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단념하는 당신을 위한 글
'예측 불가한 앞날의 일에 대하여'
내가 어렸을 때 일인데, 라디오를 듣고 있으려니 "저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록 음악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 것들은 얼른 없어져버리면 좋겠습니다"라는 사연을 디제이가 읽어주었다. 당시는 1950년대 후반, 엘비스의 최고 전성기였다. 그 사연에 대해 디제이는 "그렇군요. 이렇게 시끄러운 음악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겠지요."라고 말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밸런타인데이의 무말랭이>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제목은 '앞날의 일에 대하여'다. 엘비스 음악은 여전히 살아 숨 쉰다. 기리기리 위대하게 기억되고 있다. 이 책을 읽던 어느 날 11살 어린 후배를 만났다.
"여동생은 공무원, 남동생은 대기업 다니고, 저는 계약직... 저만 실패했어요. 부모님이 속상해해요."
"실패?"
가방에서 하루키의 책을 꺼내 '앞날의 일에 대하여'를 읽어보라고 했다. 짧은 글이다.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요?"
"당연하지."
무라카미 하루키는 또 하나의 예로 노트북을 언급했다.
"한 잡지에 '미래에는 전자두뇌가 일반적으로 보급될까요?'라는 질문이 실려 있었다. 대답은 NO였다. 왜냐하면 '인간의 두뇌에 필적할 만한 전자두뇌를 만들면 빌딩만한 크기가 될 것이고, 그런 물건이 일반에까지 보급될 턱이 없기 때문'이다."
노트북이 웬 말. 손바닥 만한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시대다. 하루키는 음악과 노트북을 예를 들었지만,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화하고 발전한다. 기계와 다른 점은 능동적 의지가 있어야 남보다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후배는 차곡차곡 경력을 쌓고 있다. 계약직 기간도 목표를 이루기 위한 소중한 시간이다. 세상에 버릴 경험은 하나도 없다. 목표한 바를 향해 묵묵히 질주하는 과정이 좀 힘겨울 뿐이다. 지금처럼만 꾸준히 정진하면 분명 반짝반짝 빛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점심시간에 우연히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출신 아이키를 만났다. 화보 촬영 중인 듯했으나 시간을 내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친절한 유명인. 아이키를 좀 더 알고 싶어 검색했다. 아이키는 중3 때 다이어트를 위해 라틴댄스를 배우며 춤을 접했다. 인생 절정기를 달리는 아이키는 다이어트를 위한 춤이 그녀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춤에 빠진 딸을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무명시절에는 시댁에 눈치가 보였다는 인터뷰를 남기기도 했다.
아이키뿐만 아니라 하루아침에 인생이 뒤바뀐 사람은 주변에 많다. 그들은 겸손을 필두로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운에 앞서 스스로를 꾸준히 발전시켜 온 끈질긴 노력이 숨어 있다. '하루아침'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신은 알고 있다. 진정 노력을 했는지, 혹시나 하는 운만 바랐는지를.
틈틈이 글쓰기 수업을 한다. 많은 사람이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다. 수업 시작부터 끝까지 나는 '꾸준히'를 강조한다.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첫 책을 출간할 수 있었던 건 8년 동안 꾸준히 써왔기 때문이다. 지치지 않고 정진한 덕분에 브런치라는 운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수업을 마칠 때 "성공이라는 못을 박으려면 끈질김이라는 망치가 필요합니다. 끈질기게 자신만의 글을 갈고닦으시기 바랍니다"라는 멘트를 던진다. 경험으로 배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닭살 멘트가 부끄럽지 않다.
후배에게 아이키 이야기까지 전했다. 더불어 계약직과 알바를 전전했던 젊은 시절 내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후배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동안 자신의 노력을 돌아보는 듯했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에서 희망을 찾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앞으로 좋은 일도 있겠죠?"
"당연한 거 아니야?"
때로는 당연함도 확신도 없는 평범한 위로의 말이 힘이 되기도 한다. 후배에게 조언을 해서 그런지 오늘 내 인생에도 조금 더 노력을 보태고 싶었다. 글쓰기에 게을러진 마음을 반성하며 이 글을 남긴다. 잠을 줄여가며. 내 인생도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에. 오늘도 노력이라는 단어를 슬며시 감싸 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