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값 못 하는 쫄보 아기‘잡채’
이 밤에 응급실 가야하나?
‘잡채’에 대한 누나들의 사랑이 지나쳤는지, 결국 호들갑스러운 누나들의 관심이 오진을 하고 말았다. 토요일 저녁 동네 친구들과 ‘치맥’을 즐기던 우리 부부는 모임 중간에 서둘러 귀가를 해야 했다. 연신 날아오는 아이들의 전화와 메시지에서 ‘응급실, 절뚝거림, 관절이상’ 등의 단어를 보며 ‘잡채’ 다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올 것이 결국 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간 주변에 하도 걱정(반려견 병치레 수발과 비용에 대하여)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되는 녀석이 벌써부터 무슨 병치레인가 싶어 잔뜩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사서 고생이다’라는 이웃의 시선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커 남편과 나는 조용히 자리를 떠 집에 도착했다.
휴~한시름 놓았다.
24시 동물병원에 전화하여 알아낸 ‘다리가 바닥에 닿으면 위급상황은 아니니 아침에 진료를 받아도 된다.’는 상담 결과를 첫째를 통해 듣고 마음이 놓이기는 했으나 제발 아프지 말기를 기원하며 ‘잡채’의 요모조모를 살폈다. 지난 주 검진 때 무릎에 무리가 올 정도의 뛰어놀기는 자제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아이들을 긴장하게 했나보다.
사실 ‘잡채’의 앉는 자세는 좀 유별났다. 사람처럼 책상다리로 앉기도 하고, 통닭자세라 이름 지을 정도로 납작 하게 엎드려 마치 요가의 고난도 자세를 구가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는데 이 모든 것이 다리의 이상 때문이라면 ……. 마음이 너무 안타깝고 미안해졌다.
현관까지 나와 반기는 ‘잡채’를 보며, 깡충거리는 ‘잡채’를 보며, 낑낑거리며 헬리콥터 꼬리를 흔드는 ‘잡채’를 보며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라며 아침을 맞았다. 무방비 자세로 잠자는 ‘잡채’의 모습은 늘 더 많은 애정을 내 안에 키우게 한다.
병원 가는 길
다음날 원래 3차 접종일이기도 해서 목욕을 시키고 병원으로 출발했는데, 아뿔싸! 일요일 오후 2시까지 진료가 아니라 오후 2시부터 진료시작이란다. 1시간여 이상을 기다릴 수는 없어서 다시 집으로 향했다. 6Kg에 달하는 ‘잡채’의 무게도 힘들었지만 어찌나 발발 떨며 내 팔을 부여잡고 있는지 온 몸에 털 범벅을 하면서 ‘잡채’와 나는 한 몸이 되어 체온을 나누느라? 내 팔도 따라 경직되는 듯싶었다. 한 번 외출하는 일도 힘든데, 두 번씩이나 왕래했으니 ‘잡채’의 긴장은 최고조였으리라. 목욕탕에 끌려가 영문도 모를 물세례에, 번쩍 들려 안김을 당하고, 어지럽게 바깥세상 구경을 했으니 오늘 이 주인님이 나한테 왜 이러나 싶었을 것이다. (‘잡채’는 그 후 쭉 내 손길을 피하며 기겁했다.)
"사실 전 아기예요."
동물병원에는 이미 네다섯 명의 반려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잡채’ 덩치만한 아이와 고양이 한 마리를 빼면 모두 소형 견들이었는데 작은 고추가 맵다고 해야 하나! 덩치 큰 녀석들은 모두 가만히 있는데, 이 작은 이들이 까칠하게 짖어대고 낑낑거렸다. 물론 ‘잡채’는 짖기는커녕 내 팔을 부여잡고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 채 떨고만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웃겨 죽겠단다. 일단 ‘잡채’의 순진한 모습에 마음을 연 사람들(견주)은 억울한 얼굴을 연출하는 ‘잡채’의 검은 눈썹과, 꽈리처럼 꼬아 내 팔뚝을 부여잡고 있는 두 발에 대해 한 마디씩 하며 다정한 대화를 시작하였다.
얼핏 아주 오래 전 소아과 진료를 받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하며 주위 엄마들과 대화하던 병원 대기실 장면들이 겹쳤다.
사상충 예방을 포함하여 3가지 접종을 위해 진료실에 들어갔더니 2주 만에 자란 ‘잡채’의 모습에 의사 선생님도 놀란다. 앞서 진료한 ‘스피치’로 보이는 강아지와 ‘잡채’는 같은 개월 수 이건만 덩치는 ‘잡채’가 5배 정도로 컸다. 3개월에 5.9Kg이라니……. 저절로 15Kg 이상의 ‘잡채’가 그려지니 한숨과 함께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의사 샘이 혹시 둘째를 입양할 계획이라면 이름으로 ‘당면’이 어떠냐며 농담을 건넸다. 어디서든 눈에 띄는 독특한 이름 ‘잡채’이다.
어젯밤 우리 가족을 식겁하게 했던 증상들은 모두 정상이었음이 우리를 안도하게 했다. 사진을 본 후 앉는 자세가 여러 가지임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쫄보 '잡채'!고생했어.
병원 문을 나서서 다시 집으로 오는 동안 ‘잡채’의 무게가 다시 느껴졌다. 팔 한 쪽이 저릴 정도의 무게였다. 배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 벤치에서 잠시 앉아 주변을 돌아보며 바람을 쐬려했으나 ‘잡채’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얼굴이 퍼져 급격히 늙어 보일 정도로 더욱더 움츠러들 뿐이었다. 점점 터프하게 검어지는 기다란 주둥이 위에 순진한 눈망울이라니……. ‘잡채’는 분명 졸보-‘재주가 없고 옹졸한 사람’이란 뜻이 아닌 쫄보(벌벌 떠는)임이 분명하다.
정말 아픔이 찾아 온다면…….
잠깐의 마음 졸임이었지만 그날 밤 먼 후일일거라 믿고 싶은 ‘그날’을 애써 생각해 보았다. ‘무지개 다리 건너는’ 날로 이름 지어진 ‘잡채’의 마지막 모습의 날!
반려동물 키우기 인구증가와 비례하여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도 점점 사회적 문제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 관련 지식을 검색하니 ‘인간과 개, 고양이의 관계심리학(세르주 치코티, 니콜라 게갱)’이란 책이 자주 언급되며, 펫로스 증후군(반려동물 상실 증후군)을 설명하는 글이 많았다. 반려동물을 잃은 상실감은 친구(남자들에게는)를 넘어 자녀(여자들에게는)를 잃은 슬픔과 동등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깊은데, 사회적으로 아직 공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어 더 극복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감정을 공유하고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첫발을 디딜 수 있다 하니 그 슬픔의 무게가 벌써부터 느껴져 마음이 짠해 왔다. 그러다 결국 내 마음을 먹먹함으로 멈추게 한 문장을 보고야 말았다.
사람이 죽으면 먼저 가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 나온단다. - 스노우캣(권윤주)
눈물이 맺히려했다. 지난 드라마의 한 장면까지 고스란히 떠올라 결국 …….
내가 '잡채'를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내가 모르는 세상에서 또 다른 사랑과 이별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이제야 돌아본다. 한 달밖에 안 된 '잡채'와의 삶이 벌써 십년은 된 것 같은 이 느낌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잡채'로 인해 늘어난 웃음과 기쁨과 설렘을 오늘도 소중히 기억한다. 나날이 많은 추억과 사랑을 쌓아가련다. '그날'을 충분히 이겨내야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