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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티'를 검색하고 경악했습니다

'신조어'가 사회 분위기를 만듭니다, 조롱보다는 존중의 말을!

by 이드id


"패션업계도 옷 잘 입는 40대 남자들을 잡기 위해 마케팅에 집중합니다. '40대=아저씨' 공식은 깨졌습니다. 바야흐로 꽃중년의 시대입니다. 문화를 만들고 소비를 주도하는 당당한 40대(영포티)의 모습입니다."


2016년 한 기사 내용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하고, 사람들의 취향과 성향도 변합니다. 더불어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이는 마인드도 예전과는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서로의 세대를 갈라치는 말이 온라인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바로 '영포티(Young Forty)'라는 신조어 아닌 신조어입니다.


앞에 언급한 기사 내용처럼 한때 '젊고 멋진 40대'를 뜻하던 말이 이제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은 척하는 아재'를 조롱하는 단어로 변해버렸습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개인의 취향까지 비난받는 시대가 된 걸까요.


'영포티'를 검색하고 경악했습니다


지난주, 절친에게 사고 싶은 한 벌의 조끼 사진을 보냈습니다.


"어때?"

"영포티냐?"

"칭찬이지?"


처음엔 '젊은 40대'라는 좋은 뜻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즘 옷도 조심해서 사야 한다"라는 이어진 친구의 말에 '영포티'를 검색해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포티'라는 말이, 어느 순간부터 중년을 비하하는 언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영포티'는 본래 마케팅계나 소비문화 분석가들이 2010년대 중반쯤 내세운 개념으로 '젊고 트렌디한 감각을 유지하면서 경제력을 갖춘 40대 소비층'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건강관리, 자기계발과 더불어 문화를 즐기며 사는 중년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용어였죠.


2025년 현재, '영포티'라는 단어의 위상은 곤두박질쳤습니다. 한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의 분석 결과 최근 1년간 온라인 '영포티'에 대한 언급 가운데 55.9%가 '욕하다', '늙다', '역겹다' 등 부정적인 키워드였다고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영포티'를 폄하하는 다양한 밈이 퍼지고 있습니다. '영포티'가 입는 브랜드를 나열하며 주의를 요하고, 로고가 큼지막한 스트리트 브랜드 티셔츠, 스니커즈, 나이키 조던, 아이폰까지 '영포티 아이템'으로 꼬집으며 조롱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생성형 AI로 '영포티' 패션 런웨이 영상까지 만들어서 즐기고 있죠.


아이폰17.jpg


최근 출시된 아이폰 17 모델 중 오렌지색은 커뮤니티에서 '영포티 중년 아이템'이라는 밈으로 소비되며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고2 딸아이의 반 40대 선생님이 최근 수업 시간에 아이폰17을 샀다고 하자, 한 학생이 "선생님 오렌지색 사셨죠?"라고 물었고, 선생님은 "어? 어떻게 알았어?"라며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순간,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고. 딸아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학생들 웃음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영포티' 밈을 본 후 학생들 웃음이 비웃음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한국갤럽이 지난 7월 발표한 '스마트폰 관련 조사'에 따르면, 2024년 19%였던 40대 남성 아이폰 이용자가 올해 35%로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런 이유로 <'영포티' 품는 아이폰? 40대 '애플빠' 급증세…갤럭시 향하는 MZ'>라는 제목의 기사까지 등장했습니다.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눈치까지 봐야 하나요?


요즘엔 무슨 일을 하든, 무엇을 사든 '영포티'라는 말을 의식하게 됩니다. 10대 시절부터 즐겨 입던 후드티를 꺼내 들 때면 괜히 주변 시선이 신경 쓰입니다. 예전엔 '잘 어울린다'라는 말을 들었지만, 이제는 '아재가 왜 저걸 입지?' 하는 시선이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추석 연휴에 아이들과 쇼핑을 갔습니다. 마음에 드는 후드티를 발견했는데, 망설이다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내 나이에 무슨…'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출근할 때 입을 조끼 두 벌만 구매했습니다. 패션은 여전히 나를 표현하는 수단인데, 이제는 자기검열부터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네요.


최근 20대 중반의 후배와 점심을 먹었습니다. 취미 얘기를 나누던 중 40대 초반에 회사에서 댄스 동아리 활동을 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후배는 순간 입을 막으며 웃었습니다. 그도 '영포티'를 떠올렸을까요?


심리학자나 소비문화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세대 갈등과 소비문화의 변화 양상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는 "영포티는 청소년기 외환위기로 누리지 못했던 것을 성인이 돼 경험하고자 하는 적극적 표현이다"라며, "문화적 주류인 MZ세대에 대한 부러움도 저변에 깔려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습니다. 젊은 세대도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마음은 청춘이라던 어른들의 말이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젊게 사는 일, 젊게 살고 싶은 욕구의 실현은 자유입니다. 문화 향유와 소비 패턴, 패션과 취향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취향 존중의 시대입니다


젊은층을 비롯한 모두가 취향 존중을 외치는 시대입니다. 다변화 시대의 다양성 안에서 누가 '옳다', '틀리다'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젊은 세대도 언젠가는 중년이 됩니다. 현재 중년 세대에 대한 조롱과 폄하, 미래 세대에게도 반복될 수 있는 일입니다. 결국 서로에 대한 존중을 갉아먹는 일일뿐이죠.


'영포티'를 비롯한 된장녀, 김치녀, 맘충, 한남, 꼰대, 루저남, 요즘 것들(MZ)처럼 특정 세대를 비하하는 용어의 무분별한 확산은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세대 간 편 가르기를 양산하는 언어 폭력의 형태입니다.


'영포티' 같은 특정 세대에 대한 낙인은 세대를 갈라놓을 뿐 바꿔놓지 못합니다. 서로의 취향을 평가하기보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가 이 시대의 진짜 '힙'이 아닐까요. 세대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나만의 개성을 표현하며 나답게 살고 싶은 사람'일 뿐입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누구도 취향 때문에 서럽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다양한 '신조어'가 사회 분위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차례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서로를 향한 조롱이 아닌 존중의 말, 그것이야말로 서로를 더 긍정적으로 성장하게 만드는 시작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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