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지만 살고 싶은 사람들
본 매거진은 <아임 낫 파인> 프로젝트로 출간되는 책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우울증과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책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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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 가장 위험한 이유는 사망률이 높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사망원인 5위로, 암, 심장질환, 뇌질환, 폐렴 다음으로 사망률이 높다.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36명이 자살을 한다. 40분에 한 명씩 자살하는 셈이다. 많은 희생자를 낸 대구 지하철 참사의 사망자는 200여 명인데,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대구 지하철 참사를 겪는 셈이다.
생명의 전화는 1976년에 생긴 우리나라 최초의 전화상담기관이다. 민간에서 만든 사회복지 법인으로 현재 전국에 19개 센터에서 24시간 365일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1588-9191 생명의 전화를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생명의 전화에서 오랫동안 일해오신 이광자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 나눴다.
Q: 죽고 싶은 사람이 전화를 하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나요?
A: 들려주는 게 아니라 들어줍니다. 죽고 싶다고 전화한 사람은요, 이미 사방팔방에 죽고 싶다는 얘기를 했어요. 누구든지 어느 날 갑자기 죽지는 않아요. 죽고 싶다는 말은요, ‘살려주세요’라는 말이에요. 그냥 죽고만 싶다 하면 사실 죽는 건 쉬워요. 떨어지면 죽어요. 근데 왜 누구한테 와서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하겠어요. 살고 싶다는 울음이에요, 그게.
절대로 그 사람에게 위만 보지 말고 아래만 보라는 둥, 죽을힘을 가지고 살라는 둥, 희망을 가지라는 둥 견뎌라, 지금은 한겨울이지만 조금 있으면 봄이 올 거라는 둥.. 이런 말 다 소용없어요. 그 사람이 몰라서 죽는 거 아녜요. 우리는 그런 설교적인 말 절대로 하지 못하게 해요.
대신 그 사람이 죽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하게 해요. 죽고 싶다고 얘기할 때 ‘무슨 어려운 일이 있었어요? 죽고 싶을 만한 어떤 문제가 있나요?’ 하고 우리가 물어요. 죽고 싶은 이유와 문제를 이야기하게 하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하면 사람들은 ‘죽는소리 하지 말라, 시끄럽다’ 그렇게 반응하고 잘 안 들어줘요.
저희는 다 들어줍니다. 그냥 네네 하고만 들어주는 게 아니라,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어쩌면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얼마나 힘드셨어요? 얼마나 힘드셨으면 죽을 마음이 다 들었겠어요.” 이거는 죽으라는 말도 아니고 살라는 말도 아니에요. 그 죽고 싶은 마음을 그 사람 입장이 돼서 듣는 거죠. 들어주고, 공감하고.
정말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살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까? 선생님은 그렇다고 단언했다. 머릿속에 가득 찼던 시커면 연기를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한바탕 풀어내고 나면 속이 후련해진다. 그때 객관적인 사고능력이 생긴다.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할 때는 객관적인 사고 능력이 안 생긴다. 그 속에 있는 시커먼 연기를 다 뺼 수 있게 들어주고, 알아주고 하면 비로소 말한다. “그럼요..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여기서 어떻게 끝을 내겠어요? 제가 죽으면 우리 엄마 안되죠.. 우리 엄마도 같이 죽을 거예요..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살도록 다시 노력을 하겠습니다.” 상담자들은 늘 이것을 경험한다.
자살하는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충동성이다. 충동적으로 자살한다는 말이 아니다. 자살생각은 늘 하다가 자살행위를 하는 그 순간이 매우 충동적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술 마신 상태에서 자살이 많이 일어난다. 다시 말하면 자살하고 싶은 순간이 충동적이기 때문에 그 순간만 지나면 살 수가 있다. ‘꼭 지금 해야 하는가, 내일 하면 안 되나’ 하고 우선 그 순간을 미뤄주는 것이다.
‘내가 죽으면 가장 슬퍼할 사람이 누구일까?’하고 묻기도 한다. 자녀들인 경우는 보통 엄마라고 얘기를 한다. “엄마.. 그래요, 엄마가 어떻게 될까요?” 하면 엄마를 떠올리면서 그 순간을 넘어가기도 한다. 자살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다른 거 다 해보고 찾다가 안되면 그때 죽을 수도 있으니까.. 하고 이 충동의 순간을 넘어간다.
두 번째 특징은 경직성이다. 경직성이란 한 가지 생각을 하면 그 사고에 몰입되어 갇히는 것이다. 스스로 네모난 방을 만들고 갇혀버린다. 동그라미도, 세모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내담자는 세월호 사건으로 친구를 잃고 그 충격으로 자살충동이 들어 전화를 했다. 중학교 때 그에게 단원고 가라고 추천을 했다는 것. 나 때문에 친구가 죽었다는 죄책감을 갖게 되었다.
이성적인 우리가 들었을 때는 그와 친구의 죽음은 개연성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생각에 잠기면 절대적으로 그 생각만 하게 된다. 친구를 잃었기 때문에 슬픈 건 당연하고 아파야 하는 시기지만, 별개의 문제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이렇게 자살하고 싶은 사람의 생각은 비합리적일 때가 많다. 상담자는 이럴 때 ‘내가 잘못 생각하는 건 아닐까, 우울증이라면 치료를 받아야 하는 문제다’라는 식으로 인지시키려 한다.
