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미련하게 계속 출근... 4일 만에 연차 내고 깨달은 중년
월요일, 연차를 냈습니다. 그날 저녁 무렵 복싱장에 다녀와 집에서 쉬던 중, 회사에서 긴급 업무 연락이 왔습니다. 쉬는 날 자정까지 일하고, 다음날 긴급회의 참석을 위해 새벽 4시 50분에 기상해야 하는 상황. 스트레스를 진정시키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전날까지 멀쩡하던 몸이 감기 몸살의 신호를 보냈습니다. 미열, 무기력, 목 쓰림, 가래 그리고 누군가에게 몸을 두들겨 맞은 듯한 근육통까지. '독감 유행이라던데, 설마….' 아픈 몸을 이끌고 새벽같이 출근했습니다. 팀장의 무게일까요. 고작 하루 쉬었건만, 일이 쌓여 있어 야근이 불가피했습니다.
괜히 하루 쉬었나 싶은 생각도 들고, '몸이 좀 안 좋아 오늘은 일찍 들어가도 될까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다시 삼켰습니다. 이 한 마디가 팀과 상사에게 괜한 민폐처럼 느껴졌거든요. 바빠서 병원 갈 시간도 없고, 잠도 푹 못 자니 상태는 더 악화됐습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먹어도 몸이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은 상사와 함께 회사 행사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집에서 지하철로 약 40~50분 거리였지만, 기력 없는 몸을 이끌고 가래 끓는 기침 소리를 삼키며 지하철 인파에 파묻혀 출근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습니다. 택시를 탔습니다. 출근 시간, 서울 도로 한복판이 꽉 막힐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죠. 1시간 40분 동안 거북이처럼 움직이는 택시 안에서 아픈 몸을 달래며 눈을 감았습니다. 괴로웠습니다.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이지. 왜 이러고 살지."
아파도 일하는 게 성실함이라고 믿어왔습니다. 하지만 그 성실함이 결국 나를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는 걸, 그동안 잘 몰랐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몸이 아프니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왔습니다.
회사에서 아프면 상사 눈치부터 보던 시절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직장생활 20여 년 동안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직급이 올라 팀장이 됐는데도 여전히 아플 때마다 상사 눈치를 보는 저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직장인 10명 중 9명 "아파도 출근했다".' 지난 2017년 8월 한국일보 기사 제목입니다. 어느덧 8년이 지났고 직장 문화가 많이 바뀐 2025년이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불편함과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직장갑질119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38.4 %가 "아플 때 유급병가를 쓸 수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최근 1년 내 독감 등 유행성 질환을 겪은 직장인 중 48.9 %는 '당시 휴가를 쓰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해외에서는 다른 양상이 번지고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미국에서는 "아픈데 출근? 더 이상 미덕 아니다"라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말 뉴욕포스트(New York Post)에 소개된, 미국 성인 대상 <감기와 독감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와 휴식과 회복을 둘러싼 변화하는 사회적 행동 기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픈데 출근하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MZ세대 42%는 "동료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라고 응답했습니다. 이 중 64%는 아픈데 출근하는 사람들을 "이기적이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아픈데도 출근하기'가 이제는 성실함의 표본이 아니라 오히려 주변의 건강과 업무 환경을 해치는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픈데 출근은 이기적이다'라는 말까지 들리는 시대. 머리로는 공감하지만, 막상 내 몸이 아플 때는 쉽지 않았습니다. '내가 빠지면 누가 일을 하지?'라는 불안이 본능처럼 앞섰습니다. 휴가를 내면 눈치가 보이고, 쉬지 않으면 몸이 망가집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매번 타협했죠. '내가 조금 손해 보고 말지'라는 마음으로 버텨온 거죠.
며칠 전 30대 후반의 한 후배가 독감인데 출근해 링거를 맞고 있다며 SNS에 '링거 투혼' 사진을 올렸습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이었겠죠.
"아프면 무조건 쉬어야죠. 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가잖아요."
