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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Mar 25. 2024

저는 퇴사 시키고 싶은 직원이었습니다

"직장인은 회사에 숨은 보물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합니다"


서른 살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새롭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이야기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하세요."


면접관으로 만난 팀장의 말에 살짝 당황했습니다. '이보세요! 오늘 목요일이거든요!'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아무리 백수라도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그렇지만 머뭇거림 따윈 사치였습니다. 신속하게 "네!"라고 대답했죠.


대학교 시절 많은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고, 4학년 2학기부터 광고대행사에 취직해 1년 남짓 사회생활 경험도 있어 조직 생활에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다만 신입 사원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이라 바로 실전에 투입될 것 같아 긴장이 좀 되었습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팀원이 열 명 남짓 모인 홍보팀으로 출근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간단한 업무를 하나 받았어요. 사회공헌 시상식에 사용할 상장과 현수막, 리플릿 등을 그래픽 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을 다루는 데는 익숙했지만, 기존 작업물 견본이나 양식도 주지 않고 무작정 만들라니 난감했습니다. 게다가 제게 준 문구도 너무 빈약해서 뭔가 덧붙여야 할 것이 많아 보였어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손대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제 자리는 구석진 곳이고 인적도 드물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었습니다. 분명 예전에 만들었던 견본이 있을 텐데, 업무 지시한 사람은 하루 종일 온데간데없고. 시간이 갈수록 초조했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한 거 없이 하루가 다 가고 말았어요.


"다 했어요?"


업무 지시한 분이 퇴근 무렵 나타나서 묻더군요. 식은땀이 흐르고 당황해서 어버버하고 있는데, 외근 나갔던 어떤 천사같은 분이 오더니 "얼른 퇴근해요"라며 저를 치우고 제 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를 퇴근 시키려는(퇴사 시키려는 의도였을지도) 의지가 너무 강해 어깨가 바닥에 붙을 만큼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주섬주섬 짐을 싸면서도 눈길은 자판과 마우스를 날아다니는 대기업 정직원의 손과 모니터에 쏠렸습니다. 온종일 붙들고 있던 일을 순식간에 해치우지 뭡니까. '뭐지? 그럼 지가 하고 나가던지?'라는 생각도 반짝 들었지만 불편하고 창피했습니다.


퇴근길 내내, 아니! 잠들기 전까지 아니! 자면서까지 홍보팀에서 저를 몰아내자는 긴급회의를 했을 것 같은 불길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퇴근하란다고 바로 가더라! 알바 잘못 뽑은 거 같아. 망했다. 얼른 내보내고 다시 뽑자!'


환청이 들릴 지경이었습니다. '내일 출근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이불 킥만 하다가 잠들었습니다. 설렜던 출근길이 하루 만에 아주 불길해졌습니다. (나중에 들었지만, 실제로 제가 퇴근하자마자 직원들이 모여 '큰일 났다! 망했다'라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하네요)


퇴사시키고 싶은 직원


한 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에서 기업 인사 담당자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퇴사시키고 싶은 직원'을 묻는 질문에 약 40%가 '시키는 일만 적당히 하는 직원'이라고 답했습니다.


출근 첫날 제 모습이 보이네요. 넋 놓고 온종일 가만히 앉아서 '퇴사시키고 싶은 직원'이 하는 짓을 했죠. 더 나아가 저는 '알아서 퇴사해야 할' 직원이었죠.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 했으니까요. 나이 서른, 경력자가 뭐가 그리 어렵다고 아무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을까요? (제가 사실 I형 인간입니다)


"사회공헌 담당자분이 누구십니까?"


아무나 붙잡고 이 말 한마디만 했어도 쉽게 해결되었을 텐데 말이죠.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처럼 모르는 게 있어 답답해도 잘 물어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우물쭈물 버티는 것은 업무 효율성에 반하는 태도입니다. 시성비를 따지는 분초사회에 반하는 짓이죠.


아르바이트 시절에 들은 선배의 말이 지금도 가슴 깊이 새겨 있습니다. '모르면 시간 끌지 말고 그냥 빨리빨리 물어봐요" 눈치 빠른 한 선배가 소심한 저를 쭈욱 지켜보다가 건넨 조언이었지요.


어느 조직에든 임원, 팀장, 선배와 동료, 후배가 있습니다. 현재 같은 회사를 다닌다 해도 저마다 경험이 다릅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업무 처리 방법을 비롯해 개인기(노하우)도 제각각이죠. 똑같은 스마트폰을 써도 활용 능력이 천차만별이듯 업무 관련 문제 해결 능력과 방법도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즉,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노하우를 가졌는지 파악하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문제 성격에 따라 적절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뭐든 혼자 붙든 채 질질 끌지 말고 주위 사람들을 적극 활용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가는 게 좋습니다. 동료들과는 적당히 가깝게 지내야 일하는 게 수월하거든요. 친하다고 업무를 대신 해주지는 않지만, 도움을 요청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말입니다.


또 회사에 숨겨진 보물도 자발적으로 찾아 나서야 합니다. 자신이 맡은 업무나 프로젝트와 관계된 기존 보고서라든지 전설적인 선배가 만든 PPT 자료 등 회사 곳곳에는 부지런한 자만 찾을 수 있는 보물들이 숨어있습니다.


선배가 완벽하게 만들어놓은 보고서에는 학창 시절에 쓰던 참고서만큼이나 유용한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적당히 응용하면 금세 형식을 익힐 수 있는 데다, 과거 데이터들을 접하면 회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더불어 회사가 원하는 보고서가 어떤 것인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겠죠. 이러한 노력이 차곡차곡 쌓이면 실력이 됩니다. 제가 출근 첫날 버벅거린 이유도 회사에 구축된 데이터베이스를 찾지 않고 맨땅에 헤딩하려고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귀한 자료는 아무나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배우려는 자세로 열정을 보여야 주위 선배들도 기분 좋게 도움을 주고 싶어집니다.


아르바이트생이라 체계적으로 업무를 배울 시간이 없었습니다. 친절하게 업무를 알려주는 이도 드물었고요. 각자도생에 딱 어울리는 생활이었습니다. 처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주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공략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다가가서 그런지 의외로 친절한 사람도 많이 만났습니다. 도움 받는 것도 능력이라는 것을 배웠죠.


이러한 노력은 팀장이 된 지금도 여전합니다. 잘 모르겠으면 망설임 없이 저보다 잘 아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문제 해결을 가장 빨리 할 수 있는 지름길이죠. 직장인은 누구나 불치하문不恥下問(겸손한 마음으로 남에게 배우는 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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