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Mar 28. 2022

직장에서 아무런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


조직개편이 있었다. 한 팀장이 맡던 팀을 떠났다. 팀장은 팀원들에게 자필 편지를 남겼다. 보기 드문, 아니 입사 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일부러 시간을 내 십여 명 남짓 되는 팀원들에게 손수 편지를 적었다.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신중하게 한 자 한 자 새겨 넣었을 터.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의도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반응은 의외로 싸늘했다. 편지를 바라보는 관점 차이였다. 편지에는 팀원들의 장점과 단점이 진지하게 적혀 있었다. 원들은 좋은 얘기는 당연하게, 고쳤으면 하는 조언은 못마땅하게 받아들였다. 떠나는 마당에 기분 나쁜 말을 털어놓았다는 불만이다. 자기도 아는 단점을 굳이 언급해 불편했다는 이유에서다. 후배 입에서 나온 나이 든 꼰대라는 말을 흘려듣는 척했지만, 마음에 서늘함이 스쳤다. 세대 차이 나는 사람의 잔소리로 외면당한 팀장 마음을 대신 삼켰다.


의욕이 앞선 걸까. 팀원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 잘못일까. 어쩌면 감수하겠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직장 내 위치의 차이이고 성향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이다. 그런데 많은 일의 결과를 두고 나이, 세대  차이를 먼저 운운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나이를 일부러 먹는 사람은 없다. 세대 간의 간극은 시간이 흐르는 것과 같은 자연의 섭리일 뿐이다. 그렇지만 나이를 기준으로 선을 긋는 현실 냉정함을 자주 느낀다. 나이라는 숫자는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꼰대로 규정지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아무런 노력 없이도 얻어지는 것이다. 생색내지 말고 권력이라고 착각 말아야 한다. 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나이에 맞는 태도를 갖추는 것뿐."


새해를 맞아 한 임원이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앞서 언급한 자필 편지를 쓴 주인공이다. 팀장은 임원이 되었고 자필 편지는 그의 진심이었다는 걸 확신했다. 은 세대의 마음을 정통으로 꿰뚫는 마음가짐이다. 옮긴 자리에서도 여전히 노력하고 있구나라는 진실함을 느꼈다.


자필 편지 에피소드처럼 직장에서는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이 많다. 모든 사람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사실, 선의를 앞세운 진심이 상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경험을 통해 수시로 배운다. 임원을 보며 한 가지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흔들리지 않는 꿋꿋함이 필요하다는 이다. 이는 나이 먹은 꼰대의 기질과는 다른 자신만의 신념이다. 소소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신중함과 자신에 대한 믿음다.


30세(이립而立)는 가치관을 정립하고 자립하는 나이, 40세(불혹不惑)는 세상일에 쉽게 현혹되지 않는 나이, 50세(지천명知天命)는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 60세(이순耳順)는 말을 들으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나이, 70세(종심從心)는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나이라고 했다.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책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가 나이에 대해 정의한 말이다.


나이는 숫자마다 숨어 있는 심오한 역할이 있다. 굳이 의 기준에 맞춰 누군가의 행동을 나이와 엮어 따질 필요 없다.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물 흐르듯 살아가는 게 현명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직장이라는 이상한 나라, 결국 모두가 떠날 종점을 향한 정류장에 잠시 잠깐 모였을 뿐인데 나이부터 따져가며 매몰차게 선 그을 필요 있을까.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나 먹는 나이 따위에 휘둘리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신이 어떻게 나이 들어가는지를 수시로 살피는 게 지혜로운 처사가 아닐까.


사족. 보란 듯이 현재만 재촉하며 살아도 시간은 잘도 흐른다. 절대 내 것 같지 않은 나이는 생각보다 빨리 오더라. 노력 없이 얻는 나이라서 더더욱 노력해야만 얻는 현실의 책임감이 유난히 크게 느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