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큐레이션 '기획전'
보통의 쇼핑몰 3번째 이야기
쇼핑 좀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아주 익숙한 단어 '기획전'
기획전을 영어로 하면 뭐라고 할까?
Theme store? plan shop? planning store?
직구 좀 해본 사람들이라면 블랙프라이데이에 미국 사이트에서 이걸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큐레이션 강자인 아마존에서도 기획전은 없다
기획전처럼 보이는 랭킹이나 특가매장이 혹은 테마추천이 있을뿐이다.
기획전이 뭔데?
상품을 찾으러 가는 사용자에게 기획전이 뭐냐는 정의는 사실 의미없는 내용일 수 있다. 그저 사용자에게 유혹적이고 hooking이 된다면 그건 어떤 방식으로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토종 대한민국 쇼핑몰 기획자라면 한번쯤 기획전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획전이란 특정한 테마를 기준으로 상품을 모아놓은 매장 페이지다. 보통 상단에 이미지배너나 타이틀영역을 통해 핵심 테마가 보이고 하단에는 '구분자'라고도 하는 소타이틀로 상품을 그룹핑하고 있다. 상품수는 1개부터 몇백개까지 다양하게 전시되고는 한다.
기획전이 샵인샵이나 검색결과, 자동화랭킹과 다른 점이라면 샵이나 카테고리매장에 비해 매우 작은 덩어리고 고객의 호기심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검색결과에 비해 판매자의 의도가 많이 반영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왼쪽 아마존은 테마를 누르고 가도 자동으로 상품만 불러오는 페이지고, 한국의 기획전은 오른쪽처럼 테마아래에 상품을 직접 전시한다)
아마존이나 이베이는 주로 카테고리를 통해 필요한 상품을 탐색해 나가는 게 주류라면 한국의 쇼핑몰들은 자극적인 타이틀로 고객을 후킹해서 자기 상품이 있는 곳으로 불러오는 기획전을 사용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단순히 사용자의 입장이라면 아무 차이도 없는 이야기다. 뭘 누르든지 그 배너나 텍스트가 이야기했던 그 상품들로 넘어왔으니까!
하지만 한국의 기획전은 판매자의 의도가 크게 반영된다. 그건 기획전이 백화점이나 오프라인매장을 온라인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우선 이건 주워들은 팩트를 기반으로 한 나의 철저한 사견이라는 것부터 밝힌다.
원조 쇼핑몰이라고하면 이베이나 아마존이 많이 거론되는데 이들은 오프라인 매장을 기반으로 한 매장이 아니라 특정 카테고리를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형태로 시작됐다. 아마존은 당연히 책이고 이베이는 경매물품이었으니 분류가 더더욱 어려웠고 이런 매장들이 커지면서 하나 둘 덩어리가 커지니까 상하위의 카테고리가 생겨났다. 책은 장르에서 책 이외의 물건들로, 경매물품이 아닌 분류가 가능한 다양한 직접 판매 제품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도록 카테고리를 통한 탐색이 강화된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한국의 쇼핑몰의 태생은 카테고리 킬러가 아니었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2개의 쇼핑몰 롯데닷컴과 인터파크는 처음부터 '종합쇼핑몰'로 시작했고 특히 롯데닷컴은 오프라인 백화점의 시스템을 그대로 옮기는데 집중했다.
백화점 지하나 아예 꼭대기층에서 우리는 이 온라인에서 정체모를 '기획전'을 다시 만날 수 있다. 형태조차 동일하다 '타이틀'+'상품' 그리고 교묘하게 마치 싼 것만 같은 할인율 문구까지!
그리고 아까부터 떠드는 판매자의 의도도 여기에 포함된다. 내가 MD는 아니기때문에 아주 정확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보통 기획전은 가장 할인율이 높은 후킹용 주연 상품과 나머지 조연 상품들로 이루어진다. 연애기획사에서 조연이나 단역을 소속사 배우들로 끼워팔기 하듯이 기획전은 보통 판매업체가 다루는 여러 브랜드중 하나가 빅세일을 하는 주연이면 나머지는 그 판매업체가 파는 다른 상품들로 가득찬다. 할인율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이게 외국의 아마존, 라쿠텐같은 곳에서 테마매장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된다. 단순히 로직으로 판매제품중 기준에 맞는 모든 상품을 보여주는게 아니다.
