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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리 Dec 14. 2021

범인은 숨어 있었다

나만 알고 있는 나

"선생님! 욕을 하는 것은 나쁜 거지요?"

머리를 야무지게 뒤로 딱 붙여 묶고 다녔던 주일학교 같은 반 친구가 선생님에게 똑소리 나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찌 이리 좋은 질문을 하냐는 듯 흐뭇한 미소로  "맞아요! 욕을 하면 절대로 안돼요. 그건 나쁜 사람만 하는 거예요"

"선생님 그런데 ㅇㅇ이 아빠가 '에이~ 시팔'이라고 오늘 욕했어요"

"어.... 그래요... 그건 안되는 거죠..."

선생님은 살짝 당황하셔서 상황을 급하게 정리하였으나 oo인 9살의 나는 용광로에 잠시 들어가 나온 듯 벌겋게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때의 화상은 여태껏 수치스러운 흉터가 되어 마음 저 후미진 곳에 현재 진행 중으로 있다.

 


유년시절 나의 아빠는 그렇게 어느 정도 부끄러움을 주는 분이었다.

나는 한 번도 아빠와 정서적 대화를 나눈다거나, 내 이야기와 상황을 공감받는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언제나 그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몸은 함께 였으나 적어도 내 마음에서는 부재중이었다.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 갈치 요리를 한 적이 있다.

아이가 제아무리 솜씨를 낸 듯 어찌 대단히 깊은 맛이란 걸 내겠는가... 나는 내가 아는 갈치조림의 맛을 내기 위해 이것저것 양념을 넣다가 설탕을 넣었다. 조금 많이... 그래도 내 입맛에는 나쁘지 않았다.  

식구들에게 맛있다는 평가를 듣고 싶었던 나는 내심 기대와 긴장 사이에서 갈치조림을 한입 입에 넣으시는 아빠의 모습을 숨죽여 지쳐보고 있었다. 곧 칭찬을 받을 것을 기대하며 말이다.   

"야~ 이 따라야(경상도 사투리로 야~ 이 계집아이야 정도로 해석 가능) 뭔 놈의 갈치가 이래 다노~ 마 치아뿌라(때려치워라)"하며 숟가락을 양은 밥상에 던지듯이 내려치며 아빠는 나가버리셨다.


그렇게 그는 가족의 분위기와 자녀의 기분보다 당신의 입맛 상함이 더 중요한 분이었다. 그렇게 언덕 같은 존재여야 하는 아빠의 정서적 부재로 나는 때때로 슬펐고, 때때로 아팠다.

그러나 성인이되어 경제적인 독립을 하고 삶의 터전이 분리되고, 나만의 경험과 생각들로 가치관이 새롭게 채워지면서 아빠에 대한 내면의 이슈들은 어느덧 사라진듯했다. 또한 세월 앞에 그 역시 속절없이 약해지고 작아지셨다. 과거 감정을 후벼 파며 상처 주기에 서스름 없었던 야속한 아빠는 없어지고 그저 이곳저곳 고장 나기 시작한 자신의 몸 하나를 건사하는 것 만으로 벅차셨다.


아빠의 어린시절은 가혹하고 외로웠다. 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었고 새엄마로부터 따듯한 밥 한 그릇 얻어먹지 못하고 늘 차갑고 바늘방석 같았던 유년시절을 보내셔야 했단다. 그 역시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공감과 사랑을 느끼지 못한 채 컸고 그 결핍이 무엇인지 뒤돌아 생각할 환경도 분위기도 제공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생활전선에서 돈을 벌어내야 했고 우리 삼 남매를 먹여 살려야 했다. 비록 우리에게는 다소 거칠고 무심한 아빠였으나 천성이 순진하고 정직하여 동네 사람들로부터는 늘 사람 좋다는 평을 받았다.  

당신 스스로 내면을 보듬을 여유가 없으셨으리라, 내 마음이 척박하니 내 자식들에게 조차 부드럽게 대하는 것도 모르셨을 것이리라. 성인이 되고 나서 나는 상당히 많은 부분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해는 곧 해결이 된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의 감정은 때로는 자동반사적이고 본능적이다. 즉 그것은 논리적이지 않으며, 이해 가능한 설명도 불가능하다.  자동반사와 본능은 아주 어린 시절 내면의 세포가 그 형태를 만들어갈 때 애착관계로부터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로부터 응당 받아야할 안정감과 정서적 유대감이 잘 형성되지 않을 때 마음의 어떤 지점이 고장나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지독하고 끈질기게 삶에 영향을 미친다.


내가 우울증임이 확인된 그때 나는 이것을 회고해 보았다.

현재의 사건은 단초가 될 뿐이었고 실은 그 밑에 해결되지 않은 어마어마한 감정의 덩어리가 숨어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진짜 범인이 따로 있었다. 나는 우울함에 같이 물려 있었던 내 감정의 사슬인 슬픔과 외로움, 허전함과 짜증, 불안과 두려움 그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9살에 어린 나를 만났다.

아이의 시간은 화석이 되어 멈춰 있었다. 이미 세월이 한참 흘러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 나는 여전히 흐느끼며 내 안에 숨어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괜찮다고,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고 무안했는지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그러니 이제 편안해지라고... 아빠도 그때는 무엇이 옳은 것인지도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라서 그런 거라고 그런 아빠를 용서하자고...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요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의식이 실은 삶의 모든 부분을 결정한다고 한다.

우울은 감춰져 있던, 아니 열고 싶지 않아서 꽁꽁 묻어 두었던 내 유년시절의 한 챕터를 기어이 들여다보게 했다. 그러나 실은 고장나버린 마음을 고칠 수 있는 열쇠는 반드시 그곳에 가야만 열 수 있는 것이다.

아픈 채로 멈춰버린 어린 나를 찾아가서 공감과 위로, 용서를 할 때 기억은 그저 기억이 될 수 있다.


내 인생에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지는 꿈에도 모르실 아빠는 올해 8월 갑작스러운 폐암 통보를 받고 10일 만에 돌아가셨다. 그는 마지막 길에 인생을 돌아보니 가족이 가장 소중하다며 뒤늦은 후회를 남기셨고, 늘 강하고 자기 멋대로 셨던 모습은 사라지고 순한 양처럼 고요하고 차분하게 마지막 여운을 만드셨다. 나 역시 정작 돌아가시고 나니 아빠가 사무칠 만큼 그립다. 조금 더 따듯하게 대해드릴걸, 말이라도 더 살갑게 해 드릴 걸 하는 아쉬움만 부지불식간에 떠오른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투성이다.

본인의 상처가 소화되지 않은 채 의도됨 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조차 상처를 대물림 하기도 하고, 가장 친밀해야 하는 관계가 마음과 달리 서먹하고, 어색한 채 오랜 세월 부재중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어설프고 모자라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누군가를 올곧게 사랑하고 싶다면, 우선 내 마음에  ‘안녕’이 먼저다.

불쑥불쑥 형채를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이 일상을 흔들어 놓는다면, 혹시 울고 있는 어린 내가 있는 건 아닌지 찾아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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