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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pr 01. 2024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데 어려운 길 갈 필요 있어?

"모르는 걸 쉽게 알아내는 능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회사에 조직 개편이 있었습니다. 업무 분장을 재정비하면서 저희 팀 선배 업무가 다른 팀 후배에게 넘어갔어요. 선배는 까다로운 일이었는데, 이제 좀 숨통이 트인다면서도 후배가 걱정돼 꼼꼼하게 인수인계를 했습니다.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고…"


이 말이 화근이었습니다. 후배는 시도 때도 없이 메신저로 선배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며칠 참던 선배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모르면 직접 찾아와서 한 번에 물어봐!"


쓴소리였죠. 의자에 엉덩이 붙인 채 메신저에 질문만 쏟아 내는 후배 때문에 업무에 방해되니 짜증이 났던 겁니다.


궁금한 내용을 정리해서 전화를 하든 찾아가서든 한꺼번에 물어봤다면 분명 친절한 도움을 받았을 겁니다. 배우려는 의지를 합리적인 행동으로 표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혹자는 '선배나 상사에게 처음부터 너무 자주 물어보면 오버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일단은 자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자제만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르는 것을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게 알아내는 것도 능력입니다. 물론 그 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제가 아르바이트생으로 실무에 투입된 것은 회사가 한창 바쁠 때였습니다. 팀원들은 매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습니다. 저만 빼고 대부분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죠. 모두 바빠 보여서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맡은 업무가 점점 늘면서 사고 치지 않고 제대로 일을 처리하려면 선배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간 사회생활 경험에서 갈고닦은 눈치 100단의 실력을 발휘해, 조금 여유가 생긴 선배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어요. 일단 다 받아 적고 나중에 정독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도 평일에 끝내지 못한 일은 주말에 나와서 마무리했습니다. 누구의 강요가 아닌 제 의욕과 욕심에 의한 자발적 출근이었죠. 다이어리에 열심히 받아 적은 내용을 수시로 들춰보면서 일을 배워 나갔습니다.


열심히 한 걸 알아주는 기분이 이런 걸까요. 한 선배가 팀장에게 저에 관해 아르바이트생인데도 '책임감 있게 일한다'라고 말했다는 것을 전해 듣고 더욱 신나서 일했던 기억이 납니다.


업무 외에 회사 전반에 관해 궁금한 것은 다른 팀 직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팀이 달라도 제가 먼저 다가가니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그렇게 차근차근 친분을 쌓으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냥 도와달라고 하면 되는데 어려운 길 갈 필요 있어?"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정수민(송하윤)은 남들에게 부탁하는 일이 일상입니다. 특히 상사를 잘 이용하는 능력자죠. 자신이 하기 어려운 일을 상사에게 부탁해 척척 해냅니다. 회사에서 상사든 누구든 어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가서는 태도는 배울만한 점 아닐까요. 물론 상사에게 배운 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요.


직장에서 상사가 불편하다고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혼자 끙끙 앓으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르바이트생 첫 출근한 날 그 누구에게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하루를 통째로 날린 저처럼 말이죠.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바로 '불치하문(不恥下問)'입니다. 이는 '겸손한 마음으로 남에게 배우는 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인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그 누구에게 묻고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안 됩니다.


갓 들어온 직원이 자기를 낮추고 이것저것 물어보면 안쓰러워서라도 도와주고 싶어 집니다. 반면 아무리 스마트한 신입 사원이라도 의욕 없이 미지근하게 일하면 선배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질문으로 파고든 사람은 이미 그 문제의 해답을 반쯤 얻은 것과 같다"라고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직장에서 정답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이미 알려주었습니다.


직장인이 가장 무식한 시기는 사회 초년생 때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때 많이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지금 모르는 게 창피한 게 아니라 경력이 쌓인 후에도 부족한 게 정말 창피한 일입니다.


일본 경제지 <다임>에서 '젊은 나이에 회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의 특징’을 소개했는데 그중 하나가 상사 복이라고 합니다. 성과를 냈을 때 알아주고 인사 평가를 좋게 해주는 상사가 있다는 것이죠.


더욱이 젊을 때는 경력이 얕고 경험도 부족하므로 반드시 조력자가 필요한데, 상사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상사 복을 누리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그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죠. 바로, 배우기 위해 먼저 다가설 줄 아는 지혜를 갖추는 것입니다.


상사라고 해서 자신이 속한 팀 또는 부서의 장이나 임원급에 한정 지을 필요 없습니다. 인생에서 회사에서 경험을 차곡차곡 쌓은 모든 선후배로 폭넓게 생각하면 좋겠죠? 그들 중 누가 언제 제 상사가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또 조력자는 다양할수록 직장생활이 윤택해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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