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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Nov 11. 2019

일상과 일탈의 대단한 한 끗 차이

"단지 일탈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야"


그렇게 염원하는 일탈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일상의 늪에 빠져 살았다.


월요일 아침. 기분 나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세 번째 알람이 울리면 그제야 이불을 걷어다. 불편한 허리를 부여잡고 꾸역꾸역 일어나는데 자동으로 입이 열렸다. "지겨워"라는 말이 툭 떨어졌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징그러운 일상을 당연한 듯 살아내고 있다. 가끔씩 고개 드는 화려한 일탈은 환상일 뿐 비슷한 반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버티는 삶이다.


이 길이 최선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조차 사치라고 여기면서,

지금 내게 주어진 일상이 숙명이라 여기면서.


서늘한 초가을, 유난히 출근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가을을 타는 건 아니었다. 간밤에 본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여운이 짙어서였다.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상상한다. 하지만 죄악이라도 되는 양 순식간에 털어내고 일상으로 스며든다.


'일탈'이라는 뜻이 궁금했다. '정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나쁜 의미가 아니었다. 내게 필요한 단어였다. 뒤통수가 아찔했다. 그렇게 염원하는 일탈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일상의 늪에 빠져 다.


델마 : 내가 약간 미쳤나 봐.

루이스 : 아냐 넌 항상 그랬어. 표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


내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촌철살인. 고민한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털끝만큼이라도 표현하며 살고 있는 건가.'


델마와 루이스의 일탈은 우연이었다. 의도치 않게 일상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순간 전율을 다. 델마가 일상의 감옥에서 일탈을 만끽하지 않았더라면, 길게 주어진 불행에 순응하며 살았을 것이다. 일상이 악몽인 줄 모른 채.


<이미지 출처 : 영화 '델마와 루이스' 스틸 컷>


일탈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줄만 알았다.


일탈의 일逸에는 '편안할', '달아날'의 뜻이 있고, 탈脫에는 '벗을', '기뻐할'이라는 의미가 있다. '편안함에서 벗어난다' 혹은 '달아나서 기'라는 의미가 담겼다. 일탈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줄만 알았다. 일탈은 삶의 파괴가 아니었다. 지루하고 편안한 일상에서 벗어나 기쁨을 만끽하는 행위였. 삶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평범하게 누릴 수 있는 일탈도 널렸다. 눈치 보며 찔끔찔끔 떠나던 휴가에 과감하게 사나흘 더 붙여도 일탈이다. 부부가 일 년에 한 번씩 각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개인 시간을 존중하는 일탈이다. 어릴 때 좋아했던 가수 콘서트에서 신나게 흔들면서 소리 지르는 것도, 평소 드나들지 않던 클럽에서 맛보는 새로움도, 계획 없이 떠나는 야밤의 드라이브도, 한 달간 주야장천 만화책만 보는 것도, 아프다는 핑계로 당일 아침 연차 내는 것도.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기쁨을 찾는 소소한 일탈이자 탈출이다.


'정해진 영역에서 벗어남' 그리고 한자의 뜻처럼 '지루하고 편안한 일상에서 달아나 기쁨을 만끽하는 일'이라는 걸 기억하면 일탈은 행복이 된다.


"인생은 이래도 저래도 엉망이 되었을 거야. 잘 모르겠어. 난 이미 뭔가를 건너왔고, 돌아갈 수도 없어, 난 그냥 살 수가 없어." <영화 '델마와 루이스'> 中 


명쾌한 답을 알 수 없기에 일상이라는 가두리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노심초사 살았다. 시골 처갓집 마당에 수년 동안 묶여 살던 개의 목줄이 끊어졌다. 개는 여전히 줄이 닿던 자리만 맴돌았다. 내 모습이었다. 돌아가지 못할 다리가 있다면 한 번쯤 건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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