마지막 특징은 양가감정이다. 죽고 싶은 사람이 그냥 죽지 않고 죽고 싶다고 말을 하는 건 두 가지 감정이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한강 다리에 올라간 사람은 지금 죽고 싶은 마음이 2% 더 많은 51%다. 그러나 그 사람의 마음속에 살고 싶은 마음이 49%다.
이때 상담을 통해서 죽고 싶은 마음보다는 살고 싶은 마음이 2% 더 많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지 않는다. 살아야겠다는 것을 안다.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살아야겠다는 말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상담이 끝날 때는 꼭 지금 마음이 어떤지 묻는다.
“마음이 편하고요. 자칫 잘못하다가 내가 나를 죽일 뻔했네요”
“그래요.. 그런데 앞으로 살다 보면 죽고 싶은 마음이 또 들 텐데 그땐 어떻게 하시겠어요?”
“제가 죽고 싶은 마음이 또 들 때가 있겠죠. 그럴 때는 생명의 전화에 연락하거나 상담을 받거나 친구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무조건 뛰어내리지는 않겠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받는다. 그러면 약속대로 이행이 안될 수도 있지만,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이런 약속을 했지, 하고 떠올릴 수 있다.
생명의 전화는 사회복지 법인으로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자살예방 걷기 대회 등을 통해서 생명존중의 활동을 널리 알리거나, 자살을 예방하는 직접적인 활동을 한다. 1588-9191을 통한 생명의 전화는 하루에 60여 통, 1년에 2만여 건의 전화가 걸려온다. 한강 다리 위에 설치된 SOS 생명의 전화를 받는 일도 한다. 1년에 1천여 건, 하루 평균 3건 정도가 걸려온다. 1000건 중 200여 건은 119가 출동하여 구조되고, 800건은 전화상담으로 끝난다.
유가족 상담도 한다. 한 명이 자살하는 경우 친구, 동료를 포함하면 10-20명의 유가족이 생긴다. 부모나 자녀, 배우자가 자살해서 힘들어하는 유가족들은 월 1회씩 모여서 집단상담을 한다. 교도소에서 자살 고위험자를 대상으로 상담을 하기도 한다. 생명존중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활동들을 다방면으로 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자살예방전화를 검색하면 전화했다가 상처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글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런 글 때문에 자살충동이 일어났지만 전화를 했다가 상처받을까 봐 겁난다는 인터뷰이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면박을 당하는 일도 있는지 물었다.
우선 인터넷의 그런 글들이 생명의 전화를 지칭하는 건지 알기가 어렵다. 최근에는 전화상담기관이 많이 생겼다. 불교에서는 자비의 전화, 평화의 전화, 어린이를 위한 희망의 전화, 신천지의 사랑의 전화도 있다. 하지만 생명의 전화는 42년째 이어오는 전화상담의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상담원들은 1년 이상의 교육을 받은 자원봉사자들로 구성이 된다. 상담이론을 배우고 실습을 하면서 오랜 교육 끝에 연간 50여 명의 상담원이 양성된다. 이들은 무보수 자원봉사로 운영이 된다.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운영하기 때문에 다양한 일이 일어난다. 상담원이 무슨 말을 해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평불만, 욕설, 음란전화를 거는 경우는 다반사다. 중독적으로 전화를 하거나, 같은 문제로 여러 기관에 전화하기도 한다. 일반 콜센터와 같은 감정노동의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들이 전화하는 이유는 아무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것을 내 얼굴을 모르는 비밀이 보장된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기 때문에 정말 잘 듣고 친절하게 하려고 애쓴다. 오해는 늘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정말 힘들었을 때 전화하면 반드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걱정하지 않고 전화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제로 생명의 전화는 많은 자살의 순간을 방지해왔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순간도 있다. 최근에는 한강 다리에 설치된 SOS생명의 전화 쪽으로 문의가 왔다. 그녀는 얼마 전에 한강에서 자살한 남편이, 죽기 전에 SOS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하지 않았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만일 전화했다면 마지막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하지만 그날 그 다리에서는 전화가 없었다. 혹시 그가 생명의 전화를 했더라면 살았지 않았을까,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미처 생명을 살리지 못하는 순간도 발생한다. 생명의 전화를 받는 상담원들에게는 바로 구급대가 출동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 하지만 상담원들은 혹시 내가 상담을 잘못해서 뛰어내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늘 있다. 또 상담을 하다가 내담자의 문제에 너무 공감해서 빠져버리는 경우가 있다. 상담이 끝나면 잊어야 하는데 계속 생각이 나고 꿈도 꾸는 ‘역전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를 위해 월마다 회의를 하고 사례를 공유하고 끊임없이 슈퍼비전 회의를 통해 대처해나간다.
상담원들의 일련의 활동을 들으니 이들의 봉사가 정말 숭고하게 느껴졌다.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힘들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했다. 한 번뿐인 소중한 삶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들을 보며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인터뷰를 해주신 이광자 선생님도 오랫동안 교편에 있다가 이제는 은퇴하고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면서 꼭 필요한 일을 함께 하고 있고 보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 이웃, 주변인에게 관심을 좀 더 넓혔으면 좋겠어요. 내 이야기만 하려고 하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안 하거든요. 다른 사람 입장에서 이해해야 해요. 나보다 남에게 더 관심을 가지면 결국은 나한테 돌아오는 거예요.”
<아임낫파인> 인터뷰 영상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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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매거진은 <아임 낫 파인> 프로젝트로 출간되는 책의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우울증과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책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소개
https://www.youtube.com/watch?v=NjIIcH6XWec
해시온 팀 강령 님의 우울증 이야기
https://www.youtube.com/watch?v=-eXHEvQhc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