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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ug 03. 2022

할 수 있는 게 한 가지밖에 없다는 것

"당신은 무엇에 최선을 다하고 있나요?"


'아, 더럽게 시끄러운 놈들!'


커다란 나무에 매달린 가지들이 창문 너머로 살랑거린다. 침대에 누우면 나뭇가지들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내 주무대인 안방의 침대 머리는 나무들과 가장 가까운 창문 곁에 자리했다. 낭만적인 이야기를 꺼내려는 건 아니다.


새벽 5시 즈음부터 매미들이 떼창을 시작한다. (아니었다. 새벽 3시에 깨서 화장실에 다녀올 때도 매미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평소 매미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거나 자다가 깨는 것은 아니지만 눈을 뜨는 순간부터 귀에 대고 우는 듯한 소음은 참 거슬렸다.


오래된 대단지 아파트라 아름드리나무가 상당히 많다. 찜통더위에 나무 아래 몸을 피하면 신기하리 만큼의 상쾌함을 느낀다. 무더운 여름, 넉넉한 아름드리나무 덕에 호사도 누린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매년 고문의 순간이기도 하다. 단체로 방에 들어와 우는 것처럼 지독하게 시끄러운 매미 소리 때문에 피곤함을 느낄 때가 많다. 주말 아침에 한번 깨면 시끄러워서 다시 잠들 수가 없다. 아이들은 단지 곳곳에 떨어진 매미를 밟을까 봐 여름 내내 땅을 보고 다닌다. 잠시 방심하다 밟기라도 하면 소리를 지르면서 이사를 가자며 난리가 난다. 딸내미는 손에 달라붙은 매미에 놀라 도망치다 넘어져 부상을 입기도 했다.


일요일 저녁에 딸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가 아파트 산책로를 몇 바퀴 돌았다. 날이 어두컴컴해지는 순간에도 매미 울음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쟤들은 왜 저렇게 시끄럽게 울어댈까?"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 밖에 없어서 최선을 다해서 우나 봐요."


우리는 매미가 땅 속에서 7년간 준비를 하고 여름에 맞춰 밖으로 나와 한 달 남짓 살다 떠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 큰 어른들 생각에는 당연한 일인데 한참 자라는 아이들에게 매미는 불쌍한 존재다. 아이들이 매미를 밟고 소리치는 건 징그러워서만은 아니다. 짧은 생을 사는 매미에 대한 짠한 마음도 담겨있다.


산책을 마치고 짧은 주말을 마무리했다. 출근 준비를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딸아이의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최선을 다해서 운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 월요일... 회사 가기 싫다'라는 한숨이 매미의 울음소리와 교차했다.


'아, 나는 할 줄 아는 게 직장인 밖에 없나? 그래서 이렇게 끊임없이 회사에 다녀야 하나?'


큰 차이라면 매미처럼 '최선'을 다해서 울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최선을 다한 매미는 한 달 뒤에 후회 없이 떠날 수 있을까. 적어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서 후련하다고 생각할까.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매미는 아는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한사코 너의 옆에 붙어서

뜨겁게 우는 것임을


울지 않으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매미는 우는 것이다.


매미가 주인공인 안도현 시인의 시 <사랑>이다. 매미의 울음소리는 암놈을 부르는 러브콜이다. 잘 보일 수 있는 게 울음소리밖에 없어서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울아 대는 거겠지. 매미의 사랑을, 매미의 열정을, 매미의 최선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매미 울음에 대해 딸아이와 얘기를 나눈 후부터 그 소리가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도 매미가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부터 더럽게 시끄럽네’라는 기분도 중화된 듯하다.


'매미보다는 할 줄 아는 게 많으니 좀 더 최선을 다해 살아보면 어떻겠니?'라는 질문도 던져본다. 내일은 회사에서 좀 더 열심히 울부짖어야겠다.


퇴근길 10시가 다된 시간에도 몇몇 매미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나무 아래에서 뒤집어져 다리를 꼼지락거리는 매미를 뒤집어줬다. 사랑의 결실을 맺고 그 아이들이 7년 뒤 최선을 다해 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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