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리 Jan 03. 2022

생각 청소

쓰다  버리다  기억하다 

마치 양푼 가득 뻑뻑하게 뒤 썩인 비빔밥을 미련스럽게 입안 가득 밀어 넣고, 기어이 체기로 가슴이 답답해진 듯한 기분이 느껴질 때 조용히 노트북을 연다. 

밑도 끝도 없이 그저 현재의 기분을 제동 없이 '타닥타닥' 써내려 가다 보면 신비로운 명약을 먹은 듯 답답함이 사그라들고, 미친년 꽃다발 같던 마음에 주파수들은 어느덧 머쓱해지는가 싶더니 잠시 후 평온한 리듬을 탄다. 나에게 쓰는 행위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며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는 속 이야기를 가식 없이 쏟아 놓을 수 있는 비밀의 대나무 숲이자, 나 조차도 애매하고 흐릿해서 눈치 채기 어려운 내밀한 나의 이야기를 농도 깊게 들을 수 있는 소통채널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일기는 언제나 6하 원칙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what), 왜(why), 어떻게(how)에 맞춰진 지루하기 이루 말할 수 없으며, 의무감으로 충만했던 그것이었다. 

도무지 이 짓을 왜 숙제로 제출해야 하는지 순종이 익숙했던 어린 마음에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 그것은 전혀 유익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던 그저 강제 노동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 어린아이가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음과,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벽 앞에 놓였을 때 비로소 그것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생존본능처럼 시작되었다. 처음에 컴퓨터라는 이 무뚝뚝하고 무미건조한 사각형을 데리고 내 마음을 써내려 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른다. 

마치 서먹한 소개팅 자리에서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원래 입 열면 속사포 같이 따발총 쏘던 애가 요조숙녀로 둔갑하듯 할 말도 쓰려고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막혀버리는 희한한 경험을 한다. 


그러나 친해지려면 일정기간의 지속적인 만남과 스킨십이 필요하듯, 그렇게 사각형과의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필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사라지고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이 활자가 되어 꽂히기 시작했다.

그것을 일기라고 할지, 기록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어떤 상황에 대한 느낌, 복잡 미묘한 감정의 원천을 찾기 위한 나열, 신에게 부르짖는 하소연, 책을 읽고 난 후 생각의 정리, 어떤 것을 통찰하게 되었을 때의 메모 등이었다. 전혀 6하 원칙을 고려하지 않은 무형식의 끄적거림. 


쓰는 것이 주는 유익은 이러했다


정열 되다 

복잡한 생각은 복잡한 일상과 관계로 이어진다. 정리 안 되는 생각 속에 빠져 있으면 삶에 진도가 나지 않는다. 인간은 미해결 과제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그 자리로 복귀하여 해결하려는 본능이 있는듯하다. 떨쳐내려 해도 찝찝하게 따라다니는 생각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정열 되었다. 

중요한 핵심 생각과, 그것으로 파생된 군더더기들이 가려져서 결국 버릴 것은 버려지고, 새롭게 조명되는 것은 재해석되어 질서를 찾게 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것은 상당히 명쾌한 기분이다. 


해소되다 

빵빵하게 차올라 터질 듯한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표현하고 나면 '괜찮아지는'것들이 있다. 

수다의 유익이 그러하듯 내면에 극렬한 감정은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순간, 그 힘을 잃고 차분해진다. 

그렇다고 나의 컨디션과 상태에 맞춰 늘 누군가가 대기할 수도 없는 법. 스스로 글을 쓰는 것은 가장 안전하고, 간편한 수다 방법이다.


깊어지다 

일상의 호흡은 짧고 분주하다. 그래서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들여다볼 여유가 없다. 

나 자신조차 도무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들춰낼 여유 없이 대부분의 나날들을 보낸다.  

그러나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내 생각을 들어야 쓸 수가 있으니, 스스로에게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더라. 

그렇게 생각을 집중하고 그것을 다양한 어휘로 표현하고, 다시 정리하는 습관은 어느덧 생각의 농도와 깊이를 더한다. 깊어진 생각은 상황과 사람과 나 자신을 보는 시각을 확장시키고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기억하다

인간은 망각한다. 그러다 기록한 것은 까마득한 그 시간으로, 그 생각으로, 그 감정으로 데리고 가주는 타임머신과 같은 것이다. 과거의 글을 읽으며 그때의 생각과 마음을 반추한다. 아득하고 애처로운 나와 재회하기도 하고, 현재에 대한 감사와, 결코 잊지 말아야 하는 관계와 약속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현재를 의미 있게 만든다. 지금 이 순간이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공감해주는 사람 앞에서 만큼은, 보호 갑옷도 무장해제되고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낀다.  글을 쓰는 것은 결국 내가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가장 가까운 듯 하지만, 정작 늘 외부 우선순위에 밀려 소외된 나. 글을 쓰는 그 시간만큼은 내 생각에 시선이 온전하다. 

  

특별히 우울과 불안으로 버거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누군가가 있으시다면 기꺼이 글을 쓰시라고 권하고 싶다.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도 괜찮다. 형태가 무엇이건 간에 현재의 마음을 솔직하게 써 내려갈 때, 마치 대청소를 했을 때와 같은 청량감과 그것이 비록 독백일지언정 예상치 못한 위로와 공감이 내 안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전 10화 취하지 말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