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동안 매일 상사의 도시락을 쌌다
'누군가에게 베풀고 픈 특별한 경험'
<나는 매일 상사의 도시락을 싼다>라는 제목의 책을 봤다. 읽지는 않았지만 잊고 있던 몇 년 전 일이 떠올랐다. 2년 넘게 직장 상사의 도시락을 쌌던 그때 그 시절.
이사를 갔다. 오지랖 넓은 우리 팀장이 인사팀장한테 불필요한 이사 소식을 알렸다.
"이드id, 팀장님네 동네로 이사 갔던데요? 같은 아파트 아닌가?"
얼마 후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 같은 아파트는 아니었다. 차량으로 2~3분 떨어진 거리였다. 친절한 팀장님의 카풀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침마다 팀장님은 나를 태우러 오셨다. 매우 명확하신 분, 매일 밤 카톡으로 다음 날 탑승 시간 또는 자신의 출장, 휴가 일정 등을 상세히 알려주셨다. 나도 내 모든 출근 일정을 공유했다. 왕부담. 처음에는 불편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 맞다. 서서히 일상이 됐다.
"팀장님 제가 주유 한번 할게요."
"됐다."
'기름값은 어떻게 보태지?'라는 고민을 수시로 했다. 매일 조수석에 앉아 편하게 출근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좌불안석이었다. 방법을 바꿨다. 금요일 오후 기프티콘을 보냈다.
"팀장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매일 너무 감사합니다."
"이러지 마라."
철저한 방어. 다른 기프티콘이 되돌아왔다.
"가족이랑 먹어라."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아내가 떠올린 게 간식이었다. 매일 싸주던 양을 조금 늘려 차에서 먹으라는 것. '천잰데?' 텀블러에 커피를 담았다. 김밥, 유부초밥 등이 추가됐고, 떡, 과일이 후식으로 등장했다. 고마움을 표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아내와 함께 아침마다 도시락을 쌌다. 겨울에는 호빵도 먹고, 과일을 갈아 마시고, 과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아내의 부지런 덕분에 아침마다 호사를 누렸다. 팀장님은 당연히 아무것도 싸오지 말라고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여겼다.
회사에 가는 동안 매일 굿모닝 FM을 들었다. 전현무, 노홍철을 거쳐 조우종, 이지혜 등 DJ도 많이 바뀌었다. 시청자 퀴즈를 함께 맞추고 이런저런 사연을 들으면서 웃기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한 번은 상사와의 카풀이 불편하다는 한 직장인의 사연이 소개된 적 있다. 팀장님은 "너 아니지"라며 의심의 눈초리와 온화한 미소를 동시에 보냈다.
우연히 시작된 카플이 2년 넘게 이어질 줄 몰랐다. 도시락 퍼레이드도 덩달아 이어졌다. 시작은 쉬웠는데 지속은 쉽지 않았고 멈춤은 불가능했다. 아내는 무슨 죄? 먹거리 준비를 못한 날은 마음이 불편했다. 출근길 내내 차 안의 공기가 허전했다.
이별은 찰나였다. 팀장님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나며 카풀은 하루아침에 끝났다. 아내가 도시락 걱정을 했던 일도, "오빠 나 이러다 겨울에 팀장님댁에 김장하러 가야 되는 건 아니지?"라는 농담도 풋풋한 시절의 추억이 됐다. 시작은 불편했지만, 이별은 아쉬웠다.
발령 후 팀장님은 지방 사택에서 지냈다. 가끔 집에 오시는 날이면 특산물이나 과일, 친구가 줬다는 맥주, 와인 등도 챙겨주셨다. 심지어 내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을 때 그곳까지 오셔서 선물을 전하기도 했다. 2년 간의 인연이 소중했음을 그리고 그 마음이 늘 진심이었다는 걸 새삼 느낀다.
기름값을 내지 못해 불편해하고, 기프티콘을 보내고, 매일 도시락을 쌌던 건 상사의 베풂을 의심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상대 마음을 색안경을 끼고 이리저리 돌려보지는 않았는지, 삐뚤어진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지는 않았는지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팀장님은 현재 임원이다. 나는 이직해 다른 회사에 다닌다. 회사를 떠나는 내게 넉넉하고 든든한 덕담도 해주셨다. 평생 처음 해본 카풀. 더없이 좋은 상사를 만나 특별한 경험을 누리고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누군가에게 다시 두배로 베풀고 싶은 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