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죠니 Jun 24. 2021

독립이 간절해진 이유

진심으로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졌다.

서른 살이 넘게 4인 가족과 함께 방 3칸 집에 거주 중이다.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본 적은 있었으나, 매번 현실적인 이유로 혼자보다는 같이 사는 게 더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를테면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인, 매 월 들어가는 방세.

월급쟁이 노동자로써 매 월 회사에서 받는 고정 수입은 한정되어 있었고 집을 구해서 혼자 산다면

지금까지는 쓰지 않았던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함을 뜻했다.



집을 구하기 위한 여정


집을 구하기 위한 보증금. 어쩌면 대출도 받아야 할지 모르고, 매 월 꼬박꼬박 내가 진 빚에 대한 이자를 내야 할지도 모른다. 전세로 살던지 월세로 살던지 서울에서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방세만 50만 원 전후를 고려해야 했다.



방세를 해결했다면 이제 세 끼 챙겨 먹을 식비를 고려해야 한다. 아침, 점심은 지금과 동일하게 회사에서 사 먹는다 쳐도 저녁은 무언가를 만들거나 혹은 배달을 시켜야만 했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항시 저녁에 밥을 하는 엄마가 있었고, 가끔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마켓 컬리로 주문을 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혼자 산다면, 월화수목금 평일에 퇴근하고 나서도 나 혼자 먹을 끼니를 위해 밥을 차려야 했다. 밥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과 수고를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같이 사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회사까지 걸리는 시간 평균적으로 편도 1시간 20분 남짓.

아침에 회사 갈 때는 버스 타고 졸면서 가지만, 집에 올 때는 지옥철에 갇혀 낑낑대며 힘들게 온다.

매일 반복되는 루틴에서 벗어나고자, 회사에서 걸어서 30분 안에 갈 수 있는 집을 구하려고 했다.

이게 작년 9월의 이야기다. 나만의 집을 갖기 위해, 직접 임장도 다녀보며 부동산에 무작정 전화하여 회사 근처로 혼자 살기에 괜찮은 집을 보여달라고 했다.



원룸으로 할지, 혹은 1.5룸으로 할지 고민이 되었다.

공간 분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1.5룸으로 평수를 늘려 생각하니까

"혼자 사는데 그 정도까지 필요하겠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곳저곳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보는 동안, 나는 내가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집이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



우선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 3층까지면 걸어서 갈 수 있지만 그 이상일 경우 엘리베이터가 없다면 힘들 것 같았다. 실제로 5층 단독 주택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을 가보고서 여긴 못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을 때 앞이 건물로 가려져 있는 곳. 나는 햇살이 드는 곳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공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바람이 잘 부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그런데 답답한 건물이 앞을 턱 가로막고 있으면 답답해서 살 수가 없다. 그래서 1~2층 저층에 있는 매물은 아예 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내가 살 집을 고르다가 갑자기 작년 가을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다시 회사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고

원래 내가 독립해서 살고자 하는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교통체증을 피하고 혼자 회사에서 가까운 거리에 살고 싶다는 작은 바람.

매주 집에서 재택을 하며 스리슬쩍 독립하고 싶은 욕구가 사라졌다.



독립이 간절해진 이유



그런데, 오늘. 다시 독립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된 계기는 엄마한테는 살짝 미안하지만, 같이 살면서 불편한 점이 많다.

예전에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 여겼는데, 지금은 내가 독립할 수 있는 여건이 되니까 다르게 보인다.



우리 집은 세탁기가 있는 데 사용을 안 한다.

엄마한테 왜 세탁기를 쓰지 않냐고 하면, 세탁기가 베란다에 있는데 배수 문제로 쓰기가 어렵고 써도 세탁기가 오래돼서 빨고 나면 더럽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번 우리는 손세탁을 한다. 속옷과 수건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끓는 물에 팔팔 삶아야 하는 원칙이 엄마가 가지고 있는 세탁 신념이었다.



가끔은 나도 내가 내놓은 옷을 손세탁해 입기도 하지만, 매번 그렇게 빨아서 입는 게 너무 힘들다.

모든 집에 하나씩 있는 세탁기. 심지어 지금은 건조기까지 있는 세상인데 왜 아직도 손세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새로 세탁기를 바꾸려고 들면, 지금 있는 세탁기는 어쩌냐며. 고장 나지 않았는데 버릴 수는 없다고 말씀하셔서 그냥 두고 보기만 하는데, 사용하지 않는다면 고장 난 것과 같은 게 아닌가?



보통 손세탁을 하면 또 화장실에서 하는데 그 시간 동안은 절대 화장실을 갈 수가 없는 것도 참기 힘든 것 중 하나이다. 기본적인 생리욕구를 바로 해결하지 못하고 참아야 하는 그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 내 독립 욕구에 불을 지핀다.



두 번째로는 냉장고. 우리 집 냉장고는 항상 120% 가득 차 있다. 가끔은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있는 건지 궁금할 정도로 쌓여있는데 실수로 냉장고 문을 열다가 알지 못하는 괴상한 검은 봉지에 발등을 찍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면, 으레 냉장고 문을 조심히 열지 그랬냐며 타박하는 엄마와 애초부터 언제 들여놨는지 모를 이 검은 봉지를 싹 다 버려야 한다는 내 주장이 맞붙으면서 사소한 말싸움을 하게 된다.



제발 냉장고 안에 있는 것들을 싹 다 리셋해서 버린 후에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는데,

엄마는 다 필요한 것들이라면서 절대 못 버리게 한다. 그래서 공간이 없다.

가끔은 내가 먹고 싶은 통 아이스크림이라던가, 4캔에 만원 하는 맥주, 2+1 하는 편의점 커피 등을 쟁여두고 싶지만, 그런 날이면 왜 이런 것들을 사 와서 냉장고에 박아두냐는 엄마의 한숨을 듣게 된다.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을 보관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필요하다.



가끔은 냉장고에 구역을 만들어 첫 번째 줄은 엄마 칸, 두 번째 줄은 아빠 칸, 세 번째 줄은 내 칸.

이렇게 구분을 짓고 싶다. 각자의 방이 필요하듯, 각자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의 작은 공간 또한 필요하다.

이게 어찌 보면 참 사소한 이유지만 살다 보면 이렇게 부딪히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는 폭발하게 된다.

역시나 내가 우리 집에 얹혀사는 주제라서 엄마의 물건인 세탁기와 냉장고는 내가 어찌할 수가 없다.

마음대로 내버릴 수도 없는 애증의 물건들.



한편으로는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기도 한다.

10남매로 태어나서 힘든 학창 시절을 보내셔서 그런지, 절대 무언가를 버리지 못하신다.

물건의 쓸모는 취향이 아니라 헤지거나 고장 나서 사용이 불가능해야만 버리신다.

그래서 나는 종종 엄마에게 '버리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고 농담조로 얘기하는데

그런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한편, 막상 생활에 불편함을 겪게 되면 짜증이 난다.



아무래도, 독립할 때가 되었나 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맞는 법.

새로운 나만의 안락한 공간이 필요하다.

내 취향으로 집의 구석구석을 채울 수 있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과생이었던 내가 마케팅을 선택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