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특기를 묻는 게 싫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남의 사생활이 궁금한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머뭇거리며 얼버무리고 나면 내가 부족한 것 같은 기분이 매우 찝찝했다.
입대해 자대배치를 갓 받았을 때 말년 병장이 특기를 물었다. 유일하게 자격증이 있는 쿵후라고 말했다. 고참은 담배를 물고 발차기로 멋지게 꺼보라고 했다. 부족한 실력과 긴장이 만난 탓에 고참 턱을 찼다. (다행히 턱은 나가지 않았음) 둘 다 웃음거리가 됐다. 고작 일 년 남짓 수련한 쿵후는 특기가 아니었다.
30대 중반까지 특기 없는 인생을 살았다. 특기는 고사하고 취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전무했다. 사실 특기나 취미가 없어도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다. 그저 가끔 남다른 남이 부러울 뿐이지.
사람들이 묻는 특기(特技)는 특별할 (특)과 재주 (기)를 쓴다.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을 뜻한다. 나에게는 없는 기술과 기능이다. 불혹을 훌쩍 넘긴 이 나이에 특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싶지는 않다. 그저 OTT를 즐기고 글이나 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게 꿀맛이다.
대신 나는 특기(特技)가 부럽지 않은 특기(特記)하는 삶을 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특기는 특별할 (특)과 기록할 (기)의 만남이다. '특별히 다루어 기록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특기'라는 동음이의어가 참 좋다. 특기(特記)하는 내 삶이 특기(特技)라도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어서다. 결국 나의 특기(特技)는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흘려보내는 일상을 특별히 다루어 기록하는 특기(特記)가 되었다.
특기(特技) :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이나 기능
특기(特記) : 특별히 다루어 기록함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5년 차부터 14년 넘게 일상을 특기하고 있다. 직장생활과 동료, 가족, 친구를 비롯해 일상의 소소하고 다양한 일을 특별한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오랜 시간기록을 하면서 글 쓰는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 타이틀이 무척 마음에 들어,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생활을 멈출 수 없는 아이러니를 겪기도 한다.
이제는 누군가 취미나 특기를 물으면 '특기하기' 즉 글쓰기라고 말한다.'특기하기'는이제 삶의 원천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불안함을 잠재우고, 글 속에 또 다른 나에게 위안을 얻는다. 덕분에 직장생활도 '도망'에서 '희망'으로 물들었다.
몸이 무거운 주말 오전,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즐거운 마음으로 특기하는 일상이 행복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나를 자발적으로 이끄는 '글쓰기', 내 인생을 시들지 않게 하는 희망의 불씨다.
어쩌면 말장난 같을 수도 있지만 내게는 남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기술'보다 더 소중한 '특별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지구력이 있다. 매우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