살았지만, 아빠의 이런 유전자를 1도 물려받지는 못했다. 유일하게 내가 아빠의 섬세함과 소심함을 시나브로 닮아 버렸다.
결혼하고 큰 일에 대범하고 사소함에 예민한 아빠처럼 행동하는 나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여러 번. 부부가 함께 부대끼며 살다 보면 연애할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두드러진다. 아주 조금 과장하면 아예 다른 사람이랑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털털한 아내와 달리 나는 매사 꼼꼼하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녀가 얼마나 털털한지, 그가 얼마만큼 꼼꼼한지 한 집에서 같이 살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다.
웬만한 건 정리정돈이 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자칭 우리 집 깔끔함, 정리정돈 담당이 됐다. 아내가 없는 틈을타 드레스룸을 뒤집어엎고, 소파와 침대를 들어내 청소기를 돌리고, 딸내미 방을 치우고, 주방을 새하얗게 정리한다. 이런 내 흔적을 발견한 아내는 늘 '오빠 최고!'라고 했다. 하지만 화가 나면 내 이런 행동이 숨 막힌다는 진심을 토했다. "나 보란 듯이 이러는 거잖아!" 아마 이런 말들이 99.9% 본심일 거다. 그래도 화가 나기 전까지는 막히는 숨을 잘 참고 살아주는 고마운 아내다.
"솔직히 나도와주려는 게 아니라 오빠가 지저분한 걸 못 참아서 아니야?"
털털한 척하면서 가끔 이렇게 정곡을 찌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아내를 돕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 공간에 대한 심리적 만족을 위한 집착이라는 걸. 그저 아내가 하는 일들이 못마땅해서, 부족해 보여서 내가 하려는 것이었다. 빙고! 들켜버렸다. 아내가 다려 놓은 셔츠가 마음에 안 들어 밤에 몰래 다시 다리다가 들켜서 서로 민망했던 순간이 갑자기 떠오른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살아간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때문에 나 같은 사람도 내 마음 같은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내 기준에, 내 습관에 모든 걸 끼워 맞춰 생각하면 삶은 그야말로 엉망진창 불만족투성이가 되고, 매사 악한 마음만스멀스멀 동할 것이다. 악성 댓글로 반론을 제기하다 못해 누군가를 나락으로 끌어내리지 않고서는 못 참는 사람들처럼.
어릴 때는 떼를 쓰면 되는 일들이 있다. 그런데 성인 간에는 그런 부모님 급 관대함은 잘 베풀지 않는다. 머리가 커갈수록 사회에 찌들어 갈수록 내 의사가 담긴 내 말을 하려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그러니까 괜히 혼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그저 나와 다른 사람을 그러려니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러든지 말든지...' 마음 가짐.
'욕 잘하는 인간, 막말의 대가, 인사 안 하는 후배, 정리 정돈 안 하는 엄마, 수시로 욱하는 아빠, 비밀 많은 친구, 음흉한 상사, 입 가벼운 선배, 털털한 아내, 진지한 동생, 무심한 자식'이라고 인정하면 그만이다.
한 친구 부부는 너무 상반되는 성격에 힘겨워하다 부부 심리상담소를 찾았다.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안 바뀐다는 것이다. 노력은 필요하지만 기대는 음흉한 욕심이다. 굳이 '저 사람은 왜 저럴까'에 불필요한 관심과 에너지를 쏟기 시작하면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심신은 지친다. 내 안에서 곤히 잠든 악마를 흔들어 깨우는 짓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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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인 아내 권유로 가족 모두가 성격 유형 검사를 한 적 있다. 아내와 아들, 딸이 거짓말처럼 똑같은 성향이고, 나만 정반대 성향이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숱한 순간들이 기억 회로를 부풀리며터져 나왔다. 의도적으로 기억 소급을 멈춰야만 했다. 우리 가족 성격 유형에 약간의 설명을 보태 준 센터장은 그동안 내 삶이 가장 힘들었을 거라는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우습게도 가족이 아닌 아내 직장 상사에게 위로받았다. 나쁘지 않았다.오히려깨달음을 얻었다.
덕분에 성격이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면서사는 삶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참 어려운 일이면서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나에게 '엄마보다 사소한 잔소리 많이 하는 아빠'라는 말을 한적 있다. 아내를 숱하게 채근하고 산소를 앗아갔던 시절도 떠올랐다. 부질없는 마찰이었고 쓸데없는 몸부림일 뿐이었다. 나만 힘든 건 분명 아니었을 터.
서로를 알기 위해 성격 유형 검사를 했지만 우리 식구는 달라진 게 없다. 왜냐면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니까. 그리고 그 누구도 원초적으로 잘못된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전보다 서로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지도 않는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다. 내 마음과 상반되는 사람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만 상하기 일쑤. 이 사실만 인정하면 된다. 누군가를 '참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이면 나 역시 다른 이에게 '참 다른 사람'으로 비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