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도 이제 산책할 수 있어요!

by 도시락 한방현숙

그동안 흔히 보아온 강아지들과의 산책 또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반려견이 앞서고, 반려인들이 뒤따르는 여유롭고 다정해 보이는 산책길 모습!

아이들이 ‘잡채’ 5차 예방 접종이 어서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산책이었다. 달력에 빨간 색연필로 동그라미 친 날은 바로 추석날! ‘잡채’의 산책 가능 일을 꼼꼼히 체크해 오다 보니 그날이 추석날이었다. 둥근달이 복스럽게 뜬 날, 우리 가족 모두는 아파트 정원으로 나갔다. 오로지 ‘잡채’의 산책을 위해서 말이다. ‘잡채’를 위한 목줄도 준비했다. 만약의 용변을 위한 준비물도 꼼꼼히 챙겨서 어서 ‘잡채’와 걸어 다니거나, 뛰어다닐 생각만으로도 설레며 엘리베이터를 탔건만…….

간식으로 이끌어도 여전히 얼음 '잡채'
잔뜩 긴장한 잡채는 움직이지 않았다.

‘잡채’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떨기만 할 뿐 뒷다리 오금도 제대로 못 편 채 바들거렸다. 잔뜩 긴장해 움츠려 들기 하는 하는 '잡채'는 ‘산책’의 ‘산’ 자도 시작할 수 없었다. 새로운 바닥, 새로운 향기, 새로운 공간이 너무나 두려울 뿐인가 보다. 10여분 후 바로 집으로 퇴장했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잡채

둘째 날도, 셋째 날도 여전히 떨기만 할 뿐 전진이 없었다. 다만 화단의 화초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냄새를 맡고, 기어 다니는 개미들을 좇아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다.

저도 산책하고 싶어요.
왠지 좋은 것 같은데 무서워요~
꼬리는 잔뜩 내려가고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조금이라도 ‘잡채’가 움직일 수 있도록 쓰다듬으며 안정시켜 주려 노력했다. 비 오는 날도, 초과근무나 회식으로 늦은 날도 빠지지 않고 ‘잡채’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어스름 속에서도 산책을 했고 비 오는 날은 아파트 필로티만 거닐 수 있었으나 거르지 않았다. 주로 한 곳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30분 이상 밖에서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지나니 잔뜩 내려앉기만 하던 꼬리도 점차 올라가고, 꽤 먼 동까지 직진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먼저 다가가기도 하였다.

잡채 꼬리가 한껏 올라가 있다. 장족의 발전이다.
해질녘 잡채와 나

‘잡채’ 덩치에 맞는 하네스도 새로 장만하고, 리드 줄도 자동 줄로 바꿨다. 쌀쌀해지는 날씨와 다른 강아지들의 차림에 맞춰 ‘잡채’ 옷도 주문해 놓았다.

산책을 시작한 지 열흘이 넘어가는 요즘 ‘잡채’는 산책에 완전 적응 완료이다. 어제는 다섯 번 이상의 소변으로 영역 표시도 하고, 뒷발을 드는 시늉으로 수컷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지나가는 모든 아이들의 귀여움을 차지하기도 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강아지들에게 다가가 호감을 표시한다.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에게 종종 ‘잘생겼다’라는 찬사도 받는다.

사교성이 좋은지, 아직 어려 그런지 잡채는 언제나 적극적이다

마치 어린 아기가 첫발을 떼었을 때의 감격 그대로 나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강아지들이 태어나자마자 일어나듯이 바깥 산책도 저절로 되는 줄 알았는데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바들바들 떨던 ‘잡채’가 저리 산책을 즐기는 것을 보니 ‘잡채’는 기특하고 나는 뿌듯하다.

잡채! 어서와. 이제 집에 가자
싫어요.
화단이 너무 좋아요.

오늘은 수요일! 요가와 배드민턴이 겹쳐 있는 무지 바쁜 날, 서둘러 옷을 챙겨 요가 수업을 가기 위해 바삐 현관으로 향하다 그만 멈춰 서서 웃고 말았다. 미리 먼저 현관에 나가 꼬리를 흔들며

‘ 어서 산책 가자고, 이렇게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잡채’의 눈빛을 지나칠 수 없었다. 현관에 가장 귀여운 자태로 앉아서 꼬리를 흔들어 대는 모습이라니…….

요가를 접고 '잡채'와의 산책을 택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들바들 떨기만 하던 녀석이 이렇게 산책의 맛을 알아버리다니 성장이 반가웠다.

저 귀여운가요?
저 의젓한가요?
산책! 정말 재미있고 좋다.

이제는 여유롭게 리드 줄을 잡고 산책을 한다. 30분 이상의 산책 시간도 거뜬히 소화해 낸다. 뛰어다니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힐링이 되며 기분이 상쾌해진다. 아파트의 곳곳을 누비며 마음껏 냄새를 맡고, 수풀에 코를 쳐 박아 킁킁댄다. 강아지 친구들을 만나면 여전히 스스럼없이 다가가 코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또 마음껏 냄새를 맡는다.

강아지들에게 노즈 워크는 사람들이 하는 영화보기, 여행 가기 등등의 행위들과 맘먹을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도움(힐링)이 되는 행동이라 한다.
귀요미 아기 잡채

저만치 하얀 강아지가 다가온다. 4살 된 4.5Kg의 누나 앞에서 ‘잡채’는 이제 4개월 된 8.5Kg의 아기라고 소개한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잡채’의 덩치에 놀라고 순수한 눈망울에 반한다. 그리고 순진하게 생겼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 산책 후 집에 돌아와 발을 닦거나 세수를 할 때도 얼마나 자태가 얌전한지, 자세가 차분한지 안다면 칭찬을 하나 더 붙일 것이다.

잘 생긴 순둥이, 호기심 많은 ‘잡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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