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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Sep 04. 2019

가끔은 구경꾼으로 자신을 바라봐

'분노가 너그러움으로 바뀌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회사에 다닐 날보다 다닌 날이 더 길어졌습니다. 직장은 무작정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떠나는 상상을 자주 합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의든 타의든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야만 한다'는 걱정이죠. 책에다가는 '사원도 임원도 언젠가 회사를 떠난다'라는 말을 호기롭게 써놨지만, 막상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휑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 없습니다. 회사를 너무 사랑하거나 회사형 인간이라서가 절대 아닙니다. 메슬로우가 말하는 인간의 욕구 중 3단계의 욕구 본능인 '사회적 욕구' 때문이겠죠. 믿거나 말거나.


  그런데 과거를 돌아보면 지금처럼 나이를 먹지도, 벼랑 끝에 가까워지지 않았을 때도 저는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굳이 떠날 필요가 없는데, 왜 그렇게 떠나고 싶어 안달했던 걸까요. 과거를 찬찬히 되짚 보았습니다. 가끔씩 화가 넘칠 때 속으로 격노하면서 조용히 떠날 준비를 습니다. 순간적으로 마음을 비운 거죠. 그런 순간이 많지 않았지만, 결국 저는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참 오묘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건 바로 순식간에 '제삼자'가 된 이었습니다. 당장 떠나겠다는 혼자만의 결심은 일순간 저를 제삼자로 둔갑시켰습니다. 무언가를 실컷 즐길 만큼 즐기고 나서 일어나 엉덩이를 탁탁 털고 떠나면 그만인 구경꾼이 된 기분이랄까요? 작은 결심 저 '일정한 일에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곤 했어요. 이런 감정에 심신을 맡기면 신기한 일이 벌어니다. 못마땅한 회사에도, 억지 부리며 화내는 상사에게도, 진상 떠는 선배에게도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결정된 것도 달라진 것도 없었지만 '난 이 회사를 떠날 거고, 당신들 같은 진상과도 이별이다'라는 감정이입에 심취 거. 이런 위태로운 순간순간을 고비고비 넘기면서 저는 십 수년간 같은 직장에 머물고 있어요. 항상 실행보다는 마음만 두어 박자 앞. 조금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박차고 떠날 만큼 용기도 없었고, 더 좋은 곳으로 옮길 능력 부족했던 거 같습니. 용기를 내기보다는 안주했고,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눈치만 점점 더 키워죠. 


<이미지 출처 : pixabay>


  그런데 현재냉정하게 바라보면 괴로움을 꾸역꾸역 삼키며 마지못해 남아 있는 건 아니에요. 화가 차고 넘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제삼자가 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관대해지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제삼자 효과가 저를 십 수년 숙성시키면서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속담 '참을 인(忍) 자를 붙이고 다니랬다'나 '참는 게 아재비다'라는 말은 참을성의 중요성을 알려줍니다. 참을 인(忍) 셋이면 살인도 예방해 준다는 말도 수도 없이 듣잖아요. 신랄한 현실 속 실전에서도 적당한 분노 조절로 후회를 예방한 전적이 많습니다. 속담을 품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터득한 방법이 저를 여태껏 버티게 한 뿌리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모든 건 제 안에서 남모르게 지지고 볶고, 싸우고 화해하는 저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인고의 과정을 거치며 정제된 마음을 되찾을 수 있었던 거죠. 더불어 제가 갑자기 제삼자로 변신해 많은 이에게 베푼 관용도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요. 혼자와의 싸움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늘 안심하고 또 안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있습니다. 순간순간 마음에 들어차 넘치던 화가 저를 제삼자로 만들어 여태껏 버티게 해줬으니까요.


  가끔 자신이 속한 복잡 미묘한 세상에서 살짝 비켜나 구경꾼이 되는 건 참 바람직한 일인 거 같아요. 객관적인 입장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바라보며 판단하라는 판에 박힌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때때로 내 삶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일들을 남일 보듯 심드렁하게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일상에 꼬여 시달리는 그 심대한 일들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내게 최악이었던 그 인간이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고, 내게 비참했던 그 사건이 평범한 일로 느껴질지도 모르고요.


  모두가 잠깐 스쳐 가는 정류장 같은 회사에서 우리는 왜 그렇게 분노하고 자신을 몰아붙이며 살까요. 결국 구경을 끝마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날 그곳, 희미한 흔적조차 제대로 남지 않을 곳인데 말입니다. 삶에서 분노보다는 희열을 더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끔 여유로운 구경꾼이 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조급함을 버리고 심드렁한 제삼자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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