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로뎀 정신과 최의헌 원장님
본 매거진은 <아임 낫 파인> 프로젝트로 출간되는 책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우울증과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책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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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낫 파인을 취재하면서 여러 이해관계자들을 통해 가능한 다양한 각도에서 우울증을 살펴볼 수 있었다. 최의헌 원장님은 우울증 병력과 관련한 인터뷰에서 처음 뵀다. 첫인상은 너무 의사 선생님 같아서(?) 긴장했는데, 원장님의 군더더기 없는 정확한 설명이 크게 위로가 됐다. 그래서 후속 인터뷰를 요청드리고 두 번째 찾아뵈었다.
처음에는 우울증의 다양한 종류와 증상에 대한 정보를 여쭙기 위해서 찾아갔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궁금했던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해주셔 예정했던 시간을 훌쩍 뛰어넘었다. 우울에 대해서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고 그중에는 아직 계속해서 연구가 이뤄지는 부분도 있었다. 주제 중에는 학계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여기에는 우리의 질문에 대한 최의헌 원장님의 견해를 담았다.
우울증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우울증이라 부르는 주요 우울장애와 지속성 우울장애(기분부전 장애)가 있다. 두 가지의 공통점은 시작과 끝이 분명하게 있다는 것. 마치 감기가 왔다가 나아지는 것과 같다. 이것을 삽화 Episode라고 한다. 지속성 우울장애도 마찬가지다. 주요 우울장애와의 차이는 훨씬 길다는 것뿐, 시작과 끝이 명확하다.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저자가 진단받은 것도 지속성 우울장애다. 계속해서 얕은 우울감이 지속되니까 마치 우울함이 타고난 성격인 것처럼 느끼기 쉽다.
하지만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는 ‘우울은 성격이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성향 trait이 아니라 상태 state다. 타고난 성향, 기질은 숙명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우울이라는 기분은 어렵긴 하지만 정상으로 돌아오거나 좋게 만들 수 있다. 어떤 상태의 기간이 길다고 해서 그것을 성격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다른 신체질환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만성질환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타고났다고 보지 않는 것과 같다.
대조적으로 성격장애는 지능처럼 타고나거나 고착화된 것이다. 대개 18세 이상 성격이 고착된 이후부터 지속되는 특성이고 어느 상황이나 누구를 만나든 거의 변함없는 특성을 말한다. 따라서 치료도 거의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성격을 다듬는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외형적으로 모나지 않게 표현하는 걸 연습하기도 하고 약물치료도 한다. 그러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특성을 갖는다. 성격장애는 편집증, 조현병, 반사회성 성격장애, 경계선 성격장애 등이 있다.
만 1세~3세는 아이가 교육을 받는 가장 중요한 기간이다. 그 이전에는 가르칠 수가 없고, 그 이후는 유치원에서 배우게 된다. 이때 대소변을 가리는 법, 인간관계의 본질, 자신에 대한 특성을 배운다. 이 발달 시기에 문제가 생겨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질환이 우울증, 성격장애, 강박장애, 식이장애다. 공통점은 이 질병들이 극단적이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이 시기에 “해/하지 마”, “잘했어/못했어”라는 식의 표현만 배우기 때문에 극단적인데, 이 시기에 문제가 생기면 커서도 문제가 생기면 극단적으로 표출이 된다.
우울증이 성인이 되면서 겪은 사건보다는, 어린 시절 양육방식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약간 억울한 느낌도 들었다. 다 커서 20-30대에 발생한 우울증도 어린 시절과 긴밀한 연관이 있다니. 돌아가서 고치고 올 수도 없지 않나.
A: 보통 저는 자물쇠와 열쇠로 설명하는데요, 어린 시절의 양육과정과 상관없이 우울증이 생길 수도 있다고 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제가 이해하는 바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똑같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단순히 우울로 끝나는 사람과,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사람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에요. 아까 말한 만 1-3세의 성장과정에서 모종의 결함이 생긴 사람은 같은 사건을 두고도 우울증까지 갈 수 있는 거죠. 계속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고, 포장을 하고 살아가죠.
어렸을 때는 단순하니까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다가, 사춘기 이후에 사회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맞이하게 되면 숨겨져 있던 문제가 드러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중대한 이별이나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그 사건이 열쇠가 되어 그 사람의 자물쇠를 푸는 역할을 합니다. 자물쇠와 짝이 이루는 열쇠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현재의 스트레스로만 병이 일어났다고 보는 건 단순한 설명이에요.
