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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Dec 04. 2019

직장인이 나를 대표하는 찰나

'소멸하는 직장인의 삶을 누리고 있을 뿐'


"대기업 직장인과 작가 타이틀 중
어떤 걸 더 내세우고 싶으세요?"


사회에 나온 지 일 년 남짓 된 초년생 기자가 물었다. 무겁고도 무서운 질문이었다. 본분은 직장인이다. 빼박캔트. 그렇다고 내세우고 싶 않다. 내세우고 싶은 것과 내세워야 하는 건 염연히 다르다. 직장인이면서 책을 썼다고 '작가'라는 명칭을 입에 올리기도 낯 뜨겁다. '뭐라고 답해야 하나' 망설이던 순간 느닷없이 '소멸'이라는 단어가 스쳤다.


난 소멸 중인 직장인이다. 회사에는 아득한 선배보다 새파란 후배가 훨씬 많다. 당당하고 행복했던 직장인 시절은 지났다. 서서히 소멸 중인 내가 남아있을 뿐이다. 프르스름한 기자의 첫 사회생활이 부러웠다.


기자의 질문이 직장인의 삶을 반추하게 했다. 직장인은 소멸하는 삶을 살고 있다. 배터리가 수명을 다하면 체되는 것과 비슷한 삶. 직장인은 직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하루하루 소멸하며 살아간다. 입사해 얼마간은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 뒷모습을 바라봤다. 세월이 흐르니 가까운 동료가 하나 둘 회사에서 사라진다. 영원한 직장인은 없고, 누구나 회사를 떠난다. 소멸의 시기만 다를 뿐이다. 먼지처럼 사라지는 내 모습도 자연스럽게 그려본다. 회사에 남을 시간이 지나온 시간보다 길지 않다는 걸 안다. 최대한 초라하지 않은 모습으로 사뿐하게 사라지고 싶을 뿐이다. 지난한 세월을 달관한 듯 입 꼬리를 10도 정도 올리고 말이다.


현실은 다르다. 아등바등하는 하루하루가 직장인의 삶을 대변한다. 이 작은 세상은 모두에게 동등하고 넉넉한 기회를 제공할 수 없기에 경쟁을 부추긴다. 누군가를 이기게 만들고 잘나 보여야 한다고 쉴 새 없이 알려준다. 당연한 일상이고, 누구나 거치는 흔한 과정이다. 좀 더 대범하고 강렬하게 살았던 누구는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한다. 그렇지 못한 누군가는 초라한 자신을 마주한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 일정 궤도까지는 무난하게 진입했다. 고지가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번 삐끗한 탓에 가정을 잃고, 건강을 잃고, 직장 밖으로 떠밀렸다. 모든 걸 걸었던 직장. 상독처럼 온몸 구석구석에 . 직장인이라면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게 맞다. 하지만 그 대가가 치유가 되지 않을 만큼 가혹할 때가 많다. 서글프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소멸다. 직장인이 되면서 다시 한번 강렬한 소멸을 맛다. 직장인 누구나 알고 있다. 자신의 길지 않은 수명을. 그저 망각이라는 수단으로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내 삶 역시 직장이라는 굴레에 갇혔다. 천직이라고 여기지도 않으면서, 일이 싫고 일상이 괴로우면서도 이탈하지 못한다. 궤도 밖 삶은 생각해 본 적도 없이 직장이라는 행성 주변만 맴돌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소멸로 접어든 직장인의 삶을 마주하면서 깨달았다. 누구나 소멸 이후의 삶을 떠올려야 한다고. 직장인 밖에 할 줄 모른다며 자신을 가엾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고. 소멸 후의 새로운 나를 창조하고 가꿔야 한다고. '직장인' 타이틀 따위가 아닌 '내 존재' 자체가 빛날 수 있도록. 소멸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설렘이다. 


아직 괜찮을 거라는 근거 없는 사치를 누는 시간은 찰나다. '직장인'이 나를 대표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짧다.


기자에게 답했다.


"직장에서는 이미 소멸하고 있어요.
그런데 글쓰는 취미는 저를 활기차게 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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