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드id Sep 05. 2022

직장에 쏟는 에너지와 글 쓰는 에너지는 별개

글을 쓰면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직장에 쏟는 에너지와 글 쓰는 에너지는 별개다. 그렇게 믿고 살고 있다. 덕분에 오랜 시간 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쓸 수 있었다.


2주 동안 OT(Over Time)가 30시간 넘게 쌓인 적 있다. 한두 시간 일찍 출근하고 늦은 퇴근을 반복했다. 십수 년 회사에 다니면서 이만큼 바빴던 적이 없었다. 잠도 부족했다. 몽롱함에 취해 자동문 유리에 손이 끼어 시퍼렇게 멍이 들기도 했다.


낯설고 피곤한 경험이었다. 낡은 직장인의 뒤늦은 성장통이랄까. '먹고살기가 참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약속도 미루고, 취소했다. 일상에서 활력이 조금씩 사라졌다. 그런데 단 한가지 글쓰기에는 더욱 몰입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때 나에게 글 쓰는 에너지는 별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조는 내가 아니라 꾸역꾸역 무언가를 기록하는 나, 잠자기 전 잠시라도 책상에 들러 뭔가를 끄적이는 나를 만났다. 왜 직장인은 퇴근시간이 되면 정신이 명료해지는 것인가. 시간이 남아돌 때는 잘하지 않는 행동인데 말이다.


사람은 무언가가 부족할 때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다. 여유로울 때보다는 시간이 없을 때 글이 잘 써졌다. 오히려 시간이 넉넉하면 글을 잘 쓰지 않았다. 자리에 오래 앉아있다고 공부를 잘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 아닐까.


"작가님, 글은 잘 무르익고 있죠?"


타이밍이 기가 막혔다. 바쁜 와중에 출판사에서 날아든 문자 한 통. 원고 독촉이었다. 한숨보다는 열정이 솟아났다.


회사에서 난데없이 바빠진 만큼 퇴근 후 글 쓰는 나도 덩달아 바빠졌다. 2022년 6월에 출간하기로 한 책의 원고 초안을 6월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빠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고 싶지만, 사실 게을러서였다. 출판사에서 재촉하지 않으니 한없이 퍼졌다.


바쁜 회사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글 쓰는 일에 집중했다. 스트레스와 피로가 가시는 느낌이었다. 문자를 받은 이후 거의 매일 원고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샤워와 함께 피곤을 씻어내고 책상에 앉아 한두 꼭지라도 글을 매만지고 누웠다. 글을 쓰면서 하루를 경건하게 마무리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 이웃 작가님께 그룹 글쓰기를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회사일과 원고 작업 등으로 평일과 주말이 바쁜 시기였다. 엎친 데 덮친 격인 듯싶지만 내게는 금상첨화였다. 일말의 고민도 없이 예스를 외치고 합류했다. 활력 게이지가 차오름을 느꼈다.


14년 넘는 세월 동안 글쓰기는 우연과 필연의 연속성을 발휘하며 수시로 나를 자극했다. 덕분에 멈추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다. 이제 글쓰기는 밥 먹는 듯한 루틴이다. 이렇게 수시로 떠오르는 상념을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끄적거린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2017년 처음 출간 제의를 받고 주말마다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커피숍에 앉아 글을 쓰던 시절이 또 떠올랐다. 행복했던 초심. 바빠지니 행복하게 글을 쓰던 초심이 더더욱 생생하게 꿈틀거린다.


힘들고 바쁘고 지치고 괴로운 모든 순간에 글을 쓴다. 글을 쓰다 보면 또 다른 기억이 떠오르고 그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과거의 기억을 줄 소환 한다. 많이 쓸수록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기에 피곤한 오늘도 글쓰기를 멈출 수 없다.

이전 06화 이혼과 퇴사 열풍에 열광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