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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Jul 07. 2020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불필요한 욕 지뢰로 주변을 더럽히지 말자'


나는 욕을 한다. 잘하지는 못한다. 욕 소리는 절친하고 있을 때만 나온다. 소리 내 욕을 많이 안 해본 사람은 안다. 입에서 욕을 흘리는 게 어색하다는 사실을. 착한 척 순진한 척이 아니다. 영어 스피킹 시험 볼 때와 비슷하다. 안 쓰던 언어를 쓰려니 낯선 거다. 물론 듣는 것도 싫다.


6학년 학급 회의 시간이었다. 부회장이 건의함을 열고 쪽지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부반장이 욕을 너무 잘해요."


주인공은 '나야 나'였다. 욕이 욕인 줄 모르고 나불거리던 때가 있었다. 기억을 소환했다. 부반장 소임으로 학급 분위기 조성을 위해, 혹은 친구들을 웃기려고 그랬다는 결론을 꾸역꾸역 찾아냈다. 특별히 할 말도 없는데 발화량을 늘리다 보니 벌어진 참사였다. 평소 언어에는 내실 대신 욕설이 채워져 있었다. 담임이 교무실로 불렀다.


"네가?"


평소 순진해 보이던 나였기에 담임이 놀라 물었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얼굴만 붉혔다. 숨어 저지르던 범죄를 들킨 기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선생님은 가정교육을 떠올리셨을지도 모른다. 학급 회의 안건에 오를 만큼 중대한 과실을 저지른 후부터 욕을 멀리했다. 결혼 후 운전하다 욕이 튀어나왔다. "오빠 욕도 해?" 아내가 놀랐다. 오랜만에 튀어나온 욕이었다. 이제는 정말 친한 친구들만 내 욕을 들을 수 있다.


주변에는 욕쟁이가 많다. 둘도 없는 절친도 욕쟁이다. 어느 날 회사 커피숍에서 업무차 만났다. 기차 화통 삶아 먹은 소리로 말끝마다 욕을 해대서 난감했다.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c발을 달고 살았던 팀장도, 이 욕인 줄 모르는 후배도, 혼잣말의 반은 욕인 동료도 있다. 친한 동료에게 "니 애들이 욕 그대로 배운다"라고 말했다. 동료는 "어, 그러네?"라고 대꾸했지만, 5초 후부터 다시 욕을 했다.


예민하다. 나는. 주변에서 욕이 들려오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술집에서, 길에서 들려오는 욕은 상관없다. 내가 관여할 범위 밖이다. 사무실 같은 공적 공간에서 들려오는 잡음은 다르다. 신입사원 시절 거래처와 설전을 벌이던 선배가 수화기를 집어던지며 호기롭게 외쳤다.


"아, 저 미X년!"


주변 얼굴들이 일그러졌다. 이 사건은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언급된다. 선배는 온화한 중년이 되었다. 그렇지만 마주할 때마다 '미친년'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선배는 그때 상대에게 할 말이 없었던 거다.


'습관이야', '나 원래 그래'라는 말로,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싱겁게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욕설이 주변을 쉽게 오염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회사에는 수십수백 개의 귀가 가득하다. 아울러 자신만 모르게 이미지가 절하하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야 한다.


마땅히 할 말이 없으면 이를 꽉 물고 입술을 슬쩍 붙이면 그만이다. 가뜩이나 삭막하고도 지저분한 세상이다. 불필요한 욕 지뢰로 주변을 더럽힐 필요 없다.


"사람들은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라는 명언을 남긴 프랑스 작가 볼테르에게 박수를 보낸다.


p.s.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봐 몇 자 남긴다. 글쟁이라 그런지 카톡에 글로 쓰는 욕은 곧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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