Q:원장님이 처음에 우울은 기질이 아니라고 했는데, 어린 시절에 이미 결정된 거면 기질에 가깝지 않나요?
A:기질은 열쇠가 안 들어와도 어느 순간이 되면 항상 발현됩니다. 시작과 끝이 없이 가는 것이고. 열쇠가 작용하지 않아요. 잠겨있지 않는 자물쇠인 거죠. 상태는 잠글 수 있는 것이에요. 평생 안 열리고 갈 수도 있어요. 마찬가지로 암도 나에게 걸릴 수 있는 요인이 있어도 평생 안 걸릴 수도 있어요. 그러면 암이 기질이냐,라고 하면 아니에요. 우울증은 암과 같은 상태인 거죠.
일반적으로 심한 스트레스가 심한 우울을 야기하고, 가벼운 스트레스는 가벼운 우울을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 발생한 병적인 요인이 더 기저에 있을수록 심한 우울이 오고, 가벼운 우울은 우울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극복할 수 있는 요인이 본래 어느 정도 있는 상태이다. 사람에 따라 심한 스트레스에도 가벼운 우울이 생길 수도 있고, 그 반대기도 하다.
우울의 진단 기준은 크게 9개가 있다. 그중 중요한 두 가지가 ‘우울하다’ 거나 ‘흥미가 없는 것’이다. 우울증이라고 진단할 때 둘 중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 바꿔 말하면, 우울증이지만 우울하다고 느끼지 않고 흥미가 없기만 할 수도 있다. 흥미가 없다는 건 평소에 즐겨했던 것, 예를 들어 드라마를 보거나 종교생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 특별한 취미와 같은 것에 어느 순간 재미와 의욕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때 대개는 ‘아, 내가 우울증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다 끝났구나’라고 생각하고 포기한다. 이 단계에서 진단을 받고 지금부터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만 해도 출발이 달라질 수 있다.
원장님은 더 현실적으로는 ‘몸에 왔느냐’를 살펴본다고 하셨다. 대개 기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신체적으로 변화가 오게 된다. 식욕, 성욕, 수면 같은 리듬에 문제가 오는지를 살핀다. 두 번째로 확인하는 것은 평소에 자기가 쓰던 우울 극복 방법이 통하느냐 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자극’이 통하는지를 본다. 평소에 우울할 때 초콜릿을 먹거나 수다를 떨거나 술을 먹는 방법이 우울증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소용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하거나 자살을 생각한다.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렇게 평소의 ‘자극’으로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정신과에서는 새로운 방법으로 치료하는 것인데, 이는 자극이 아니라 규칙 regulation이다. 일반적으로 주변 사람들은 우울하다고 하는 사람에게 자꾸 무엇을 하라고 권한다. 운동이나 여행을 권한다. 하지만 우울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더 스트레스가 된다. 직장을 바꾸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직장을 쉬라는 것도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보통은 평소의 리듬을 바꾸지 않고, 익숙한 환경을 유지하는 게 좋다.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한데 우울한 상황에선 그게 잘 안되기 때문에 약물치료를 시도한다.
물론 우울증은 치료를 안 해도 자정적으로 회복된다. 그렇지만 치료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먼저, 좋아지는 게 너무 오래 걸린다. 한 1년 걸리는데, 그 사이 내 주변은 이미 풍비박산이 난다.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빠르게 치료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우울증은 자살 때문에 다른 질환보다 훨씬 사망률이 높다. 그래서 그냥 기다릴 수가 없다. 우울증 삽화라는 것은 감기처럼 걸렸다 나았다 하는데, 짧게는 2주, 길게는 몇 년까지 지속된다. 우울증 치료는 이 삽화 기간을 단축해주는 것이다.
우울증이라는 표현은 현대에 나온 것이지만 모든 병이 그렇듯 오늘날의 병은 고대부터 있었다. 다만 그 설명의 차이가 다르다. 우울증이라 묘사하기 시작한 건 히포크라테스가 ‘멜랑꼴릭’이라고 언급을 한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지금은 의학에서는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히포크라테스는 신체에서 네 가지 액체, 즉 피, 점액, 검은 담즙, 노 란담즙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느냐에 따라 병이 생긴다고 표현했다. 검은 답즙이 강한 사람을 가리켜 멜랑꼴릭, 즉 ‘검은 담즙의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현상이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다른 대목에서도 우울이라는 표현보다는 고통이라는 막연한 표현으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울증을 묘사하기 시작한 건 정말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질환은 사회현상이 맞물려있지 않다면 어떤 사회든 유병률이 비슷하다. 병을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현대에 와서 우울증의 비율이 올라갔다면 생물학적으로 규정된 병이 아니라, 문화적 맥락에서 병의 해석이 확대됐다고 봐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원장님은 시대에 따른 병의 비율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거의 같다고 본다.
