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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드id Apr 08. 2024

팀장이 '밤무대 나가냐'라고 했습니다

알바생에게 정장을 강요한 팀장의 속마음


직원들은 모두 정장 차림이었습니다. 넥타이까지 갖춘 전형적인 회사원의 모습이었죠. 전에 다닌 광고대행사에서는 창의성을 강조한지라 선호하지 않는 복장이었습니다. 그저 면접 복장 정도로 취급했지요.


제게 업무를 인수인계한 분이 말했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이니까 복장은 자유롭게!"


하도 호기롭게 말해서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복장에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편한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님이 저를 부르더니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앞으로 정장 입고 다니세요."

"예. 알겠습니다."


대답은 했지만 그 순간 ‘월급 받아서 정장값으로 다 나가겠네’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 길로 전형적인 직장인으로 보이는 깔 맞춤 정장과 셔츠 몇 벌, 넥타이, 구두를 마련했습니다. 팀원들은 팀장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이 정장 사는 데 알바비가 다 나가겠다며 안타까워해주었지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들은 경험하지 못해서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정장 차림으로 일하면서 저만 느낀 묘한 감정이 있습니다. 팀장님이 굳이 설명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죠.


옷차림이 마음가짐을 바꾼다


의도하든 안 하든 옷차림은 말과 행동에 영향을 줍니다. 무엇을 하면 안 된다는 제약이 되기도 하고 무엇을 해도 된다는 자유를 주기도 하죠. 옷이 특정 단체나 소속을 상징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죠. 학생은 교복, 군인은 군복을 입고, 승무원이나 호텔 직원은 그들만의 유니폼을 입습니다. 이처럼 옷은 소속과 신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 반대로 권력과 자신감, 때로는 용기를 주기도 합니다. 예비군복을 입으면 점잖던 신사도 껄렁껄렁해지잖아요.


팀장님의 명령(?) 후 어설프게나마 정장을 차려입고 출근했습니다.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제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단지 옷차림 때문만이 아니었어요.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듯싶어 마음이 예전보다 안정되었습니다. 왠지 소속감이 생겼다고 할까요. 뭐든지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더 잘하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정장 무리 속에서 홀로 사복 차림으로 다니면서 묘한 소외감을 느꼈다면, 정장을 갖춰 입으면서 비로소 조직에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복장에 좀 더 주위를 기울였다면 처음부터 회사 분위기에 맞출 수 있었겠죠. 아르바이트로 잠시 일하러 왔지만 그렇다고 금세 떠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길 필요는 없으니까요.


처음부터 당연하게 복장규정을 준수한 사람들은 왜 회사에 까다로운 복장규정이 있는지 잘 모를 겁니다. 규정에 맞는 옷차림이 불편하고 그저 ‘사복 입고 싶다’ 정도의 생각을 하겠지요. 물론 지금은 복장규정이 많이 완화되는 추세입니다. 그래도 적정선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율 복장이라고 떡하니 공지해 놓고 뒤에서 다른 소리를 하는 곳이 바로 조직이니까요.

 

"사람은 그가 입은 제복대로의 인간이 된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옷차림이 정말 마음가짐을 바꿉니다. 업무를 대하는 태도에도, 업무차 사람들을 만날 때에도 좀 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회사 직원들도 잠시 스쳐가는 이방인이 아닌, 갓 입사한 신입 사원처럼 저를 대했습니다.  

  

비슷한 경험이 또 있습니다. 정직원이 된 초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옷 가게 점원이 신제품이라며 추천한 검은색과 보라색 셔츠를 구매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직장인의 90%는 흰색 셔츠를 입었어요. 그렇다 보니 제가 입은 옷이 조금 튀어 보였습니다.


하루는 법무팀장님이 제게 무대 나가냐며, 복장이 그게 뭐냐고 나무라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우리 팀장님이 저를 슬쩍 불러 조직에서는 튀지 않고 조화로운 게 가장 좋다는 조언을 했습니다.


물론 개성을 존중하는 시대이고, 개인의 취향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다만 회사에서는 개인의 취향보다 조직과의 조화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초심을 떠올리고 옷차림을 바꾸니 잠시나마 흐트러졌던 마음이 바로잡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조직에 녹아드는 사람과 조직 분위기를 깨트리는 사람의 차이는 작은 마음가짐 한 끗입니다. 아무리 작은 흐트러짐이라도 마음에 동요를 일으켜 초심을 흔들어버립니다. 옷차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잦은 지각이나 반복되는 실수, 일을 미루거나 떠넘기는 습관, 과도한 불평불만 등도 조직의 안정에 균열을 가져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마음가짐을 재정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조직 내에서 잡음을 일으키지 않고 잘 지내고 있는지 수시로 체크해야 합니다. 마음가짐을 재정비하는 데 도움 된다면 옷차림을 바꾸는 것도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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