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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까마귀호의 새로운 시작

by 적진

2화: 까마귀호의 새로운 시작

"해병대. 전원, 자원 채굴 작업팀과 유적 발굴팀을 데리고 와라!"

토우에 탑승한 해병대 수십 명이 백마호의 격납고에서 튀어나와 소행성 띠를 향해 돌진했다.

케이-6789의 떨리는 목소리가 함교에 울려 퍼졌다. 백마호의 함교가 순식간에 날아간 직후, 통신이 끊겨 암흑 속에서 오직 통신 장비에서 나오는 지지직거리는 소리만이 그를 감쌌다. '창 1호', '창 2호', '방패 3호'와 연결된 통신망은 다행히 살아있었다.

"창 1호, 외부 상황 보고하라!"

"네! 백마호 함교가 해적 '구'의 장거리 저격포에 직격 당했습니다! 지휘 라인 전멸... 현 시간부로 케이 대위님이 지휘권을 승계합니다!"

케이는 잠시 당황했지만, 암흑 속에서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백마호 엔진 크리스털 점검을 위해 엔진실로 들어가려 할 때 충격을 받고 쓰러졌었다. 주위는 온통 암흑으로 바뀌었고, 빈 통로에 혼자 남게 되었다.

"젠장! 방패 3호, 즉시 백마호 상단에 나노 실드를 전개하고 적 함선 위치를 파악해 플라즈마포로 응사하라!"

"알겠습니다!"

케이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마호의 거대한 선체 상단에 푸른 나노 실드가 번쩍이며 솟아올랐다. 이어서 백마호의 측면 포구에서 붉은빛의 플라즈마포가 우주를 가로질러 날아갔다.

푸른 숲 행성조합에서 긴급 철수 명령이 떨어졌지만, 케이는 통신이 안 되는 척하며 그 명령을 무시했다.

우지마 행성 소행성 띠에서 자원 채취 중인 작업단과 유적 조사단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방패 3호, 응사! 응사! 공격 속도를 높여!"

"적 함선, 소행성 뒤에 숨어서 계속해서 저격하고 있습니다! 플라즈마포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젠장... 해병대 아직인가... 작업단과 조사단 빨리 귀환해라!"

그와 동시에, 해적 '구' 함대에서 발사된 플라스마포탄이 방패 3호를 향해 쏟아졌다. 방패 3호의 나노실드는 버텨내지 못하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산산조각 났다.

"방패 3호, 침몰!"

"망할...!"

"해병대 토우, 작업단과 조사단과 함께 복귀했습니다!"

창 3호에서 연락이 들어왔다. 방패 3호의 희생 덕분에 해병대는 무사히 작업단과 조사단을 구조할 수 있었다. 그들이 백마호로 귀환하는 것을 확인한 케이는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방패 3호의 잔해에서 데이터 기록을 전부 회수해! 그리고 창 1호는 해적 '구'의 워프 이동 패턴을 분석해!"

파괴된 방패 3호의 블랙박스 데이터가 백마호의 중앙 컴퓨터로 전송됐다. 케이는 단말기를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며 해적 '구' 함대의 워프 위치를 예측했다.

"나왔다! 워프 후 나타날 지점, 345.123.74 5포 지점!"

"창 1호, 미사일 50기를 해적선에 발포해! 해적 '구' 함선이 워프 하는 순간, 워프 도착지에 기뢰를 워프 시켜!"

창 1호가 미사일을 쏘고, 해적 '구' 함대의 워프 이동을 감시했다. 소행성 띠에서 워프 반응이 나타났다. 해적 함선이 워프 포탈을 열고 사라지는 순간, 창 1호는 기뢰를 워프 시켰다.

해적 '구' 함대는 워프를 마치고 345.123.74 5포 지점으로 튀어나오자마자 사방에 깔려 있던 기뢰에 휩싸였다.

"성공! 해병대, 즉시 해적 '구' 함대를 포획하라!"

백마호의 해병대 토우들이 출격해 해적들을 제압했다.

전투가 끝난 후 백마호의 긴급 수리가 진행될 무렵, 푸른 숲 행성조합의 구조함대가 도착했다.

그들은 백마호의 참혹한 모습과 해적 함선이 포획된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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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대위님, 정말 죄송합니다. 철수 명령을 거역하신 건..."

구조함대장 이민준 중위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의 곁에는 푸른 숲 행성 조합의 행정 총책임자, 그리고 유난히 얼굴이 굳어 있는 몇몇 귀족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감사보다는 불편함이 더 크게 어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케이가 구해낸 자원 채취단과 유적 조사단이 거둔 성과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백마호가 파괴될 뻔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을 기다린 덕분에, 조합은 막대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케이의 독단적인 결정은 지시 불이행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죄송할 것 없습니다. 전 제 임무를 완수했을 뿐입니다."

케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의 눈에선 어떠한 흔들림도 찾아볼 수 없었다. 100여 년 복무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지휘관들의 명령을 수행했고, 그중에는 이번처럼 상식에 어긋나는 것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특히나 이번 임무의 결과는 그의 판단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쨌든, 명령 불복종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백마호 기술 전술 대위 직책을 박탈하고, 연락선 까마귀호 함장으로 전출을 명합니다. 당장 라 행성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유신 백작께 잘 말씀 드려놓겠습니다."

행정 총책임자가 싸늘한 목소리로 최종 명령을 내렸다. 케이는 군말 없이 경례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가 돌아서자마자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꼴랑 연락선이라니... 너무한 처사 아닌가?"

"자업자득이지. 자기 혼자 영웅이라도 된 줄 아나 봐."

"뭐, 우리한테 큰 이득을 가져다준 건 사실이니까."

케이는 묵묵히 백마호를 뒤로하고 '까마귀호'로 향했다. 백마호는 낡았지만 푸른빛이 감도는 옥합금 외장재와 위풍당당한 선체로 시선을 압도하는 함선이었다. 반면, 까마귀호는 이름처럼 검고 투박한 외형에 크기마저 작은, 한눈에 봐도 낡고 초라한 연락선이었다. 함선 내부로 들어서자 좁은 복도와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그를 맞았다. 하지만 케이는 개의치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함선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가진 '자유'와 '임무'였다.

"케이 대위님, 정말 가시는 겁니까?"

작업단과 유적 조사단원들이 달려와 케이를 배웅했다. 그들의 눈에는 진심 어린 안타까움과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대위님 덕분에 저희 모두 살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목숨 구해준 은인인데... 이런 식으로 보내다니 너무 불공평해요!"

그들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에 케이는 살짝 미소 지었다.

"괜찮습니다. 모두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까마귀호에 올랐다. 까마귀호는 천천히 푸른 숲 행성 조합의 모항을 떠나 라 행성으로 향했다.

넓은 우주를 가로지르는 동안, 케이는 함선 곳곳을 살피며 새로운 임무에 대해 생각했다.

연락선 임무는 위험한 전투 임무와는 거리가 멀었다.

어쩌면 조합은 그를 격리시키고 싶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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