한국의 기획전은 판매자에게 주조연 캐스팅 권한 및 드라마 타이틀을 만드는 권한까지 판매자에게 쥐여줘야한다.
이런 한국식 기획전도 모바일 시대를 맞이하면 잠깐의 위기를 겪었다. 상품수가 적고 할인률로 승부하는 소셜커머스가 나타나면서 소위 "딜"이라는 형태의 단품이 점령해나갔기 때문이다.
딜 상품은 안정기를 지나면서 한 상품코드안에 기획전만큼 다양한 상품을 다양한 가격으로 가지는 형태를 보였는데 오픈마켓이 PC시절 선보이며 온갖 욕을 다 먹었던 옵션별 추가금액의 고급 버전으로 변화됐다.
소셜커머스의 우세함에 대형종합몰들도 GS를 필두로 해서 그만던 기획전들을 걷어내고 딜형 단품을 보여주는 딜매장들이 신설되었다.
하지만 딜의 시대가 조금씩 끝나면서 한국형 기획전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기획전의 원조격인 종합쇼핑몰은 물론이고 소셜커머스들도 기획전을 노출하기 시작했다.
모바일시대에서도 기획전은 다시 노출되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 기획전 이야기는 3주간이나 작성했다. 쇼핑몰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기획전에 대해 인사이트를 보여주고 싶었는데 쓰면 쓸수록 단품과 기획전의 대결에서 승자를 못 찾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객들은 어느 쪽도 자연스럽게 이용하고 기획전과 단품이 왔다갔다 하는 것이 사실 뭐가 나은 건지 데이터를 까봐도 무릎을 칠 만큼 명백한 가설은 없더라.
문득 대기업의 UX에 대해 비판적 시선으로 보았던 ji 작가님의 글이 떠올랐다.
이 글에서 대기업은 고객보다 내부적인 수치에 목표를 두기 때문에 UX가 망한다고 이야기한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팍팍한 업무 현실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너무 많이 보았고 또 겪었다.
기획전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매출을 위해 좀 더 많은 상품의 의도적이고 목적이 강한 공간효율적 인벤토리는 기획전이 최고고 낮은 투자금으로 로직화된 큐레이션이 불가하다면 역시나 기획전은 적법한 대안이 되는게 맞다.
반대로 말하면 대기업은 공간배치를 전략적으로 함으로써 돈버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고객은 상품상세에서 타사와 빠르게 비교하고 싶겠지만 가격비교 사이트가 아니라면 외부의 쇼핑몰 링크를 열어주는 것은 어리석은 것과 같다. 고객의 니즈도 선별적으로 걸러서 만드는 것이 돈버는 UX고 비용과 운영시간을 절감해서 업체에 이관가능한 기획전은 땡큐고 더불어서 주요 배너 자리에 기획전을 넣어주는 대신 광고비도 받을 수 있다면 쇼핑몰에서는 만세만세만만세다.
그래서 대기업 쇼핑몰에서 UX를 하고 있는 나는 단품과 기획전을 놓고 고민한다. 철저하게 고객의 시각에서 최대한 마케팅과 영업의 목표에 맞게 맞추는 천재기획자가 되고 싶다.
여튼 아마존과 라쿠텐에는 특별매장은 있어도 기획전이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 있는 소비자들은 카테고리를 이용한 탐색보다 기획전에 현혹되어 터치한 기억이 더 많을 거라는 건 데이터도 보여준다. 익숙한 건 이성적 판단보다 무섭다.
대충 잡아보는 인사이트는 오프라인의 익숙한 경험 구조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것은 그것이 설령 고객 입장에서 비효율적이라고 해도 여전히 유효해보인다랄까.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