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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mish May 14. 2020

궁실이 있던 터였고, 그게 마을이 되었다

이층 집에서 한 걸음


궁실이 있던 터였고, 그게 마을이 되어 궁촌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집은 궁촌리에서도 깊숙한 안쪽에 있었다. 
주변이라곤 산과 논밭, 그리고 작은 개천이 전부였던 시골이라 궁이 있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던 나는, 혹시 너무 궁해서 궁촌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물론 그것도 최근에 생각한 것이었다. 어릴 땐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니까.


어쨌든 다니가 태어나던 해, 우리는 이 곳으로 왔다. 
덕분에 이층 집의 나이를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층 집 문을 열면 하얀 라일락 꽃나무들이 나를 맞이했다. 

열 그루가 넘는 그 라일락 꽃나무들이 마당 주변을 둘러 사는 형태로 해마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은은한 그 꽃향기가 좋았다. 울타리가 따로 없는 대신, 울퉁불퉁 멋대로 생긴 커다란 바위들이 자연스럽게 집 주변을 감싸 안았다. 바위 사이사이에는 꼬맹이 꽃나무들이 피어 있었다. 


자주색을 처음 알게 해 준 철쭉꽃. 소꿉놀이 하기 딱 좋던 분 꽃과 봉숭아 꽃을 따다가 크고 작은 바위에 앉아 작은 돌멩이로 열심히 찧곤 했다.



꽃나무들이 가득한 작은 앞마당을 지나 길목마다 심어져 있는 작고 귀여운 나무들을 바라본다. 5살 아이에겐 무릎 정도 오는 작은 나무들. 그 나무들을 따라가다 보면 열 걸음 내에 보이는 잔디밭. 높은 키를 자랑하는 이 집이 잠시 눕는다 해도 잔디밭의 크기를 이길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나갈 때마다 스치는 풀들이 보드랗다. 그 위로 살랑거리는 바람이 흐르다 나무로 지어진 원두막에 안착한다. 어린 걸음으로 우다다 우다다 서른 걸음 이상 뛰어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던 원두막. 밭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가 자주 머물던 곳.

집 주변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을이었지만, 사람들이 옹기종기 살고 있는 마을로 나가려면 한참을 더 걸어가야 했다. 아빠는 여기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한산하고 조용한 부지를 넉넉하게 사두었다. 친구들과의 유대를 경험하지 못한 나는 시골 풍경의 모든 것이 놀잇감이었다. 심심하다고 느낀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바위보다 작았던 나는 바위 사이사이를 다람쥐처럼 타고 다니는 것에도 재미를 느꼈다. 어느 날은, 몹시 울퉁불퉁하고 애매한 곳에 위치한 바위에 도달하기 위해 눈을 감고 뛰어내렸다.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눈을 떠보니 바닥이었고, 바위에 부딪혔는지 무릎이 몹시 아팠다. 혹시라도 엄마 아빠가 볼까 봐, 괜찮은 척 다리를 질질 끌며 원두막으로 가서 앉았다.


 다리를 다쳐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정말 많이 하였다. 기분 좋은 봄바람이 불고 주변 세상은 온통 싱그러운데, 혼자서만 걱정 한가득한 얼굴을 한 채 잔디밭 위의 이층 집을 바라보았다.

걱정이 없을 때에도 이따금씩 가방에 노트와 연필을 담고는 코 앞의 원두막으로 작은 여정을 나섰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이 좋았다. 왜 이 동네는 유독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걸까?

하늘은 파랬고 크고 작은 뭉게구름이 두둥두둥 떠다녔다. 그걸 바라보며 온갖 센치한 기분을 다 느끼고 있노라면, 엄마와 아빠가 이층 베란다로 나와 그 모습을 웃기다는 듯 바라보았다.

잔디가 많이 자라면 아빠는 잔디깎기 기계를 사용해 제초를 시작하였다. 마당 전체를 깔끔하게 밀어버리기 전에 아빠는 꼬물꼬물 잔디를 깎아 내 이름을 새긴 뒤, 나를 불러내었다. 그러면 나는 이층 집 베란다로 달려 나가 그걸 보며 꺄르륵 웃곤 하였다.  

“아니 이렇게~! 여기서 봐야 내 이름인지 알겠는데! 아빠는 어떻게 거기서 썼어?”


씨익 웃던 아빠의 표정을 기억한다. 
어린 나는 신기한 게 많았고, 아빠는 마술사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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