Q:현대인들 다 정신과 가면 질환 하나씩은 받을 거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너무 쉽게 우울증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어요.
A:예전에는 병원에 가지 않고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걸 선호했는데, 지금은 사소한 것도 병원에서 해결하는 문화가 됐어요. 그렇다면 영역을 좀 더 넓혀서 더 심각해지기 전에 미리미리 도움을 받는 게 더 낫다고 생각을 해요. 사회적으로 작은 신호가 있을 때 병원에서 빨리 진단받고, 약을 먹는 게 좀 더 보편화됐죠. 모든 사람을 환자 화한다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단순히 비교하면 우리나라에서 정신과를 찾는 비율이 외국에서 정신과를 찾는 비율의 1/4도 안된다고 하거든요. 우리나라가 OECD 중에 자살률 1 위기 때문에 지금은 좀 더 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병원에 가서 약 먹고 하는 걸 주변에서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는 문화가 정착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병원에 오는 사람 중에 정말 우울에 합당한 기준에 들어맞는 사람이 사실 많진 않아요. 우울증 기준 이하의 사람들도 불편하면 와도 좋아요. 차라리 많은 사람들이 의학적인 도움을 받아서 우울감이 내려가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 좋아요. 병원에서만 해결하는 것도 아니죠. 심리적, 신체적 여가의 도움이 많이 강조되고 있잖아요. 건강이 중요시되는 게 사회 흐름인 만큼, 심리적인 문제도 자연스럽게 병원에서 도움을 받는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울을 생물학적 요인, 즉 호르몬의 결과로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 이 책에서도 몇 번 우울증이 뇌 활동의 결과이고,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에서 기인한다고 취재한 바 있다. 원장님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를 설명하셨다.
A: 어떤 사람들은 지금 이 우울증의 생물학적 결과가 생물학적 원인이라고 얘기해요. 관점의 차이가 생기죠. 약을 쓰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생물학적 결과를 조정하기 위함이에요. 예를 들어, 감기가 걸리면 열이 올라가고 히스타민이 높아지는데, 히스타민이 높아지는 건 열이 높아지는 걸 해결하기 위한 몸의 자구책이에요. 병을 이겨내려는 우리 몸의 반응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학적으로 쓰는 항우울제들은 주로 세로토닌을 높이는 역할들을 해요. 하지만, 세로토닌이 이 사람의 병의 원인이냐? 알 수 없어요. 마치 우울증, 감기에서 히스타민이 높은 것처럼 결과라는 것은 분명한데 원인이라고 단순화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약물을 통해서 이를 해결하고 다시 정상화는 방법으로는 지금까지 중에서는 세로토닌을 높이는 게 가장 빠른 길이예요. 우리가 빠른 길이니까 선택을 하는 것이지. 앞으로도 계속 세로토닌이 모든 치료의 대사가 될지는 모른다는 거죠.
세로토닌이 왜 떨어지느냐. 생물학적인 개념을 주장하는 사람과 저는 상반된 의견이기는 한데 저는 이렇게 설명해요. 1-3세의 성장과정에서 “해/하지 마”로 균형을 키우는 교육을 하잖아요. 에릭 에릭슨이라는 사람은 그때 그 교육과정을 통해서 아이가 자율성 autonomy을 배우는데, 그 자율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수치심 shame이 생긴다고 얘기해요. 이게 세로토닌과 관련 있다고 얘기해요. 세로토닌이 적당한 것이 자율성을 느끼고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수치심을 느낀다는 거죠. 그래서 단순히 세로토닌이 높아진다고 기분이 좋아지지 않아요. 자율성이 확보되는 것이지, 아 세로토닌이 높아지면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원장님의 말씀에 따르면 정신의학계에서는 우울이 생물학적 요인의 결과라고 보는 견해가 대세를 이룬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의학계에서도 여전히 견해가 분분한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해서 좀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을 때, 솔직히 말씀해주신 원장님께 매우 감사했고, 인간의 본성적이고 철학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다.
우울증이란 인류가 오래전부터 보편적으로 가져온 질병이며, 타고난 기질이라기보다 변화 가능한 상태라고 생각하니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 잘못해서 힘든 게 아니라 그저 인간이 이렇게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위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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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매거진은 <아임 낫 파인> 프로젝트로 출간되는 책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우울증과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책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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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온 팀 강령 님의 우울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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