전 직장에 함께 다니던 30대 중반의 후배 말입니다. 현명한 직장인의 모습이 아닐까요. 실제로 저희 팀도 몸이 안 좋은 직원은 아침에 연락해 반차를 내거나, 출근 후 상태가 나쁘면 조기 퇴근을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물론 저 같은 관리자급은 좀 다르지만요).
한 번은 독감이 유행할 때 회의 도중에 기침하는 직원에게 한 동료가 "마스크 쓰거나 퇴근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약간의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저 역시 아픈 몸을 이끌고 출근은 했지만,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점심과 저녁 약속을 모조리 취소하고 식사도 혼자 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건강과 안전을 중시하는 직장 문화가 확산하면서, 이제는 '아픈데 출근하는 사람'이 오히려 눈치 보는 시대로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프리젠티즘(Presenteeism)', 즉 아파도 출근하는 관행이 마치 성실함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아파도 등교해서 개근상을 받는 게 영광처럼 여겨졌던 시대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건강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하면 병세가 악화하거나 장기화할 수 있습니다. 더불어 집중력과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죠. 조직 전체의 성과와 목표 달성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또 기업 이미지 손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주변인들에게 '아파도 쉬지 못하는 회사'라는 인식은 인재 유치에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으니까요. 이쯤 되면, 프리젠티즘은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손실을 안기는 비효율의 상징 아닐까요.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여전히 (저처럼) 잘 쉬지 못하는 직장인은 많습니다. 그렇다면 마음가짐부터 서서히 바꾸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직장인이 아픈데도 출근하거나 병가를 쓰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의 건강, 기업의 생산성과 문화, 사회적 비용 등 다양한 문제를 야기할 테니까요.
아플 땐 쉬는 게 '권리'라는 인식, 이제는 당연해져야 합니다. 아파도 '출근해서 이겨낸다'라는 태도로 몸이 보내는 경고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병가와 연차, 휴식이라는 쉼은 지속가능한 직장 생활을 위한 선제적인 준비 기간입니다.
"병 더 커지기 전에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푹 좀 쉬겠습니다."
야근을 해야 하는 날, 생각을 바꿔 상사와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퇴근을 했습니다. 이날은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참는 게 미덕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나만의 낡은 직장 문화에서 벗어나, 몸과 삶을 지키기 위한 선택을 시작한 날이라고 할까요.
약을 먹어도 몸이 좋지 않아, 금요일 출근해서 다시 병원에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 생각하니 비효율적인 일이었습니다. 상사에게 연차를 내겠다고 연락한 후 동네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습니다. 독감이었습니다. 수액 3개를 맞고 나니 그제야 몸이 좀 살아났습니다.
회사 일보다 먼저 챙겨야 할 게 건강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아픈 몸을 참고 버틴 건 회사 때문이 아니라, 결국 내 마음의 불안 때문이었다는 사실도요. 스스로 만든 족쇄였던 거죠. 애초에 몸이 안 좋았을 때 좀 더 푹 쉬고, 몸을 아꼈다면 더 일찍 회복했을 텐데. 나를 지키는 일이 결국 동료를 지키는 일이고, 건강한 사람이야말로 회사가 진짜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오늘 내가 쉬겠다는 판단과 실천이, 내일의 누군가에게 '쉬어도 괜찮다'는 신호가 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눈치 보느라 실천하지 못했던 작은 결심이 직장 문화를 바꾸는 첫걸음이 된다는 걸 세상의 많은 직장인이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인들은 행복하기 위해 일합니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삶의 의미를 위해, 미래를 위해 돈을 벌며 커리어를 쌓아갑니다. 그런데 아파도 눈치 보여 쉬지 못하고, 쉬었더니 일이 더 쌓이는 현실을 마주하면 '행복을 위한 일'이 오히려 삶을 파괴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한국에서도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지만, 속도는 여전히 느립니다. 기업도, 개인도 '아플 땐 쉬는 게 당연하다'라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직장인이 건강하게,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오래 일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