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는 까마귀호에 오르자마자 익숙하게 의료실로 향했다. 차가운 금속 복도를 지나 치료 캡슐에 몸을 뉘었다. 캡슐이 닫히고 내부에서 부드러운 빛이 흘러나오며 케이의 지친 몸을 감쌌다. 그 순간, 까마귀호는 굉음과 함께 푸른빛 섬광을 내뿜으며 푸른숲 조합의 레드존 거점 행성인 소나무 요새를 향해 워프했다.
치료를 마치고 캡슐에서 나온 케이의 눈에 옆 캡슐에서 치료 중인 진호의 모습이 들어왔다. 모니터에는 '팔 골절'이라는 진단과 함께 치료 진행 상황이 표시되어 있었다. 케이는 진호의 신체 등급을 확인했다. 강화 4등급. 보통 인간이 5등급, 일반인 중 강화된 이들이 4등급, 귀족은 보통 3등급이며, 귀족 중 강화를 거치면 2등급이 된다. 1등급은 2등급에 나노머신이 신체에 포함된 최상위 등급이었다. 진호는 일반인 전투병으로서 4등급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케이는 망설임 없이 진호의 치료 캡슐 설정을 2등급 강화로 변경했다. 2등급 신체 강화에는 막대한 신용 포인트가 필요했지만, 케이는 자신의 포인트로 결제를 진행했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진료실을 나와 함교로 올라서자, 낡은 함선 특유의 미세한 진동과 함께 익숙한 기계음이 케이를 맞았다. 항해사 리엘은 함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 능숙하게 항로를 주시하고 있었고, 통신병 젠은 개인 단말기를 만지작거리면서도 필요한 보고를 놓치지 않았다.
"함장님, 전달 물품 상태 양호합니다. 소나무 요새까지 10분 남았습니다." 젠이 나직하면서도 정확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리엘은 고개를 살짝 돌려 케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워프가 끝나면 바로 정박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들은 케이의 라 행성에서의 일이나 진호의 치료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저 각자의 업무에 충실할 뿐이었다. 케이는 함장 의자에 앉아 푸른숲 조합에서 온 명령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워프가 끝나고 까마귀호가 도약의 문을 빠져나오자, 거대한 우주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 순간, 케이의 시야에 또 다른 워프 게이트를 통해 사라지는 백마호의 웅장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리엘, 백마호가 어디로 워프하는지 아나?" 케이가 물었다.
리엘은 모니터를 확인하며 답했다. "네, 함장님. 현재 황제 폐하께서 헬레니아 제국과의 전쟁에 직접 친정 가신다고 합니다. 백마호는 보급품을 싣고 천칭 항성계 전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헬레니아 제국은 100만 함대를 이끌고 고리 은하 제국을 침공했고, 황태자 "고성"이 총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지휘하고 있었다. 고리 은하 제국은 150만 함대로 맞서 싸우며 대승을 거두고 있었다. 황태자 고성은 천칭 항성계의 쌍성계 중력차를 이용해 헬레니아 함대의 발목을 잡고 대규모 섬멸전으로 승기를 굳히고 있었다. 황제 "고증"은 승리를 목전에 둔 황태자를 격려하기 위해 직접 전장으로 나섰고, 화려한 초대형 드래곤급 함대 "태평성대"를 이끌고 있었다. 태평성대의 화려함은 극에 달했으며, 이 드래곤급 함대의 보급을 위해 푸른숲 조합은 조합 함대의 3분의 2를 동원하여 물자를 조달하고 있었다.
까마귀호가 소나무 요새에 정박하자, 케이는 곧바로 요새 상황실로 향했다. 상황실은 거대한 홀 형태로, 중앙에는 은하계 전체의 전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홀로그램 지도가 떠 있었다. 수많은 요원들이 각자의 단말기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였고, 긴급 통신음과 보고가 끊이지 않았다. 케이는 그 혼란 속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지휘관에게 다가갔다.
지휘관은 케이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케이 대위, 전장으로 출발한 백마호에 무장 옵션을 전달해야 한다. 백마호가 전장에 물품을 전달한 후, 자네가 가져간 무장 옵션으로 바꿔주고 돌아오게."
임무를 확인한 케이는 상황실을 나와 까마귀호로 돌아왔다. 까마귀호는 이미 라 행성에서 가져온 모듈을 백마호에 전달할 무장 모듈로 교체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함선의 외형은 6개의 둥근 기둥이 둘러싸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 젠의 다급한 통신이 들어왔다.
"함장님, 까마귀호에 불청객이 침입했습니다!"
케이는 급히 함교로 복귀했다. 함교 안에는 해병대원들이 한 금발의 엘프 여인을 붙잡고 있었다. 그녀는 신기한 듯 함교 내부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에 관심을 표현하고 끊임없이 수다를 떨어대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케이가 물었다.
리엘이 보고했다. "함장님, 까마귀호 통로를 돌아다니던 엘프를 잡았습니다. 라 행성에서 밀항한 것 같습니다."
엘프는 자신을 "이카"인 "지은"이라고 소개했다. 이카는 복제 인간에 고성능 AI 코어인 메탈 코어를 이식한 고지능 인조 인간이었다.
지은은 여전히 함교 이쪽저쪽을 뛰어다니며 모든 것을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와! 이건 뭐예요? 저건 또 뭐예요? 반짝거리는 게 너무 예쁘다!"라며 끊임없이 재잘거렸다. 그녀의 눈에는 오래된 장비들이 내는 미세한 기계음조차 신비로운 음악처럼 들리는 듯했다. 희미한 빛이 감도는 함교의 투박한 벽면과 낡은 조종석의 버튼 하나하나까지도 지은에게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보물처럼 느껴졌다. 해병대원들이 그녀를 제지하려 했지만, 지은은 아랑곳하지 않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함교를 탐색하며, "이 커다란 화면에는 뭐가 나오는 거예요? 우주가 다 보이는 건가요? 저기 저 손잡이는 뭘 돌리는 거예요? 혹시 저걸 돌리면 배가 더 빨라지는 건가요?" 하고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지은의 수다 로 케이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까마귀호는 다시 도약의 문으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