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들이 써 내려갈 새로운 드라마를 응원하^니다
2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곡에 울컥했습니다.
"어디에 있나요? 제 얘기 정말 들리시나요. 그럼 피 흘리는 가엾은 제 사랑을 알고 계신가요. 용서해 주세요. 벌하신다면 저 받을게요." - 임재범 '고해' 중에서
임재범의 '고해'였습니다. 이 노래는 제게 그저 멋진 노래, 노래방에서 여자 친구 앞에서 부르면 안 되는 남자들 금지곡 정도의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이 노래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가사가 마치 아버지를 향한 '고해성사'처럼 제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 한 곡의 노래는 오래전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처럼 제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얼마 전 SBS의 <우리들의 발라드>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예지가 첫 무대에서 부른 임재범의 '너를 위해'를 들으며 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28살에 아버지를 떠나보냈을 때는 자식의 마음으로 '고해'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지만, 중년이 된 지금은 전혀 다른 이유로 목이 메었습니다.
19살이 전하는 '너를 위해'는 중년인 저에게 사뭇 다르게 들렸습니다. 과거의 눈물이 떠나간 아버지에 대한 '속죄'였다면, 지금의 눈물은 아버지의 '헌신'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습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라는 가사는 거친 세상에서 수시로 흔들리는 가장의 눈빛이자, 그 불안을 묵묵히 견뎌내며 가족을 지키는 우리 시대 중년의 모습처럼 다가왔습니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버틴 아버지의 인생, 가장이 되니 알 것 같은 삶의 무게가 노래에 담겨 있었습니다.
한 가수의 노래가 제 삶 안에서 이렇게 다양한 감정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젊은 날에는 자식의 마음으로, 중년이 되어서는 부모의 마음으로 같은 가수의 노래를 듣게 되는 경험. 임재범의 노래는 제 삶의 중요한 순간과 깊게 맞닿아 있었습니다.
최근 가수 임재범이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임재범 노래를 좋아했지만, 팬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그의 노래는 늘 제 삶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젊은 시절에도, 중년이 된 지금도 그의 목소리는 제 음악 플레이리스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은퇴 소식을 접했을 때, 묘한 아쉬움과 허전함이 먼저 찾아왔습니다.
특히 '40주년'이라는 말이 정말 크게 다가왔습니다. 한 분야에서 40년을 버텨냈다는 사실 앞에서 숙연해질 정도였습니다. 고작 20여 년 직장 생활을 했으면서도 은퇴를 입에 달고 사는 제 모습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임재범의 나이를 찾아보고서야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흘렀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1962년생,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 하지만 그의 노래는 여전히 제 기억 속 변함없는 목소리 그대로였습니다. 항상 노래를 통해서만 접해왔기 때문에 시간 밖의 존재처럼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갑작스러운 은퇴라는 말이 더 낯설고, 더 크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습니다.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길을 걸어와 스스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삶. 단순한 은퇴가 아니라, 하나의 완성된 인생처럼 보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제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더불어 저와 같은 중년들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하게도 했습니다. 직장인의 삶에서도 과연 이런 멋진 마무리가 가능할까, 나는 지금 어떤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언젠가 나 역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끝을 맞이할 수 있을까. 임재범의 은퇴는 한 가수의 퇴장이 아니라, 제 인생의 방향을 점검하게 하는 질문처럼 다가왔습니다.
임재범은 은퇴 후에도 음악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오되,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살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과 삶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입니다. 더 이상 화려한 조명 아래서 관객을 향해 노래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걸어온 길에서 지금과는 다른 속도로 살아가겠다는 선택이었습니다.
"무대에 서면 여전히 심장은 뜨겁지만, 그 뜨거움만으로 다 감당하기엔 제가 가진 것들이 하나, 둘 제 손을 떠나고 있음을 인정해야 했다."
최근 임재범의 언론 은퇴 인터뷰 내용 중 이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뜨거움은 여전하지만, 그 뜨거움만으로는 더 이상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고백. 대부분의 중년은 등 떠밀려 내려오는 퇴장을 두려워합니다. 직함이 사라지고 수입이 끊기는 경제적 단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가 사회에서 더 이상 필요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정체성의 붕괴일 것입니다. 임재범은 이를 자존심이라는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이 선택이 제가 걸어온 모든 시간을 흐리게 하거나, 누구에게도 아쉬움만 남기는 이별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아름다운 날들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이 저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고 감사의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은퇴'라는 단어에 패배와 초라함이 담겨 있다고 여기던 제 마음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 초라함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완성하기 위한 또 한 번의 시작처럼 느껴졌습니다.
치열한 경쟁의 중심에서 물러나,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가장 좋아하는 영역에서 자기만의 리듬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충분히 멋지고 단단한 삶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누군가에게 등 떠밀려 선택한 은퇴가 아닌, 스스로 선택한 삶이라면 더더욱.
임재범의 은퇴를 바라보며 저의 미래를 상상해 봤습니다. 물론 연예인의 은퇴와 우리의 은퇴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능력도 있고, 유명하고,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반면 많은 중년에게 은퇴는 준비된 선택이 아니라, 예고 없이 찾아오는 통보에 가깝습니다. 통장 잔고를 걱정해야 하고, 소속 없는 아침의 공허함을 견뎌야 하는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제가 임재범의 은퇴에서 위로를 느낀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 내려오느냐'보다, '어떻게 내려오느냐'를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에게 유효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시 우리가 수십 년 가꿔온 인생을 기반으로, 삶의 속도를 조금은 늦추되 멈추지는 않는 그런 삶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Don't you send me goodbye, 끝을 말하지 마. Life is just drama, 니가 쓰고 있잖아. 무너지는 벽의 뒤에 새 길을 봐." - 임재범, 'Life Is a Drama' 중에서
최근 발표한 임재범의 신곡 'Life Is a Drama'의 가사 중 가장 마음에 와닿는 부분입니다. 모두가 자신만의 드라마를 쓰면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은퇴를 앞둔 가수의 작별 인사라기보다,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멋진 선언, 무대에서 내려오더라도 삶의 드라마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거라는 희망처럼 들렸습니다.
누구에게나 은퇴는 끝이 아니라 삶의 위치를 바꾸는 변화의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삶의 중앙에 서 있지는 않아도, 자신이 걸어온 시간을 인정하고 앞으로의 삶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시 설계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은퇴가 그리 초라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임재범의 은퇴를 바라보며 '은퇴'라는 단어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 단어에 왠지 모를 생기와 가능성이 느껴졌습니다.
임재범의 은퇴는 제게 이별이 아니라, 중년에게 건네는 하나의 위로였습니다. 삶의 중심에서 물러난다는 것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그때부터 비로소 자기의 진짜 삶이 시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용기 있는 선택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젠가 저에게도 분명 다가올 그 시간, 오늘의 이 위로가 그날의 저를 조금은 덜 두렵게,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