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진정으로 위로하는 요리는 무엇일까?
최근 큰 인기를 끌며 막을 내린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를 보며 여러 감정이 요동쳤습니다. 감탄, 부러움 그리고 부끄러움이었습니다.
출연자 대부분은 십수 년, 길게는 57년을 한 길만 걸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 막힘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고, 이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자신감이 부러웠습니다. 동시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직장 생활 20년 차, '같은 중년인데 나는 왜 저렇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오랜 시간 일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어디 가서 "이게 제 전문 분야입니다"라고 말할 자신은 없습니다. "이 일을 정말 잘하고, 이 일을 할 때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건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냥저냥 버텨왔고, 어쩔 수 없으니 맞춰왔고,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하니 책임져왔을 뿐입니다. <흑백요리사>에 나오는 사람들은 자기 일에 열정적이었고, 그 일을 사랑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당당하게 자기 인생과 주특기를 설명하는 모습이 저를 더 작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와서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 남은 시간만이라도 좀 더 의미 있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볼 뿐입니다. 그 다짐의 계기 또한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주었습니다. 마지막 미션이었던 '나를 위한 요리'를 보며 특히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부럽고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프로그램을 보다가, 마지막 미션에서 큰 울림을 받았습니다. 결승에 오른 셰프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나를 위한 요리'였습니다. 평생 남이 먹을 요리만 만들어온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위한 요리를 만들라는 당황스러운 주문이었죠.
"나를 위한 요리를 해본 적이 없다."
베테랑 요리사의 이 말이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 말이 꼭 제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어떤 역할을 위해 살아왔지 진정으로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본 기억은 많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위해, 회사를 위해, 주어진 역할을 위해 살았습니다. 특히 중년이 되면서는 더더욱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는 걸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심사 위원 안성재가 최강록 셰프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 요리를 자신에게 주고 싶었어요?"
"저한테 위로를 주고 싶었습니다. 매일 너무 다그치기만 했지, 저를 위한 요리에 90초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이 미션이 단순한 요리 과제가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이건 단순한 요리 미션이 아니라, 힘겹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 대상은 부모일 수도 있고, 직장인일 수도 있고, 중년일 수도 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을 지며 버티는 사람들이라면, 이 질문 앞에서 한 번쯤 멈춰 서지 않았을까요. 나를 위해 90초도 쓰지 않는 삶.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다그치며 살아가는 걸까요.
<흑백요리사2>의 마지막 미션이 제게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위로하는 요리는 무엇일까. 평소 하루 한 끼 정도를 집에서 먹습니다. 예전에는 저녁 식사가 늘 정해진 흐름 안에 있었습니다. 그날그날 배를 채우는 데만 익숙했습니다. 무엇이 먹고 싶은지, 지금 내 몸에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은 없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운동을 시작하면서 저녁이 달라졌습니다. 운동을 하러 가기 전 단백질바나 단백질 음료를 마십니다. 집에 돌아오면 늦은 시간이라 간단하게 식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작은 주먹밥 하나에 계란후라이 두 개를 만들어 먹습니다. 어떤 날은 콩물로 가볍게 마무리하고, 어떤 날은 요거트에 과일이나 견과류를 넣어 먹습니다.
퇴근 후 배고픔에만 의지해 허겁지겁 먹던 순간에 비해 양이 훨씬 줄었습니다. '배고프니까 먹는다'가 아니라, '내 몸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먹는다'라는 쪽으로 선택을 바꾸었습니다. 규칙도 감흥도 없는 듯하지만, 진정으로 나를 위한, 나의 건강을 위한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운동도 하고 저녁을 줄인 덕분에 거슬리던 뱃살도 사라졌습니다.
'나를 위한 요리'는 특별한 레시피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돌보는 방식을 바꾸는 순간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요리만이 아니라, OTT를 감상하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독서하는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까지도 모두 저에게는 '나를 위한 요리', 즉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게 뭔가 거창해 보이느냐가 아니라, 반드시 나를 위해 필요한 시간이냐는 점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늘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살아왔습니다. 가족을 위해, 분위기를 위해, 직장에서의 누군가를 위해 맞춰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에게 덜 미안해지기 위해, 가끔은 나만을 위한 무언가를 해봐도 되지 않을까요. 나를 챙기는 일은 사치가 아니라, 오래 버티기 위한 충전입니다. 가끔은 이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수고했다. 잘 버텼다. 오늘 만큼은 쉬어도 된다."
어쩌면 진짜 위로는, 거창한 말이 아니라 나를 위해 차려주는 따뜻한 밥 한 끼, 차 한 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부족하다고 느끼지만, 오늘만큼은 저 자신에게 "그래도 버티고, 버티며 여기까지 온 건 참 대단하다"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며, 중년인 저에게, 그리고 세상의 모든 '조림 인간'에게 작은 응원을 보냅니다.
"사실, 나를 위한 요리에서는 힘들 걸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최강록 셰프의 말처럼 살아가면서 나만을 위해 할 수 있는, 힘들지 않은 무언가를 하나쯤 꼭 찾아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에게 너무 늦지 않게 꼭 대접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