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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리 Apr 09. 2022

우울, before & after

비로소 보이는 것들

당신의 인생은 행복한가, 불행한가?


결론적으로 내 생각은, 삶의 기본 컬러는 불행이더라. 불행이란 특별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묵묵하게 디폴트로 장착되어 불쑥불쑥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킨다.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지만 마치 사방에 김치 국물이 튀어버려 못쓰게 된 옷감처럼 선명하고 무자비하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욱 타이트하게 달라붙는 것이 그것의 속성이다. 불행을 유발하는 감정은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쉽게 장착된다.  


너무 비관적인 거 아니야? 우울증을 앓고 나서 그렇게 된 거 아닌가?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우울을 앓고 비로소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된 것이라고 본다.


일상에서 행복을 위해 우리가 하는 수많은 행동들, 예를 들어 맛집을 찾아다니고, 취향의 음악을 듣고, 사랑을 꿈꾸고, 성취감을 위해 쉼 없이 달리고, 소유를 통한 만족을 위해 소비하고, 근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미래를 위해 재테크와 투자에 힘쓰고...


실은 이 애쓰는 모든 것들의 기저에는 무력감과 불안을 떨쳐내기 위한 발버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노력이 결코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시작점이 무엇에 기반되었는지 한번 짚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노력으로 얻은 행복감의 유효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나 또한 돌이켜보면 우울증을 앓기 전 30대 후반이 되기까지 그렇게 하루하루 행복을 찾아서 발버둥 치며 살았던 것 같다. 꿈꾸던 직업을 가지게 되면 세상이 다 내 것 같겠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부러울 것이 없으리라 싶었고, 누리고 향유하는 것들이 주는 만족감으로 채워가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지독한 우울증은 어쩌면 행복이라 믿고 달려왔던 것들이 무참히 박살 나는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산산이 조각나는 것의 경험은 모든 것을 리셋하고 다시 원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바닥을 찍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나 보다.

힘없이 주저앉아 사방이 우울로 뒤덮여 있을 때, 비로소 파편처럼 흩어져있는 행복이란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그것은 애쓰며 찾아다닐 필요 없이 불행이라 느끼는 사방에 드문드문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인지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들,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돌아보며 차분히 느끼려 할 때만 감지되는 것들이었다.


피로가 누적되어 손가락도 들 힘이 없던 어느 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단지 뜨거운 레몬주스를 한잔 마시고 푹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언제 그랬냐는 듯 회복되어 있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잠을 잤을 뿐인데 내 몸을 스스로 밤새 치유의 프로세스를 돌린 것이다.


귀찮아서 잘 돌보지도 못했던 화분이 어느 날 눈에 들어왔다. 그 척박한 상황 해서도 화분은 여릿한 연두색 새순을 틔우며 생동감 있는 살아 있음의 몸짓을 누가 보던 안 보던 묵묵하게 해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유독 생각나는 아침, 전화를 할까 말까 하는데 누군가가 그녀에게 알려준 것처럼 딱 그녀가 전화를 하는 것이다. "어머,  반가워~ 네 생각 방금 하고 있었는데 정말 신기하다"


특별히 나는 요즘 아기를 키우면서 아이의 몸과 정신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을 보며 감탄을 넘어서 경외심을 가지게 된다. 아이의 인지 능력과 언어가 놀랍도록 변해가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다. 하루가 다르게 폭발하듯 커가는 아이에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게 오히려 아주 미비해 보인다.

 CS루이스는 '기적'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성경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과 수천 명을 먹인 기적의 사건은 이미 우리 삶에서 그 속도가 아주 느려서 인지하지 못할 뿐 매일의 기적으로 이미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물과 흙만으로도 포도나무는 포도알을 만들어내고 있고, 물고기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고 애쓰지 않아도 생식 활동으로 몇 배의 물고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 그것은 내 의지와 노력과 무관하게 특별한 선물이자 기적 그 자체이다.

세상에 우연하게 생겨나 스쳐 지나가 듯한 생명이란 없는 것이다. 숨 쉬고 느끼고 만지고 생각하는 것은 그저 놀라운 것이다. 대자연의 약속이라도 한듯한 변화와 형형색색 제각가의 모양새를 관찰하고 일상에서 인지되는 기적 같은 흔적들을 발견하고 느끼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삶에 대한 경외감과 소중함, 감사가 흘러나온다. 그것은 찰나의 즐거움과는 다른 것이다.

 

불행으로 뒤덥인듯한 인생에 행복 찾기란 파랑새를 찾아 떠났던 동화 속 이야기처럼 결코 애쓰고 찾아 나서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또렷하고 투명하게 박혀 있는 별처럼 내 삶에 이미 놓여 있는 것들이었다. 단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었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생각난다. 강변북로에서 한강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며, '저 새는 우울한 것이 무엇인지 알까? 나도 새가 되어 우울감 없이 저렇게 가볍게 날고 싶다'

그땐 새가 부러울 만큼 마음이 힘겨웠다. 그저 공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마음이 끝까지 바닥으로 내려가고 한참의 몸부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상에 이미 놓여 있던 기적 같은 행복의 요소들을 발견할  있었다. 만약 '시간을 과거로 돌아갈  있다면, 다시 우울을 겪고 싶은가?'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다시 우울의 터널을 지나갈 것이다. 우울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사방을 헤매고 다니며 고단한 삶을 보내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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